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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통한 대학채플 개설과 성과(2)

본 론

제1장 일본 기독교의 역사와 실태
1549년 예수회소속인 프란시스코 자비에르(1506-1552)가 규슈에 들어와 처음으로 일본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1568년에 노부나가가 그리스도교를 공인, 초기에는 순조롭게 복음이 전해져 전성기를 이루었다. 1613년에 토쿠가와이에야스(徳川家康)가 금교령을 발표하기까지 당시 인구 1천5백만 중에서 80만명(5.3%)이 신앙생활을 할 정도로 크게 부흥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점차 박해를 당해갔다. 1587년 선교사 추방령가 발표되고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가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 1596년에는 상 필리페호 사건으로 나가사키에서 26명의 성인이 순교하였다.

1613년에는 기독교세력이 강해져 두려움을 느낀 토쿠가와(徳川) 막부가 기독교 금지를 결의, 이로 인해 80만명의 신자들에게 비극이 초래되었다. 1622년에 55명이 나가사키에서 처형당했고, 20만-30만의 순교자가 생겼다. ‘금교령’의 혹독한 탄압에 신자들이 단결하여 1637년에는 규슈에서 ‘시마바라(島原)의 난’이 일어났다. 아마쿠사시로(天草四郎)라 하는 16세의 소년을 중심으로 농민과 사무라이 3만7천명의 신자가 모여 1년이상 12만명의 토쿠가와 막부군대와 싸워 전원 순교하였다. 1639년 토쿠가와 막부는 네덜란드를 제외한 모든 나라와 국교를 단절, 쇄국령을 내리고 300년간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기독교의 탄압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구체적으로 사용되었다.
첫째, 종문개역(宗門改役)이다. 1640년 막부가 종문개역을 설치, 비밀리에 크리스천들을 단속하는데 절에 소속한 자들의 신앙을 조사하여 여행, 혼인, 이사, 취직등을 할 때 이 증명서가 필요하도록 하였다. 둘째, 테라우케(寺請)제도이다. 이는 일본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종교에 관계없이 반드시 어딘가의 절에 소속, 그 절에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증명을 받도록 하였다. 셋째, 후미에(踏絵)다. 이는 매년 한번 마리아나 예수의 그림을 놓고 밟으면 살려주고, 밟지 않으면 크리스천으로 판단 적발해 내는 제도로서, 이로 인해 많은 신자가 순교를 당했다. 다섯째, 오인조 제도이다. 농민들을 다섯가옥이 한 조가 되게 조직, 세금이나 범죄등의 감시와 크리스천 적발을 목적으로 30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여섯째, 기리시단 유족조사이다. 토쿠가와 막부는 만약 기독교인이 적발되면 본인뿐만 아니라 친족까지 남자는 7대, 여자는 4대까지를 격리시켜 특별 감시하에 두었다. 무라하치부(村八分)라고 해 장례식과 화재이외에는 다른 사람들과도 교류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상상하기 힘든 박해로 인하여 일본인의 성격이나 체질이 왜곡 형성됨으로서 기독교가 공인된 지 1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기독교가 부흥하지 못하는 커다란 요인이 되었다. 한편 1854년 일·미 화친조약으로 300년 동안의 긴 쇄국이 끝나고 일본에 또다시 기독교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1873년 메이지 정부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일본에 새로운 복음화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도 '신도국교화'를 통한 종교국가 건설을 추진, 신앙의 자유는 허용하되 이것이 국가의 안녕질서의 유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특히 천황의 신성성을 모독할 수 없다는 단서조항을 명기하여 조건적 자유임을 분명히 하였다.

'우치무라(內村鑑三)의 불경사건'이 그 예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일본적 기독교를 주장하던 우치무라가 도쿄제일고등학교에 재직하던 1891년 1월 9일 천황이 서명한 '교육칙어'의 봉배식에서 최경례로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인의 혹독한 비난을 면치 못하고 결국은 직장도 잃고 '기독교 불경한(不敬漢)'의 이름을 얻어 고통 중에 처해야 했던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근대 일본사회속에서 기독교가 존재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중요한 사태로 발전하였다. ‘그들 앞에서 하나님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결심했을 때 차례가 왔다. 그는 단위로 올라가 勅語 앞으로 가서 그대로 한 바퀴 돈 뒤 돌아 내려왔다. 壇上에 섰을 때 머리를 숙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그것은 결코 보통의 경우 행하는 敬禮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물론 最敬禮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한 개인의 행위를 넘어 기독교자체의 천황제 국가에 대한 반역적 행위로 간주되어 천황제 국가와 기독교가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이러한 논란에는 대부분의 일본 지식인, 일반 대중이 부정적인 선입관을 지닌 채 참여하였는데, 특히 도쿄(東京)제국대학 교수 이노우에(井上哲次郞)가 대표적인 주도자였다. 그는 일본 근대 천황제 국가의 통치근간이며 사상적 실천 요목인 ‘교육칙어’와 기독교는 도무지 상용될 수 없는 것임을 전제하고, 결과적으로 일본의 국가적 목표를 수행하는데 있어 기독교의 제거가 필수적이라는 논지를 바탕에 담은 주장을 폈다. 여기에 일본기독교계는 일제히 반박하였다. 그 논리는 기독교 자체가 지닌 가치의 선양이나 변증은 일부에 그치고, 오히려 기독교인이 진정한 일본인으로서, 혹은 천황의 충성된 신하로서 국민된 본분을 다하고 있다는 내용이 중심이 되었다. 기독교인 개인과 교회 공동체는 이러한 강박감에 의해 때로는 국가나 천황에 대한 과잉충성의 모습도 노출하고, 기독교 본질의 해체까지를 불사하며 그 존립추구에 급급한 경우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사회 분위기는 그러한 기독교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반국체 관념을 주장하는 외래종교로서 일방적으로 배척하였다.

기독교에 대한 반대 세력의 방해나 위해는 불교계, 혹은 보수계열의 신문, 잡지의 논조를 통해 집요하게 제기되었다. '교육과 종교의 충돌'과 같은 논쟁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의 기회나 계기를 통해 그들은 반기독교적 논평과 기사를 게재하였다. 이와 같은 언론 활동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전도집회나 예배, 교회헌당식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이들의 집회를 방해한다던가, 위협을 가하는 일이 많았다. 또한 학교 교사나 교육 관계자들은 학생들이 기독교 집회에 참석하는 일을 싫어하거나 노골적으로 금지시켰다. 상급생들로부터 이러한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일도 많았다.


일본의 기독교인수는 2004년현재 개신교 557,718명, 카톨릭교 473,000명이다. 전체인구 1억2,700명 중 0.811%가 기독교인이다. 개신교의 경우 전국에 7,784개의 교회가 있다. 매주 예배출석인원은 79,227명이며, 주일학교 참석자는 67,647명이다. 2004년에 8,712명이 세례를 받았다. 일본교회의 규모는 1~10명의 교회가 17%, 11~30명의 교회가 41.3%를 차지해 전체 중 67%(1~30명 교회)가 30명미만의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또 31~50명 교회는 17.5%, 51~99명의 교회는 11%로, 전체 교회의 91%가 100명 미만 교회이다. 일본교회 교파 교단 그룹 수는 모두 167개로서, 그 가운데 복음적인 교회그룹은 143이다. 신학교 성경학교는 일본내 81곳, 미션스쿨(카톨릭과 개신교)은 대학 107개, 고등학교 217개, 중학교 169개, 초등학교 72개, 유치원 145개이다.
기독교인구 1%미만이 지난 20년 동안이나 불변하고 교인수 30명미만의 교회가 67%를 넘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적 교회가 증가하고 미션스쿨이 많은 점은 일본의 복음화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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