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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1일 주일] 갈릴리 예수그리스도와 우리들의 소명

제목 갈릴리 예수그리스도와 우리들의 소명
성경말씀 : 마태복음 28장 17절∼ 20절 말씀
설교자 이상현 목사님 (미국 프린스턴대학 신학부 교수)

오늘은 고향을 떠나 나그네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신앙적 사명과 이방인으로써 이들이 모인 교회의 사명 그리고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미국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하지만 일본의 경우도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국을 떠나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마디로 표현하면 주변성(변두리)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살고 있는 사회의 중심부 즉 주류를 이루고 있지 못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미국사회의 사회적인 구별은 인종과 피부색입니다. 그래서 피부색이 다른 유색인종이 아무리 오랫동안 현지에서 살았어도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백인사회에 同化되고 포용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同化에는 문화적인 同化와 구조적인 同化가 있습니다. 문화적인 同化는 교육 등을 통해 쉽게 동화가 이루어지지만 구조적인 同化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백인과 친근해지거나 친구 친척이 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즉 사회적인 측면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인정 받기 어렵다는 것이며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사회적인 출세에는 일정한 한계를 넘지 못한다는 것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주변성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에서 본다면 변두리에 있다는 것은 「사이에 놓여있다( in between)」 는 의미이며 여기에는 엄청난 창조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어떠한 변화이든 반드시 「사이에 놓여있는」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 장소에서 출발해서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까지의 경험 또는 과거로부터 미래의 어느 시점에 도달하는 과정의 경험 등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변에 놓여진 사람들의 창조성은 다음과 같은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바라볼 수 있다는 점 둘째 참된 인간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 세째 현재 몸담고 살고있는 사회의 밀폐성과 부패성을 알고 개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서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많은 성서와 자료들에 의해서 밝혀진 사실입니다만 예수님께서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갈릴리 사람으로 태어나 갈릴리에서 전도를 하셨습니다. 왜 하필이면 갈릴리 사람으로서 오셨을까요? 갈릴리는 당시의 대표적인 다문화 지역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는 갈릴리를 업신여기고 착취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천대받는 갈릴리가 아닌 중심지역 예루살렘의 사람으로서 그것도 권세가 있는 사람으로서 오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율법도 제대로 모르는 시골사람으로 업신여김을 받는 갈릴리 사람으로서 오셨습니다.
이것은 온 인류를 사랑하기 때문에 권력과 부 즉 세상의 모든 것을 갖춘 사람으로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비천한 갈릴리 사람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갈릴리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자신의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그 제자들도 갈릴리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갖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에 대한 예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도 단순히 예수님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온 예수라고 적혀 있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만 갈릴리에서 온 여자들만 예수님의 최후를 지켜보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온 인류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주변부에 있는 사람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한 사회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은 기득권과 현재의 것을 지키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새롭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하심을 본 것도 갈릴리 사람이요 오순절날 여러 나라 말로 방언하며 전도한 사람들도 갈릴리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갈릴리 사람이 잘나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위치나 상황이 주변부에 있는 자들이었기에 그들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사는 우리 한국인들도 주변에 처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인 위치와 상황때문에 우리들을 선택하셔서 특별한 종으로 사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주변 사람들이 모인 교회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교회의 몸 된 예수님께서도 가지고 계신 모든 것으로 하나님의 뜻에 충성하여 따르셨습니다. 기독교회로서의 해야 할 일 다시 말해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정의 질서 사랑 자비를 확장시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에 이루어가는 것을 최고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들이 먼저 새 것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새로운 존재 제3의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상호간의 장점을 취해서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일본에 계신 한국인들은 일본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한국에 있는 한국사람처럼 될 필요도 없고 또 이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두 나라 사람은 정체성이 다르므로 오히려 그 중간에 처한 우리들은 한국사람보다도 그리고 일본사람보다도 더 나은 새로운 정체성으로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새롭고 참된 공동체를 형성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한국과 일본의 구조의 바깥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직장이나 직위 등에 관계없이 모두가 쉽게 동등한 형제 자매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계층주의를 초월한 참된 교회의 공동체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 번째 예언자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회의 중심에 속한 사람은 그 사회의 체계를 좀처럼 뜯어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사람은 그것이 가능하며 공동체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예언자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제시대에 일본에 유학했던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었던 「2.8독립선언」 등은 한국과 일본의 중간에 끼인 존재들로서 시대의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들이 선택한 것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갈랄리 사람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살면서 일본사람이 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을 보며 공동체생활과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하며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더욱 더 참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이방인으로서의 우리들의 사명이자 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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