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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4일 주일] 인생의 두 기둥

말씀 : 역대하3:15-17
설교 : 오대식 목사님

모든 공동체나 모든 집단은 그 모임을 모임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요소를 잃어버릴 때 그 모임의 본래의 생명도 잃게 되는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이 모든 공동체에는 반드시 있습니다.

정치를 하는 정당은 정권의 창출이 그 공동체의 중요한 목표인 동시에 요소이고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가정은 가족 구성원간의 사랑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는 선교와 봉사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힘써야 하는 일들이지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교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저는 성전을 처음 지을 때 그 성전을 건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곳이 어디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으로 그것을 찾으려 합니다.

은행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고 견고하게 짓는 것은 바로 금고이고 병원을 지을 때 중요한 것은 수술실이나 검사실 또 병실이 될 것입니다. 그렇듯 성전을 지을 때도 그 어느 곳 보다 더욱 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임목사실이 될 수도 없고 사무실이나 친교실도 될 수 없습니다.


성전의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지성소(至聖所)입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지성소였습니다. 그곳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하여 동물의 희생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던 곳이었으며 죽음과 희생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동물의 희생은 우리의 죽음과 희생을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곧 우리의 죽음과 희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지성소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지성소의 정신은 결코 사라져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지금도 우리들의 희생과 죽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희생과 죽음이 있을 때 우리와 우리의 교회는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의 죽음과 희생이 없을 때 교회와 우리는 참 생명을 잃어갈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그 풍성한 생명은 지성소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수도 없이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주님의 성전 지성소에서 자신의 몸과 삶과 피를 흘려 제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그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 지성소의 제물이 많았던 교회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내가 살면 교회가 죽고 내가 죽으면 교회는 산다는 그 하나의 신념을 마음에 새기며 그렇게 교회를 섬겨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듯 부흥하고 발전하여 세계의 교회를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한국교회의 역사적 정점에 우리 동경교회가 있습니다. 우리교회 역시 목사의 눈으로 볼 때 지성소의 희생제물이 끊이질 않았던 교회였으며 바로 그 나를 죽이는 정신이 오늘의 동경교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순간 순간 어려웠던 일들이 늘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피를 흘려 희생제물 삼으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누가 보아도 건강한 교회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동경교회의 역사를 보면 창립이래 지금껏 평탄한 길만 걸어왔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분열의 위험도 있었고 또한 한 때는 공중분해의 위험도 있었으며 또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고비들마다 우리 교인들은 자신을 지성소의 제물로 삼아 왔습니다. 자신을 죽이고 희생시키는 제물이 되어 그 피로 교회를 살렸고 그렇게 나를 죽이는 신앙으로 교회를 부둥켜안고 살려 왔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동경교회를 걱정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위기」라는 단어까지 써 가며 그 걱정을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심각하게 오늘의 교회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동경교회는 지금 위기를 맞은 것이 아니라 다시 성전의 지성소에서 하나님께 드릴 희생의 제물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된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의 희생을 원하고 계십니다.

구약시대 예루살렘성전이 지어지게 된 배경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은 생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전쟁을 많이 한 장군으로 그 손으로 피를 많이 흘렸기에 성전을 짓는 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여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고 훌륭한 다윗이었다고는 하나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의 뜻을 겸손하게 인정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그와 같은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함에 빠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에 순종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전 건축을 위하여 엄청난 준비를 하였습니다. 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을 때 그 대부분의 물자들은 다윗이 준비하여 놓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 제물로 드려진 희생의 참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희생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은 훌륭하고 아름답게 건축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과 희생은 아들 솔로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솔로몬도 성전을 짓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진심으로 훌륭한 성전을 지으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궁전을 짓기 이전에 최선을 다하여 성전을 7년간 건축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성전을 다 짓고 난 후에 성전의 앞에 기둥 둘을 세웠는데 남쪽에 세운 그 하나의 이름은 야긴이고 또 북쪽에 세운 다른 하나의 이름은 보아스라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당시의 중요한 건축물에는 그 건물을 기념하는 기둥들을 세우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오늘날 기념비의 개념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 두 기둥의 이름은 깊은 의미가 있는데 야긴이라는 이름의 뜻은 「그가 세우시리라」는 뜻이고 보아스라는 말은 「하나님의 민첩한 능력」 이라는 말입니다. 즉 이 두 기둥의 뜻을 합해 보면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이 성전을 세우셨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과 솔로몬의 훌륭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두 기둥을 세우고 하나의 이름은 다윗이라 하였을 것이고 또 다른 이름은 솔로몬이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성전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름의 두 기둥을 성전의 앞에 세웠던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과 공적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야긴과 보아스의 기둥을 세워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 솔로몬의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 드려진 고귀한 지성소의 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피를 흘려 죽여야 했던 희생 제물의 정신은 이렇게 자신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자기를 죽이는 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고 이렇게 멋진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했을 때 예루실렘에는 큰 변화가 일었습니다. 성전이 세워진 예루살렘이라는 곳은 어디입니까? 느헤미야서에 보면 예루살렘은 원래 이스라엘의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이스라엘의 변두리 땅이었습니다. 적의 도사림이 항상 있어왔고 전쟁이 난무하던 인간적인 매력은 거의 없는 곳으로 당연히 그곳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경우 그 성을 지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느혜미야서에 보면 제비를 뽑아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이주시켰을 정도로 예루살렘은 매력 있는 땅이 결코 못되었습니다. 이렇듯 예루살렘은 처음에는 쓸모 없는 땅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도무지 매력을 느낄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아는 예루살렘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히브리사람들의 정신적인 중심이 되는 시온이요 전 세계 모든 신앙인에 있어서 이름만 들어도 하나님을 생각케 해 주는 상징적인 성읍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운 뒤부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세웠다고 해서 모든 성읍이 유명해지거나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은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교회가 가장 많은 도시입니다. 또 세계에서 제일 큰 개신교 성전123위가 한국에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순히 예배당을 세웠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된 이유는 바로 성전에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을 세운 것 때문입니다. 즉 능력의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그 정신 하나가 변두리 예루살렘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다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한다는 그 신앙이 예루살렘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동경교회에 대해 한 가지 욕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경교회가 이 일본 땅의 중심이 되고 또 한국교회의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커지거나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영성을 이끌어 나가는 교회가 있게 마련인데 저는 동경교회가 그런 역할을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불가능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그 방법은 의외로 쉽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 성전 이 교회의 지성소에서 모두가 피를 흘리는 것 같이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아낌없이 드릴 때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전에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의 제물이 되어 나의 나됨을 죽이고 피흘리기를 힘쓸 때 하나님의 성전은 능력 많으신 하나님께서 친히 세워 주실 것이고 우리 동경교회는 시대를 이끄는 믿음의 중심이 되는 교회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 시간에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교회의 문제 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의 문제도 바로 보고싶은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의미했다면 신약시대의 성전은 바로 우리의 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너희는 너희의 몸이 성전됨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 3:16) 라고 말합니다. 즉 다시 말해 우리의 인생의 길은 하나의 성전을 짓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삶이 성공적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루살렘 성전에 세웠던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을 우리의 삶에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고싶어합니다. 그런데 그 성공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바라는 그 성공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주류 그 중심에 자신이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공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자녀를 교육시키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따지고 보면 우리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그 중심에 들어가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되든지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을 시킵니다. 좋은 학교를 들어가게 해 달라는 것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바램도 또 사업이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시대의 주류로 이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하고픈 마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 시대의 중심에 들어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을 중심이 되게 해 주십니다. 우선 순위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성전을 지어갈 때 야긴과 보이스 즉 능력의 하나님께서 세우신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삶을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세상을 이끄는 주류가 되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간증을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교회생활을 무척이나 열심히 했습니다. 교회의 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물론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제 주위에 믿음의 좋은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들과 저는 교회의 중고등부 임원으로 많은 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어린 나이에 한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많은 어른들 특히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가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몹시 걱정과 불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 부모님들이 교회의 중직에 계신 분일수록 그 현상은 더욱 심하였습니다. 아마 교회 일의 특성을 알기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중고등부 임원의 일을 싫어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걱정은 예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 입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우리 친구들은 함께 다짐을 했습니다. 「적어도 우리만큼은 교회 일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고등부 임원들이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주자! 그래서 우리를 걱정하는 많은 어른들에게 본 때를 보여 드리자」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리고는 임원을 맡은 고2 2학기부터 고3 1학기까지 일년을 참으로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친구들은 고3 1년 동안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난처해지지 않게 해 드리려고 애를 많이 썼던 기간이었습니다.

드디어 학력고사의 날 시험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아십니까? 우리의 모든 친구들의 바램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시험 점수가 자신들이 예상했던 것 보다 형편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약 10점 내지 20점씩 점수를 낮게 받았던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열역학 제1법칙 등을 믿는데 그 많은 에너지를 교회에 쏟았으니 당연히 시험을 못 치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린 우리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교회의 어른들과 부모님들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그들의 매운 눈총을 의식하여야만 했습니다.

원서를 넣는 날 친구들은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상대와 영문과 같은 당시의 인기 있는 학과의 지원을 포기한 채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았던 중국어과와 러시아어과 등을 지원을 했고 한 친구는 재수를 했습니다. 원서를 넣는 날 원서를 집어넣고는 우리는 모두 교회에 모였습니다. 모두가 다 패잔병들 같았습니다. 축 늘어진 어깨 의욕이 없는 표정들.....

그러나 우리가 더욱 걱정을 한 것은 우리의 점수가 낮아 비 인기학과에 지원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걱정은 사람들의 바로 우리를 지켜보던 교인들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공부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해 주셨다」 라고 통쾌하게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 것이 그렇게 마음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를 본 받고 열심히 교회의 일을 하려는 후배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하나」 하는 걱정도 함께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그 시간부터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입학을 할 때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비 인기학과였던 중국어과와 러시아어과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중국이 개방되고 소련이 붕괘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친구들이 졸업을 하여 직장을 들어갈 무렵에는 중국 전문가와 러시아 전문가를 사회의 곳곳에서 모셔가려는 진풍경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도 그 현상을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친구들을 세상을 이끌어 가게 하기 위해 철의장막이라 불렸던 중국을 개방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친구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서 소련을 붕괘시켰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의 믿음이 지나친 것일까요?


그러기에 저는 저의 두 자녀를 위해서도 같은 기도를 합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아이들이 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127:1-2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이 말씀에 대한 가장 멋지고 정확한 대답은 여호수아 24:14-15 에서 나타나는 여호수아의 대답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의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신앙이라고 다 똑같은 신앙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질이 좋은 신앙은 그 분 앞에서 고개가 뻣뻣했던 나를 죽이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 분 앞에서 모가지를 드리우고 붉은 피를 주님의 제단에 뿌려 나를 바치는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신앙의 핵심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신앙을 갖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높이며 살아가게 된다면 하나님은 참으로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의 삶은 세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세워지지 아니하고 세워지는 듯 하다가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으로 우리의 삶을 세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믿거나 신뢰하면 절대로 우리의 삶을 성공적으로 세울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 후 기도〉

우리의 삶이 우리의 능력에 의해 그 승패가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결코 우리의 지식에 의해 그 품위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돈에 의해 그 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세상의 중심과 주류에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먼저 주 앞에 나를 죽이는 희생제물이 되어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을 우리의 삶에 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교우들 주님이 사랑하시는 우리 교우들
야신과 보아스 두 기둥을 자신의 인생의 여정에 견고히 세워 놓을 때
주님 저들을 반드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세상을 이끄는 사람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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