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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2일 주일] 우연 그 너머에

우연(偶然) 그 너머에 - 믿음에 대하여 (2)

열왕기상 22:29-36




심리학에 보면 <원인귀속(原因歸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건과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원인>이라는 말은 행복한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생각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지금 이렇게 행복한데 그 원인은 분명 무엇 무엇에 있어」 라든지
「내게 무슨 일이 참 잘 됐는데 그 원인은 분명 무엇에 있어」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할 때 그 원인을 생각합니다.
내가 고통과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심리학에서는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을 <내 탓>과 <남의 탓>으로 나누는데 내 탓은 <후회>로 나타나고 남의 탓은 <원망>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대체로 불행할 때의 원인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약 10% 정도 그 불행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는 90%정도가 넘는다고 합니다. 사람의 심리는 잘못된 원인에 대해 내 탓에서 남의 탓으로 그리고 집단의 탓으로 돌리는 특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대학에 낙방한 학생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공부를 안 한 것에 대해 원인을 찾지만
생각이 길어지면서 그 원인이 복잡해집니다.
대학 시험을 보는 당일 날 아침에 일찍 깨워주지 않은 엄마가 원망스럽습니다. 시간이 없어 그냥 나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아침밥 먹고 가라고 사정사정 했던 엄마가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다가 시험 문제에 대해 불만이 생깁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문제를 냈는지 왜 내가 모르는 문제만 냈는지.....
결국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와 입시제도에 불만을 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엉터리 입시제도의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불행한 상황을 맞이할 때는 대체로 이와 비슷한 생각의 순서를 밟게 됩니다. 내 쪽에서 남의 쪽으로 그 원인을 돌리고 결국은 집단의 잘못으로까지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아담 때부터 나타납니다. 나는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으려 하지 않았는데 하와 때문이었다고 아담은 말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그 원인을 집단으로 돌립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이렇게 불행에 대해 남의 탓을 많이 했었습니다.


우리는 <우연(偶然)>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여러분 <우연>이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와 관계되지 않은 원인을 말합니다. 원인이 없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 원인은 있는데 나와 관계없는 것을 우리는 <우연>이라 말합니다. 즉 잘 됐건 잘못됐건 원인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있거나 집단에게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것을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당해보셨습니까?
여러분들은 얼마나 자주 어려움을 겪어 보셨습니까?
여러분들은 요즘 얼마다 힘든 일을 당하고 계십니까?
그 고난과 어려움의 원인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우리의 당하는 불행의 원인을 대체로 내 탓으로 보기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좋은 집에서 태어나 걱정 없이 자랐더라면......
돈이 많은 부모를 만나 많이 배웠더라면.....
적어도 이 사람과 결혼만 안했더라면.....

원인이 남에게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것을 우연이라고 봅니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내 꿈과는 관계없이 내 노력과는 관계없이 불행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을 우리는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원인이 내게 있지 않습니다. 다 남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원망스럽고 그래서 남들이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나의 고통은 남들 때문에 우연히 생긴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실패는 여러 가지 나쁜 상황들이 우연히 결합되어 생긴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그 <우연>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이 <우연>이라는 단어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려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아합이라는 왕은 북 이스라엘의 8대 왕(869-850 BC) 입니다. 오므리의 아들로 이스라엘 왕 중 폭군 중의 폭군으로 기록된 왕입니다. 오므리가 누구입니까? 오므리는 엘라 왕의 군대장관으로 엘라 왕이 죽임을 당한 후에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 때부터 오므리 왕조가 생기게 되었고 아합은 그 오므리 왕조의 두 번째 왕인 것입니다.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우상 숭배를 강요했던 자요 연약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왕상21장) 하나님의 선지자를 대적하고 죽인 자입니다.
여호사밧이 왕으로 있는 유다와 손잡고 아람이라는 나라와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전세가 밀리자 죽지 않으려고 교활한 생각을 합니다. 자신은 졸병으로 분장하여 졸병역할을 하고 여호사밧을 연합군의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아람 군대가 여호사밧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4절)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여기에서 성경은 우연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우연입니까? 아합 왕은 화살을 맞은 후 출혈이 심해 죽고 맙니다.

38절) 개들이 그 피를 핥았다

이 말씀은 왕상 21:19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선지자가 예언했던 상황이 이루어지는 것 정말 그것이 우연입니까?

아합 왕은 한 나라의 왕입니다. 모든 힘을 갖고 누린 자 입니다. 더 누리려고 백성을 고통 중에 몰아넣은 자입니다. 코끼리 상아로 자신의 궁전을 지었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처참하게 죽인 자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맛보게 됩니다. 그로써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그 <우연>이란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우연이 아닙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생각과 노력보다 더 좋은 결과를 누리고계십니까?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노력과 투자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위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것이 우연이라고 재수가 없어서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삶의 현상 때문에 우리의 삶이 힘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입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원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우연적 상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과정인데 그것을 볼 수 있는 바른 시각을 갖게 되면 삶의 정답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 내게 이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가?
왜 나를 이 곳 일본에 오게 하셨는가?
왜 나를 여기까지 몰고 오시는가?
왜 내게 실패의 쓴 맛을 보게 하시는가?
왜 내 주위에 참으로 대하기 힘든 사람들을 두셨는가?

과거에 대한 원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남에게 불행의 원인을 돌릴 수 없습니다.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손을 볼 뿐입니다.

요셉은 자기를 이집트로 팔아먹은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의 불행의 시작은 형들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형들을 평생 원수로 생각하고 앙갚음을 하려 애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왔을 때 「기회가 왔다」라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미워하지도 않았고 형들의 잘못을 들추지도 않았습니다.

창세기 45장 5절 8절에서 요셉은 형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시려고 당신들 앞서 나를 보내셨나이다.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우리의 모든 삶의 과정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연>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정확한 자기 인식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들을 하나님의 도구로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힘이 들지만 나는 지금 불행하지만 나의 현주소를 알기에 절망과 불안을 떨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인도하신다면
내 삶에 있어서 <우연>이 아닌 <필연>은 언제부터입니까?

그 출발점은 갈라디아서 1:15에 나타납니다.

15)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책정하시고.....

바울은 이중 문화권에서 산 사람입니다. 유대인이면서 헬라 문화 속에서 자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들과 같은 형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중문화권에서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동안 우리 在日들은 우리 스스로를 half라고 표현해 왔습니다. 그러나 보는 시각에 따라서 우리는 double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약점을 double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갈1:16에 그를 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사도바울은 또 육체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불치병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고 또 불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 괴로움을 빌1:12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12) 나의 당한 이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될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저희 집안은 대대로 예수를 믿는 집안이었습니다. 제가 4대째 교인이라는 것은 그나마 자랑할 것이 많지 않은 우리 집안에 유일한 자랑거리였습니다. 아버지는 625 전쟁에 남쪽으로 피난을 오셔서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며 정착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성실함으로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모르며 그렇게 자랐습니다.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배우고 싶은 것 다 배우며 그렇게 유복한 생활을 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게 주시는 축복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정에도 불행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저는 제게 돈이 없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돈이 없는 생활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그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할 때 제 아내에게 많은 것을 해 주지 못해 지금껏 미안한데 결혼 하던 그 해 어머님께서 쓰러져 중풍에 걸리게 되셨습니다. 삶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이해를 못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제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왜 예수 잘 믿는 우리 가정에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제게 삶의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아픈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고 어려움 당하는 가정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물론 저 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하나님께서는 각자 각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그 어려움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당한 고통 속에서 그 하나님을 보았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하나님을 좋아하고 찬송합니다.


나의 나 됨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연입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까? 지금껏 나를 이곳까지 인도해 주신 분은 누구십니까?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의 과정 곳곳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으로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그 숨어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

이제 그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 오신 하나님
나의 과거의 아픔과 슬픔을 사용하시며
그 모든 고통을 오히려 가장 좋은 것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절망할 것 없습니다.
좌절해서도 안 됩니다.
나의 고난은 하나님의 축복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담대하게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우리의 남은 삶도 다 맡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설교 후 기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주님의 뜻대로 쓰시기 위해 연단시키시는 하나님
내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나도 용서할 수 없는 과거와 생각하기조차 싫은 경험까지도
하나님의 선한 일에 쓰시기 위해 바꿔주시는 하나님
내 삶 전체를 주님께 의탁합니다.
고통 중에 애통해 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읽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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