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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15일 설교] 만남의 소중함

만남의 소중함

성경 본문 / 잠언3:1-10


요즘 한국에는 20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 유영철 이란 살인자로 인해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그는 작년 가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무차별 살해 해 오다가 결국 지난 7월 18일 경찰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항상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수사를 하는 경찰이나 사건의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나 모두 범임의 자라 온 가정환경과 가정교육을 말합니다. 그리고는 그런 범행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필연적 설명을 합니다.

이 번 사건에도 역시 그런 설명이 길게 나타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노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정신질환을 앓다가 일찍 죽었다.
가정은 몹시 가난했다.
성격은 학교의 친구들과 지낼 수 없을 만큼 삐뚤어졌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절도죄로 소년원에 가게 되고 공부는 도중에 그만두었다.
그 뒤 절도와 강도로 전과 14범이 되었다.
결혼도 했지만 아내에게 버림받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었다. 등등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과 스토리는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잣대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정이 어렵거나 그런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나면 모두 범죄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1963년 11월 22일 낮 12시 30분
미국 텍사스 달라스 시에서 시내를 지나던 당시 47세 젊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오스왈드 라는 이름의 30대 청년으로부터 총을 맞고 죽었습니다. 미 연방 수사국인 F.B.I.는 범행의 배후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수사의 결과는 단순범행이었다고 발표했고 그의 책임은 범인의 불우한 가정환경 탓으로 말했었습니다.

교육학에서 늘 교과서적인 사례로 드는 그 내용을 간추려 봅니다.

범인 오스왈드는 아버지를 세 번 씩이나 바꿔야만 했다.
그는 또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자랐다.
갈등과 혼란이 뒤범벅 된 가정 속에서 그는 소년 시절을 보냈다.
자기를 낳지 않은 아버지에게 계속 야단을 맞고 소외되고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어머니조차 완전히 이 소년을 무시하고 방관했다.
그는 자기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아픔 속에서 소년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학교를 다닐 때 그는 자기가 가진 우수한 지능에도 불구하고 침구들과 싸움을 일삼고 마침내 고등학교 때는 자퇴를 하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결심을 하고 군에 입대했지만 군에서도 동료 사병들과의 싸움으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상관에게 폭행하고 그로인해 명령 불복종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고 결국 군대에서조차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배경이 확실치 않은 사람과 결혼을 했지만 늘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거절당했다.
결국 큰일을 저질러서 세살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 했고
그래서 케네디를 암살했다.

수사의 내용입니다.

이 보고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역시 집안이 그랬었군」
「그래 그래서 가정환경이 그렇게 중요한거야」
「우리 아이들은 잘 키워야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청년을 예정된 범죄자로 몰고 갑니다. 아니 그 오스왈드라는 사람에게는 범죄 외에는 갈 곳이 없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왜냐하면
<결손 가정은 곧 문제아를 낳는다>
<문제아 뒤엔 언제나 문제 부모가 있다>
라고 하는 교육학적 확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아만 보면 「음 그래 너도 그럴 수밖에 없구나」 라고 그렇게 규정짓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교육학과 그 학문의 연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교육학의 이론과 접근방법을 좋아하고 또 교육학적 학습을 신뢰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 교육학이 증명할 수 없는 부분이 사람에게는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교육학으로는 도무지 풀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사람 참으로 불우한 소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한 사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의 소년기는 참으로 우울했습니다. 한 아버지와 네 어머니 배 다른 형들이 10명. 형들의 학대와 따돌림 속에 그는 소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 소년에게 더 큰 짐이요 아픔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박탈당한 형들은 아버지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그 소년을 괴롭히고 따돌리곤 하였습니다. 결국 청소년기에 형들의 손에 의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는 먼 나라로 팔려 가는 신세가 됩니다.
이 정도면 누구인지 다 아실 것입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소년의 나이에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재롱을 떨어야 하는 그 나이에 그는 형들의 구박을 받아야 했고 또 청소년기에는 그는 먼 나라로 팔려가 그곳에서 남의 집 종살이를 시작합니다. 목숨을 연명합니다. 여러분 그를 요셉이라고 생각지 말고 여러분들의 자녀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그곳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가 그 곳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그 모든 아픔을 극복하고는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히 일 한 요셉에게 찾아 온 것은 무엇입니까? 그 성실의 결과는 바로 고난이었습니다. 더 큰 고통이 성실의 대가로 주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까지 참고 감옥에서 성실히 일 한 요셉에게 또다시 찾아 온 것도 고통이었습니다. 요셉의 꿈의 해몽대로 술 맡은 관원장이 복권이 될 때 요셉은 그에게 복권이 되면 죄 없이 감옥에 들어와 고생하고 있는 자신을 구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그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고 말았습니다. 창40:23에서는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라고 표현합니다. 그것도 2년간 말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로부터의 미움 학대 진실이 오히려 고통 되어 돌아오는 현실 그 상황에서 요셉은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어떤 성격이 형성되겠습니까? 형들로부터 팔려온 사실 고생의 연속 정직과 성실이 무시된 현실...... 일반 교육학적으로 보면 청년 요셉에게서 나올 수 있는 정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오직 「분노」입니다. 그의 과거의 경험들을 보면 요셉은 분노의 사람으로 성장했어야 맞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아버지 야곱의 삶은 거짓과 시기 질투의 일생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삶의 뿌리가 거짓이었기에 그의 10명의 아들도 아버지를 속이고는 동생 요셉을 팔아먹습니다. 말이 팔아먹은 것이지 그들은 정말 동생 요셉을 죽인 것입니다. 가족의 사랑이 깨어진 집안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 집안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막말로 표현하면 「콩가루 집안」 입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한 가정이 이렇게 망가질 수 있겠습니까? 위아래가 없고 형제는 형제를 죽이기까지 미워하고 팔아먹는 관계 오늘날 이 가정의 모습은 성경에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신문의 사회면에 나와야 더 어울릴 듯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이 집안은 신문의 사회면에서 소개가 되지 않고 바로 성경에 나오게 됩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범죄인이 되지 않으면 다행인 그런 환경을 안고 그들은 살아갔지만 그들은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유영철 오스왈드의 가정과 비교했을 때 무슨 차이입니까?



정답이야 바로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반 교육학이 아닌 기독교교육학의 정답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세상의 학문으로 증명할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살리십니다.

저는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절)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 그리하면 장수하고 평강을 누릴 것이다
3절)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 - 그리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5절)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라 -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지도해주신다
7절) 여호와를 경외하라 - 그리하면 몸이 윤택하게 될 것이다
9절) 여호와를 공경하라 - 그리하면 창고가 가득 차고 포도즙이 넘칠 것이다


저는 잠언을 읽을 때마다 솔로몬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솔로몬의 그 안타까운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원래 솔로몬은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출생 자체가 죄의 뿌리였으며 수많은 형들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출생으로나 서열로 봤을 때 결코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왕이 된다 하더라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계속 통치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던 20살의 막내 왕자였습니다. 무서운 형들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현실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하나님을 의뢰합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합니다. 그에게는 많은 부귀영화가 소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축복해 주셔서 송로몬의 통치기간이 40년 동안 전쟁이 한 번도 없었던 유일한 왕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잠언이 무엇입니까? 그 경험을 간증으로 갖고 있는 아버지 솔로몬의 자녀교육철학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을 의지하라!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가정의 환경은 또 무엇입니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 많이 가르쳐 주는 일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게 해 주는 일 물론 다 필요합니다만.....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은 먼저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아이들의 삶을 행복하게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들을 자신의 교사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가정사역 센터에서 학생과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했습니다. 먼저 부모님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녀가 언제 당신보다 지적 수준이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대체적인 대답은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자녀가 대학을 다닐 때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녀들에게 물었을 때 의외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자녀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어머니 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중학생이 되면 아버지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의 현실과 아이들의 생각을 종합해 보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반항하지 않고 말을 잘 듣는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부모님 날을 들어 주는 것뿐입니다. 속아서는 안 됩니다. 교육효과의 극대화는 교육을 받는 자들이 교육자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인정 할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인데 학교 선생님도 존경하지 않는 아이들이 부모의 교육을 받을 것 같습니까?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는 이미 교육을 할만한 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를 그렇게 고상한 교사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된 자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 가면서 자녀를 교육한다 해도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란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의 역할은 좀 다릅니다. 무엇을 많이 가르쳐야 하고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 철저히 가르치며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할 것 같지만 성경을 그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는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를 가르치기에는 우리 자녀들에게 너무 많은 실수와 잘못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여주는 부모의 역할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자」인 것입니다. 거창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에만 힘을 쏟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가르치려 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못합니다. 본을 보이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그런 자격이 없습니다. 그냥 교회에 데리고 나오십시오. 교회에 오는 것을 막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 뒤에는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까지만 우리에게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의 자녀들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참으로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녀들이 행복해 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소망을 갖고 있는 무든 부모님들께 여쭤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연주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능력의 한계가 있는 부모들이 아닌 천지를 창조하시고 능력 많으신 우리 하나님께 우리의 자녀들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자녀들에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자녀의 목에 매며 자녀의 마음 판에 새기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 자녀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너는 너희 자녀들이 마음을 다 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자신의 명철을 위지하지 않도록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 자녀의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제 다음 주면 우리 교회에서 어린아이들을 위한 여름 성격학교를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일생이 바뀔 수 있는 소중한 만남이 있는 행사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 아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참으로 잘 사는 아이들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설교후 기도>

하나님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 손에 의탁합니다.
우리의 지혜와 지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게 하시며
세상의 학문으로만 아이들을 기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과 말씀으로
우리 아이들을 키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이들의 장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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