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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5일 주일] 끝없는 시간과의 싸움

끝없는 시간과의 싸움 - 믿음에 대하여 (1)
행1:6-11



여러분들께서는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제일 힘이 드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목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느끼는 것과 또 교우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을 종합해 보면 역시 신앙생활에 있어서 <믿음>이라는 그 자체가 가장 풀기 힘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이 겨자씨 만큼만이라도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 하시지만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정작 우리의 고민은 그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마치 약국에 가서 「이 약을 어떻게 얼마나 먹어야 합니까?」 라고 물을 때 「적당히 먹어야 합니다.」 라고 약사가 대답해 준다면 그것은 참으로 애매한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부닥치게 되면 시실 그 문제들이 속 시원히 잘 풀리지는 않습니다. 내가 그 문제들을 풀 수 있을 만큼 성경을 많이 알았으면 좋겠고 또 누군가가 그 문제들을 수학 풀듯이 잘 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말 저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 믿음의 문제가 속 시원히 풀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다음에 목사가 되면 이런 믿음의 문제를 교인들에게 잘 풀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의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읽고 또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신학을 깊게 공부해 보니 의외로 우리의 신앙을 흔들어 놓는 것은 <믿음>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적다 믿음이 많다 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어느 정도의 믿음이 적은 것인지 어느 정도면 많은 것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외로 우리의 신앙을 힘들게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닌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조주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기는 믿는데 왜 그 사건이 지금 내게는 일어나지 않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나았습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고 있는데 왜 그 사건이 지금 내게는 일어나지 않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시간의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루어 질 것을 알고 또 기대는 하고 있지만 그것이 가장 필요한 <지금> 일어나지 않는 것에 마음이 아픕니다. 내가 알고 있는 성경의 이적들 내가 갖고 있는 믿음 또 기대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왜 지금 내가 가장 필요로 하고 있을 이때에 일어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신앙의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성격 급한 것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이제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 성격이 급한 것은 때로는 장점도 되지만 대부분은 단점으로 많이 작용합니다.

저도 성격이 매우 급한 편입니다. 원래 급한 민족성에 또 어려서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자라왔기 때문에 더욱 가중된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가족과 같이 어딜 가실 때 어머님께서 늦게 준비하시는 것을 잘 참질 못하셨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옛 어른들도 그러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저희 아버님은 좀 심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하루는 어머님께서 화장하는 시간이 길어지시니까 아버님은 그냥 밖으로 혼자 나가셨습니다. 어머님은 놀라서 양말 같은 스타킹을 들고 뒤따라 가셨는데 결국 차 안에서 신으셨습니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도 오늘 날 그와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급한 성격의 그 피가 제 속에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 요즘 해외여행을 많이 합니다. 일본에 사는 우리들 한국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하면 많이 하는 만큼 이곳에서 가이드를 많이 하게 됩니다. 여러분 손님이 동경에 오시면 잘 모시고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저는 하꼬네를 자주 모시고 가는데 하꼬네에 가면 꼭 오오와쿠다니(大通谷)를 가 봅니다. 그곳의 계곡을 오르다 보면 먼저 관광하고 내려오는 사람들과 교차가 되는데 꼭 입에 계란 하나씩 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한국 사람들입니다. 구로 타마고를 6개씩 포장해서 파는데 한 봉투에 든 계란 6개를 그 시간에 다 먹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다 먹어야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그 급한 한국 사람들의 성격은 그대로 신앙생활에도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급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교회도 빨리 부흥해야 하고 예배당도 빨리 지어야 하고 병도 빨리 나아야만 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신앙도 빨리 성장해야 하고 믿음까지도 빨리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극성맞도록 합니다. 심지어는 이런 우스개 소리까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기도한다고.
「주님 내게 인내를 주시옵소서. 속히 주시옵소서!」라고.

이 시간의 문제 속에 기다라지 못하는 급한 성격은 결코 나쁜 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기다림은 매우 힘든 문제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인들이 그렇게 열심히 주님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문제에 걸려 주를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마치 그 옛날 주님의 제자들이 시간의 문제 때문에 주님을 버렸던 것 같이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역사가 비슷하고 문화도 비슷하지만 특히 민족성이 많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민족성이 비슷하다는 데는 성격이 급한 면이 같다는 의미가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통적인 약점은 시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간을 오래도록 기다리지 못하고 급한 성격을 갖게 된 데는 그들의 문화가 한국 사람들과 같이 원래 유목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목민족은 농경민족과는 달라 생활의 형태가 기다리는 쪽이 아니라 찾는 쪽에 더욱 가깝습니다. 물이 없으면 찾으면 되고 먹을 것이 없으면 먹을 것이 많은 곳으로 옮기면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과 경험 그리고 노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의 시내산에서 모세가 없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자신들이 급하게 만들고자 했고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으로 숭배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없는 것도 참지 못했고 하나님을 기다리는데도 참을성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반면 농경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 년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을 바라보고 비가 오기를 기다렸고 한 해의 농사가 잘 되지 않으면 다음 해의 농사를 기다렸던 사림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무슨 일이든 빨리 이루려 하지 않고 언제나 겸허한 자세로 하늘을 바라볼 줄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자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의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단순히 살만한 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장소의 이동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유목민족이 농경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양을 키우며 살았던 유목민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하는 가나안으로 들어 간 것입니다. 문화의 변화 입니다. 삶의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훈련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가치관이 변해도 나를 계속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목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여호와는 배가 고플 때 푸른 초장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분이었고 목이 마를 때는 쉴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해 주신 분이었습니다. 맹수가 나를 애워 쌀 때는 맹수의 입을 막아 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농경생활에서는 그런 여로와 하나님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이요 뜨거운 태양의 빛뿐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비를 내리는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푸른 초장은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맞는 말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정답이 아닙니다. 신앙은 아닙니다. 신앙에 있어서는 유목생활을 하든 농경생활을 하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를 내리시기도 하고 햇빛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농경생활의 가치관 속에서 유목생활의 가치관을 지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 속에서 하나님의 가치관을 기키며 살 수 있느냐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오는 유혹이 무엇입니까? 지배가치관이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교회에서의 가치관과 교회 밖에서의 가치관이 다릅니다. 교회 밖에 나가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경의 가치관과 사회의 가치관이 다릅니다. 사회에 나가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경에서의 사는 방법과 현제 일본 땅에서 사업을 하는 방법 직장생활을 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것이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는 모습의 장면입니다. 즉 이 땅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요 그러기에 매우 중요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가장 관심 있는 것 가장 급하게 해결되어야 하는 것을 묻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에 관한 문제입니다. <언제입니까?> 하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언제인가?> 가 가장 중요한 것이요 가장 관심이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기다려야 하는 순간에 그 기다림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예수님을 보챕니다. 언제냐고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다 모이긴 했지만 농사를 짓다가 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어부요 또 세리도 있었습니다. 어부가 누구입니까?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으면 되는 사람입니다. 세리는 누구입니까? 밖에 나가서 사람들의 돈을 거두면 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부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부족한 것은 없는 사람들입니다. 배고픈 사람들은 아닌 것입니다. 그냥 나가서 잡고나 거두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다 도망갔었습니다. 기다리지 못해서였습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제자들은 누구보다 기막힌 산앙고백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가장 소중한 신앙고백을 한 장본인 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장 오랫동안 사랑했고 예수님의 의중을 그나마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의 문제에서 그들은 흔들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오늘 그들의 최고의 약점인 시간의 문제에 시간으로 대답을 해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그 시간의 문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시는 것입니다.

7절) 그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시간 속에서 참아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니 너희는 그 하나님만 믿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하시는 우리의 아버지 되십니다.

마7:9-11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성경에도 많은 기다림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원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인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25년을 기다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었습니다. 야곱은 20년 이상을 참고 기다리는 중에 다시 하나님의 약속하신 고향땅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15년 간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믿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은 부러워하면서 그들이 힘들게 힘들게 갖고 온 <기다림>에 대해서는 잘 못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드시 이루겠다는 믿음 보다 언젠가 가장 좋은 때에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그 믿음을 잃지 않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그 믿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요즘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십니까?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아서 힘이 드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는 것 같아 힘이 드십니까? 믿음이 적어서 힘이 드십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믿음도 있고 신앙도 있고 하나님도 알고 성경도 압니다. 그런 우리가 신앙에 있어서 힘이 드는 것이 있다면 하나 그것은 바로 기다림에 지쳐서입니다.

오래도록 기도해 왔는데 응답이 없습니다. 내 계획 속에 그 때 그 때 마다 이루어야 하는 것들이 참 많은데 하나님은 통 응답이 없으십니다.
남편의 신앙을 위해 얼마나 더 기도해야합니까?
자녀들이 돌아오기를 위해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합니까?
지금 사업이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기도의 응답이 빨리 오질 않습니다.
올 해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답답하기만 합니다.
병이 빨리 나으면 더 하나님의 일을 잘 할 것 같은데 병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괴로운 것입니다.

믿음의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이 시간과의 싸움이 우리를 많이 많이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권한에 두셨다고.... 그래서 우리의 알바가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외면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여전히 우리를 자녀로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때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생각과는 좀 다르지만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내가 바라던 때에 내가 바라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 더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반드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참 좋은 믿음인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갖고 믿음대로 생활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우리를
시간과 싸워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랜 기다림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속에
불안과 불신이 자리하지 않게 하시고
정말 좋은 신앙의 열매로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를 때
나의 시간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시간을 인정하는
참 좋은 믿음을 소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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