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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23일 주일] 주께 엎드리는 자


주께 엎드리는 자

삼하12:15-23




오늘은 우리교회에서 안수집사 5분 권사 5분이 새롭게 임직을 하는 날입니다. 저는 이 뜻 깊은 날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는 임직하는 사람들이 어떤 삶의 자세로 살기를 원하시는지를 성경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꼭 임직을 받는 10분의 집사님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긴 경험은 하지 않았지만 일본의 한인교회에서 봉사를 해 왔습니다. 일본에 있는 한인교회들은 몇 가지 특징이 비슷하게 나타나는데 대체로 처음에는 빠르게 성장을 하다가 어는 정도 성장하면 그 선을 넘지 못하고는 대부분 문제가 생겨서 넘어지거나 교회가 해체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장이란 꼭 교인의 수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분위기까지 총체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 다른 교회의 경험을 조금이라도 하신 분들은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론 한 교회가 계속 성장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 복합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목회자나 임직자(중직자) 등 사람을 잘못 세우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이 땅에서 교회를 쓰러뜨리기 위하여 늘 시험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자기의 사람을 교회에 세워 교회를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기의 방법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헌신하고 더욱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할 임직자들이 오히려 대접받으려 하고 지시하고 주인노릇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회자들이나 임직자들은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은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전 과정에서의 그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세를 하나님께서는 가장 중요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윗은 위대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다윗은 일생일대의 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실수 속에서도 자신의 원래의 모습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었고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셨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자세히 보여줍니다. 이때는 다윗에게 있어서는 인생 최대의 위기의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추악한 죄가 드러난 때이고 그 벌로 자신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봐야하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 때에 다윗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삼하12: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엎드린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의 엎드린다는 표현은 그렇게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아닙니다. 두 가지의 경우 엎드렸다는 말을 쓰게 되는데 하나는 왕 앞에서 백성들이 엎드릴 때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이 엎드릴 때 이 엎드린다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하나님께 엎드린다는 말을 쓸 때 하나님께 엎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엎드린다는 것은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엎드린다는 것은 내 삶이 무엇인지 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내 죄와 내 모습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절대자 앞에서 취하는 행동입니다. 여러분들은 현재 여러분들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아십니까?

불경(佛經) 중 아함경(阿含經)에는 삶에 대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하나 나옵니다. 어느 사람이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성난 미친 코끼리가 달려듭니다. 자신을 해하려하는 코끼리를 피하려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도망을 가다가 우물이 있어 등나무를 타고 우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살았다 싶어 한숨을 돌리는데 그런데 그 우물 밑에는 독사가 우글거렸습니다. 위에는 성난 코끼리(세월을 뜻함) 아래는 독사(죽음을 뜻함)가 자신을 물려고 달려드는데 겨우 등나무에 의지하여 목숨을 부지합니다. 그런데 그 등나무를 흰 쥐 검은 쥐가 와서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이제 곧 등나무는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 벌이 그 위에서 벌집을 만드는데 그 꿀벌로 인해 꿀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데 그 사람은 떨어지는 꿀을 받아먹으면서 자신이 처한 그 난처하고도 긴박한 상황을 잊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그것이 사람의 모습이라고 가르칩니다.

세월이 우리를 좇아옵니다. 죽음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갉아 먹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내 삶의 주권이 내게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삶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불교는 상황을 가르쳐 주지만 기독교는 그 답을 가르쳐 줍니다.

다윗은 지금 위기의 상황입니다. 아이가 병에 걸려 죽게 되자 금식하며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죽자 일어나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확실하게 아는 것입니다. 매달릴 줄도 알고 포기할 줄도 아는 것입니다. 모두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확신하고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주 앞에 엎드린다고 하는 것은 모든 신앙적 고백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고 그러기에 죽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있고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압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알고 있는 하나님을 내가 압니다. 이보다 더 귀한 신앙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무엇을 더 기도하겠습니까? 주님이 나를 안다는 사실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닙니까?

오래 전 새벽기도 때 옆에서 기도하는 어느 여 집사님의 기도가 자꾸 귀에 들어 왔습니다. 그 분은 그 날 새벽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만 외쳤습니다. 오직 그 한 마디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새벽 그 분의 기도를 들으면서 저 분은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고 믿는 것은 아버지가 나를 아는 것 같이 내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임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이 나를 알고 하나님을 바로 알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매달린다는 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달려 나가 몸을 땅에 굽혔습니다(창18:2). 그리고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합니다(출3:5). 그리고는 모세에게 새로운 일을 맡기십니다. 엎드리는 것과 신을 밧는 것은 다 같은 뜻인데 그것은 나를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즉 내 뜻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장승철 전도사님의 목사 안수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한국엘 갔습니다. 제가 12년 전에 목사 안수를 받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만 한국 개신교의 목사 안수식은 너무나 간단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냥 노회에서 선서를 하고는 머리에 손을 앉고 안수하는 것으로 목사가 되고 맙니다. 목사라는 큰 직을 받는 뜻 깊은 일에 비하면 너무도 간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 지금도 가톨릭에서는 사제 서품을 줄 때 땅에 엎드리게 합니다. 땅에 엎드린다는 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의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내 뜻은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겠다는 의미입니다.

의식으로라도 하나님 앞에서 엎드린다면 나를 포기하겠다는 그 마음이 우리에게도 조금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그것을 누차 말씀하고 계십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안에 나의 마음이 꽉 차 있으면 다른 마음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다른 관심으로 꽉 차 있으면 예수에 관한 관심을 간직할 수 없습니다. 나를 비워야 다른 마음이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서울에 갔을 때 청계천이 많이 변했다 하여 일부러 청계천을 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 동대문에 나갔다가 청계천 다리를 한 번 구경 갔었는데 제가 깜짝 놀란 것인 평회시장 앞 다리에는 전태일의 기념상이 세워진 것 때문입니다.옛날에는 그 이름 부르는 것조차 어려웠었는데 세상이 참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그 기념상이 세워진 곳은 어떤 곳입니까? 전태일은 당시 22살의 청년이었습니다.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고는 그 자리에서 몸에 시너를 붓고 몸을 불태웠습니다. 당시 봉재공장에서 일했던 그는 18시간 일하게 하고 고급 호텔의 커피 한 잔 값을 월급으로 받았습니다.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그는 자심의 몸을 불태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 <전태일 평전> 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그 책이 나오게 된 뒷이야기가 아주 감동적이다.

당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태일이 살던 방에서 그의 유품을 챙기다가 전태일이 쓴 일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일기를 읽어 내려가다가 그 학생은 전태일의 글을 통해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 일기에는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내게 漢字를 아는 친구 한 사람만 있었더라면 이렇게 어려운 한자로 된 노동법을 빨리 해석할 수 있었을텐데..... 」
그 뒤 이 청년은 자신이 전태일의 친구가 되어 주기로 작정을 합니다. 전태일은 이미 죽었지만 그를 위해 할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전태일에 대한 모든 것을 모아 <전태일평전>이라는 책을 쓰게 되고 자신도 이후에 전태일의 마음으로 인권 변호사가 되어 활동을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한국에서 유명한 인권 변호사였던 조영래 변호사(1947-1990)입니다.

내 것을 고집하면 다른 것이 들어 올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을 고집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는 너의 세상적인 마음을 버리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일꾼을 세우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까? 그것은 주 앞에 엎드리는 마음입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 인 것을 고백하고 내 삶을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임을 믿으며 주 앞에 엎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좋은 일꾼을 세우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교회가 성장합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교우들이 행복합니다. 우리 모두 오늘 임직을 받는 10분의 집사님들이 그런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라고 우리교회가 계속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사용하시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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