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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14일 주일] 평화통일 선교의 길

평화통일 선교의 길 278 371 에베소서2:14-22
최근 일본에 입국한 어느 분에게 저는 일본의 첫인상을 물어 보았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졸고있는 사람이 많은 사실에 놀랐다는 말을 듣었습니다. 그 때 저도 아! 정말 그렇구나하고 새삼 놀란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회가 안전하고 긴장감이 느슨하다고 하는 것인지요? 혹은 모두가 너무 피곤한 것인지요? 아뭏든 평화스런 분위기 속에서 안전을 느끼기에 잠을 잔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예전에 오오사카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집 가까운 곳의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다가 면도를 하던 청년이 그만 제 턱을 베어 피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꽤나 따갑고 아프더군요. 그 후에 제가 그 이발관을 이용하러 찾아 갔을까요? 아니 두번 다시 가질 않았습니다. 자칫하다가 목 베임당하는 사건이 발생할지 누가 압니까? 그런데 제대로 잘하는 이발관에서는 안심하며 자기 목을 내밀어 놓고 평안함과 안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평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감각적으로 지각이 둔해진 상태가 계속되기 쉬운 단면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중동지방의 버스 안에 주인 모를 가방이 놓여진 채로 있으면 갑자기 승객들이 허둥지둥 야단을 하면서 내린다고 합니다. 주인없는 가방 안에 시한 폭탄이 들어있지는 않나 해서 테러의 공포로 서둘러 내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버스나 전철 안에 주인 모를 가방이 놓여져 있으면 어떻습니까? 종점까지 가서야 차장에게나 역장에게 전달이 되어 주인을 찾아주는 예가 많기에 아무도 겁을 내며 내리거나 도망치는 자가 없습니다. 자 그러면 이시간에 주인없는 가방이 여러분 각자가 사는 곳의 버스나 전철안에 놓여 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상상해 보실 수 있는지요?

그 상상의 날개를 타고 눈 길을 최근의 국제사회로 돌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번에 발발한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은 대규모 폭격과 지상군 전투로 승리했습니다. 걸프전쟁으로부터 12년이 지나 당시보다 더욱 강력한 미사일이나 정밀도 폭탄이 이라크의 정치·군사 거점을 파괴했습니다. 미군 공격이 시작된 후 부시 대통령은 전쟁 목적을 대량살상무기를 해제하여 이라크의국민을 해방시키고 세계를 중대한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전쟁을 하지 않아도 대량살상 무기를 폐기시킬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무력행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정치가로서 제일 소중한 것은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자는 일본의 코이즈미 수상입니다. 이는 일본의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 후에 한 말입니다. 그런 코이즈미씨는 이라크 공격이 시작된 순간 기다리고 있던 것과 같이 미국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미일 안보의 중요성을 전면에 내세워 미국은 일본에 있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고 일본도 미국에 있어 신뢰에 충분한 동맹국이기를 바라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북한의 핵무기 문제를 의식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여기에는 큰 모순과 심각한 문제가 잠복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각국의 기독교 여러 단체에서는 정부를 향하여 요망서를 제출하고 평화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지구상에 전쟁으로 인해 도망칠 방법도 없고 불안에 떠는 전쟁의 위협 아래 있는 난민들을 생각하면 우리 가슴이 아픕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고나면 시계 바늘은 원래의 방향으로 되돌아 가지는 않습니다. 이전에는 그만큼 마음에 영향을 주지 않았던 말이 왠지 새삼스레 생생하게 귓전에 들리듯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분쟁이 있는 곳에 화해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성 프란체스코는 12세기말 이탈리아의 앗시지의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젊었을 때는 방탕한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나 병으로 고생한 후에 정신을 차려 청빈한 가운데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앗시지의 성인으로 알려진 그는 종파나 종교를 넘어 경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는 계속됩니다.
」위로 받는 것보다 위로하는 사람이이해 받는 것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사랑 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는 주기때문에 받고 용서하기에 때문에 용서받고 자기를 버리고 죽으면 영생을 얻기 때문이라.」

이 기도의 말 그대로 평화의 도구가 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험악한 분위기가 평화스런 세계를 깨뜨리고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가려는 움직임 가운데 평온함을 주어 용기를 주는 말이 되기를 간구하는 바입니다. 마태5:9 말씀대로 화평케하는 자(peace maker)는 복이 있나니 저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평화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정신을 정확하게 실행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라고 할 바에 대해서는 예라고 대답해 나가는 그리고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니라고(마태5:37) 대답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 에베소2장14절에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평화입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고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오히려 보복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도 이 주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평화 통일의 날을 이루어 가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여러분에게 권면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고후 5:18-20).

특히 오늘은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이한 지 60주년의 날이기도 합니다. 이에 우리 총회는 평화통일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우리 총회는 평화통일선교위원회 라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지금까지 8차에 걸친 평화통일선교회의를 추진해 왔습니다. 더우기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인식해 우리 민족끼리 어우려져 사는 미래상을 그려보기를 바랍니다.

구약성서 창세기를 보면 야곱과 에서가 어떻게 화해를 이루었습니까? 바로 야곱의 얍복강에서의 기도를 통해서 형 에서와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며 인격이 달라진 것입니다. 즉 먼저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기부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참된 평화는 주님과 같은 기도를 드리고 서로 용납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편133편1절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말합니다. 우리들 남북 형제자매도 평화통일후 연합하여 동거하게 되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현실적으로 7천만 우리 민족이 함께 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아직 통일이 되지 않은 분단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 아직도 그 위에 얹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5년전 6.15 남북수뇌회담은 민족분단의 십자가를 벗고 온 민족이 힘을 합하여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도록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화의 표징이었습니다. 구약성서 에스겔37장15절 이하를 보면 두개로 갈라진 남북 이스라엘이 하나가 된다는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두 막대기가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합니다. 우리나라도 반드시 이 예언의 말씀대로 하나가 되는 날이 올 줄 믿습니다.

우리는 평화와 화해를 이루기 위하여 더욱 자주 만나고 더욱 많이 사랑하고 더욱 깊이 이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사랑으로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고통을 서로 나누면 반으로 줄 것이요 기쁨을 서로 나누면 두배로 늘어난다는 믿음으로 화해와 평화를 위한 통일의 길을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화와 공존의 지평을 더욱 넓히고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가 누릴 평화 통일의 날을 그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 에베소2장19절에는 이제부터 너희가 하나님의 권속 즉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가족 즉 교회라는 것입니다. 매주마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귀한 가족입니다. 그러니 어려움에 처한 이북의 어린아이들 동포들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영적인 성숙도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성숙도는 바로 고통과 질병 중에 있는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였나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죽음과 질병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모든 빈민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숭고한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테레사 수녀는 말하기를 그녀의 눈에는 모두가 예수님으로 보였다는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20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고 합니다. 인자는 실로 머리둘 곳이 없는 예수님은 친히 가난하여 진 분이십니다. 생명이 있는 산 돌이신 주님이 오늘날 교회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기초요 머리인 것입니다.

이제 본문 21절과 22절의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 거하실 집을 지어가야 할 것입니다. 집은 그대로 역사를 말해준다고 어떤 이는 말했습니다. 든든히 서가는 성전에서 평화통일 선교의 길을 닦기 위해서도 다음의 기본적인 네기둥을 함께 세우기를 바랍니다.

첫째 기둥은 창조신앙의 기둥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을 창조해 주셨다는 창조신앙이 중요합니다.
둘째 기둥은 임마누엘의 기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화해와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습니다.
세째 기둥은 십자가의 기둥입니다.
본문 에베소서2장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로 이 둘을 한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신다고 합니다. 이사야53장의 예언말씀대로 주님이 우리의 평화를 위해 오셔서 십자가의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네째 기둥은 부활신앙의 기둥입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부활신앙의 힘입니다.

이 네가지 기둥 위에 하나님의 집을 지으면 하나님은 그 위에 성령이 임하게 하여 주십니다. 성령의 역사로 사람들의 돌같이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36:26)
그리고 갈라디아5:2223의 말씀대로 성령의 열매를 거두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습니다. 로마서14장17절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습니다.

해방 60주년의 평화통일주일 예배시간에 우리 모두 서로가 이해하고 화목하게 사는 꿈을 그립시다. 그리고 평화통일선교의 길을 개척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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