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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 주일] 내 나이 50이 넘었는데


내 나이 50이 넘었는데

엡 5:8-21



마라톤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라토너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꿈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프로 선수들에게는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는 것이나 보스톤 마라톤 같이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내는 것이 꿈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직업적인 프로 선수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마라톤을 사랑하는 순수한 아마추어 선수들도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라토너라면 누구나 써브-3 (Sub-3)라는 꿈을 갖는 것입니다. 써브-3 라는 것은 마라톤의 풀코스인 42.195km를 3시간 안에 뛰는 것을 말합니다. 즉 마라톤 코스를 2시간대에 주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요즘은 2시간 10 분 정도만 뛰어도 기록이 저조하다고할 만큼 마라톤의 기록이 엄청나게 단축되고 있지만 사실 3시간 안에 뛴다는 것은 아마추어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큰 기록인 것입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생각해도 2시간대에 마라톤 풀코스를 뛰려면 평균 시속 15km 이상으로 3시간을 계속 뛰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3시간 동안 평균 시속 15km 로 뛴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이 마라토너들도 써브-3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러한 노력에는 체계적인 훈련이 필수적인데 체계적인 훈련의 가장 중요한 점은 후반부에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어떻게 체력을 잘 안배하느냐에 승패가 갈린다고 합니다. 마라톤의 승부는 30km 지점에서부터 골인 지점까지에서 많이 좌우 되는데 그 구간이 제일 힘든 구간이고 그 때에 가장 힘이 많이 빠지기 때문입니다.

써브-3 를 하기 위해서 저는 식이요법까지 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몸에 지방질이 많으면 몸이 무거워 좋은 기록을 낼 수가 없고 그렇다고 몸에 비축한 에너지가 없으면 오랜 시간 달릴 수 있는 힘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록을 단축시키려는 마라토너들은 시합을 앞두고 체계적인 운동과 함께 식이요법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힘을 비축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축척하기 위해서 시합 한 주 전부터 생고기를 아무 양념 없이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을 비축해야 30km지점부터 골인지점까지 힘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흔히 마라톤 시합에 비유를 합니다. 출발과 달리는 과정 그리고 골인 하는 모습까지 모든 것이 같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스포츠가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마라톤만큼 유사한 운동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모습이 마라톤과 비슷하다고 하는 데에는 마지막 힘을 내야 하는 30km 구간에서부터 골인 지점까지의 구간이 힘이 드는 것 같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마지막 힘을 내야 하는 기간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에도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 보다는 인생의 마무리가 잘 되어야 한다고들 말을 합니다. 끝이 좋아야 좋은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요? 무엇으로 그 인생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요?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죽을 때 무엇으로 그 인생을 평가받을 수 있을까요?

정초부터 나이 얘기를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대게 나이 40이 되면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합니다. 50이 되면 7부 능선을 넘었다고 합니다. 30km에서 골인 지점까지 가는 선상에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 50이 되면 그래서 골인 지점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본인은 부인 할지 몰라도 50이 넘으면 이제 골인지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골인 지점 앞에서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무엇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은 진정 멋진 삶을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올 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여러분들의 나이가 40이 넘으셨습니까? 그러면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것을 늘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나이가 50이 넘으셨습니까? 인생의 7부 능선을 넘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는 내게 남겨진 나머지 에너지를 다 쏟아서 우리의 살아 온 인생의 여정을 보람된 삶으로 바꿔야 하는 때입니다. 골인지점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최선을 다 해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돈이 아무리 많아도 힘이 아무리 많아도 오래 살았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를 잘 살았다고 평가해 주지 못합니다. 정말 한 번 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의 길을 잘 살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유일한 비결을 말씀해 주십니다.



1.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 안에 있을 때에만이 참된 빛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은 물건을 만들 때 사용설명서를 함께 만듭니다. 그래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용법도 알고 고장이 났을 때 고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사용설명서를 함께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들고 있는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해 주는 방법이 가장 정확한 방법인 것입니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성경은 사람들을 둘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하나는 어둠의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그 빛과 어둠의 사람들을 구분할 때의 기준은 돈이 아닙니다. 편안한 삶이 아닙니다. 권세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빛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당시 예루살렘에는 나이 많은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시므온」이라는 할아버지와 「안나」라는 할머니입니다. 시므온 할아버지의 나이는 성경에 정확히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함께 나오는 안나 할머니가 과부로서 84세라고 하는 것과 성경 전체의 문맥을 몰 때 약 90세 정도는 되지 않았나 보여 집니다. 90세의 할아버지 「시므온」과 84세의 할머니 「안나」가 성경 눅2:25-38 에 나오는데 그들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 기록이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두 노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말하는 것이 범상치 않습니다. 그들은 많은 시간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을 모두 느끼며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시므온 할아버지는 눅2:25에 의하면 의롭고 경건한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마 생활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당시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사람같이 여겨집니다. 편안한 생활을 하며 성실히 살았던 존경받는 어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나 할머니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보입니다. 안나 할머니는 시집가서 7년간만 남편과 살다가 일찍 과부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최소한 60년 동안 과부로서 혼자 살았던 할머니 인 것입니다. 삶의 많은 시간들이 힘든 생활로 이어졌음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갖고 있는 할머니였습니다.

시므온 할아버지는 세상을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고 안나 할머니는 세상을 아주 험하게 살았던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삶의 여정을 걸어 온 그 두 노인의 고백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시므온 할아버지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눅2:29-30
「내 눈이 그렇게 기다리던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이제는 나를 평안히 놓아 주십시오.」

그리고 안나 할머니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런 성경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오늘날의 말로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84세 90이 되도록 삶을 살아 왔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분을 이제야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 가장 복됩니다. 나의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제서야 이 노인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편안한 삶을 살았건 고생스런 생활을 했건 그것은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우리가 어둠의 사람들로 살고 있는가 빛의 자녀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은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 <얼마나 편안했느냐> 로 갈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보람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삶의 그 깊은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우리가 나이 84세 혹 90이 되어서 죽을 날이 다가왔을 때 이제 내가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그 조건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그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내려 주고 있습니다. 주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그런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시므온 할아버지 안나 할머니의 고백과도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주 안에서 사는 것 그것 밖에는 없습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아무리 존경받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많은 업적을 남겨놓았다 하더라도 오래 살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구원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단언하건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주 안에 거할 때 비로소 빛의 자녀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다시 성경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빛의 자녀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거기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엡5:10-11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굳이 마라톤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 우리의 삶이 끝날지 알지 못하는 존재이고 혹 우리가 사람들의 평균 수명만큼 산다 하더라도 그 수명이 다하는 날은 곧 오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남은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을 아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을 준비하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월을 아껴가면서 힘써 해야 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돕는 일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업을 포기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교회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모두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생활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자리에서 주를 위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방탕하지 말고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최선을 다해 삶을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선교적인 삶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남은 시간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술 취해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싸울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기에도 짧은 시간이기에 우리는 힘써 그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엡5:18-2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러기에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도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새 해 첫 날에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힘쓰는 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목사라고 하면 늘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보람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제 삶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때문에 많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제 또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저도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었습니다. 골인지점에 한 해 더 다가가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저도 큰 일 없이 상식적으로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반환점을 이미 오래 전에 돌았는데 좀 더 경각심을 갖고 골인지점까지 달려가려 합니다. 저는 새 해를 맞이하면서 이제 제가 하나님 앞에 서기 까지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고는 새롭게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 다짐은 1-2-3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먼저 <1>이란 매 년 한 해에 한 가정씩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목사이고 교회 일이 직업입니다. 그리고 설교를 준비하고 교인들에게 성경에 대하여 해석해 주고 설명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사람도 있고 은혜를 많이 받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저는 그런 것으로 예수님을 알게 하는 것 말고 제가 제 입으로 제 삶으로 일 년에 한 가정을 예수 믿도록 전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내가 그렇게 좋아서 믿는 예수 예수를 믿음으로 인해 주님께서 내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 해 주셨는데 그렇다면 지금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제가 하나님 앞에 가기 전까지 한 해에 한 가정씩 전도를 하려 합니다. 결코 무리한 계획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복음의 빚 진 자로서 부끄러운 삶을 사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다음으로 <2>라고 하는 것은 우리 집의 두 아이를 말합니다. 저는 저희 두 자녀들이 믿음의 열매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떠한 어려움이 닥친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을 소유하고 나가기를 소원하며 그렇게 성장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믿음이 연약한 이 못 난 부모보다 더 강건한 믿음을 소유하고 생활하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내 신앙의 믿음의 열매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살면서 개인적으로 도와야 하는 몫을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교회의 여러 선교정책과 구제정책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는 목사인 저의 영향력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하여 선교위원회 분들이 선교후원 할 곳을 직접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의 사사로운 정이 개입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으로 양으로 목사의 의지가 반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돕고 싶은 곳에 선교후원금을 보내고 있는 것도 시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교회의 예산으로 선교후원이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 말고 저는 적으나마 제 호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선교단체나 구제단체를 돕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좀 더 넉넉한 상활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선교와 구제에 있어서 내 몫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하나님 앞에 가기까지 적어도 세 곳을 후원하며 도우며 살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1-2-3운동입니다. 저는 이 일을 제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제 인생의 골인지점에 가기 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하지 못하면서 삶을 살아간다면 저는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선 사람으로 골인을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꼭 골인을 준비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부끄러운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한 해를 여는 새 해 첫 날입니다. 우리의 개념으로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새해의 첫 날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월은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가는데 자칫 잘못하면 가장 소중한 것을 노치며 시간을 다 허비할 수 있는데 우리가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이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안에서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꼭 품고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은여생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으며 그 일에 애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2006년도 올 한 해가 정말 가치 있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이 땅에서 눈을 감을 때 시므온 할아버지와 같이 안나 할머니와 같이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또 한해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합니까?
우리의 남은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를 주시고
참으로 가치 있는 사람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찾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올 2006년도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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番号 題目 文件 日期 照会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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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2006년 4월 23일 주일] 주께 엎드리는 자 06-04-251643
96  [2006년 4월 16일 주일] 무엇이 부활하는가? 06-04-161623
95  [2006년 4월 9일 주일] 잡히시던 밤의 만찬 06-04-091682
94  [2006년 3월 26일 주일] 하나님의 법을 잊지말라 06-03-261623
93  [2006년 3월 19일 주일] 옥합 깨뜨리기 06-03-191399
92  [2006년 3월 5일 주일] 세월을 아끼십시오 06-03-05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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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2006년 2월 5일 주일] 너무도 약한 존재이기에 06-02-051213
88  [2006년 1월 22일 주일] 충성된 종의 완성 06-01-221176
87  [2006년 1월 15일 주일] 우리교회의 헌금생활 06-01-151283
86  [2006년 1월 8일 주일] 2006년의 신앙은 06-01-081268
85  [2006년 1월 1일 주일] 내 나이 50이 넘었는데  06-01-012024
84  [2005년 12월 25일 주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05-12-251427
83  [2005년 12월 18일 주일]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05-12-181162
82  [2005년 12월 4일 주일] 온유한 자가 받는 축복 05-12-041159
81  [2005년 11월 20일 주일] 감사의 때 05-11-201155
80  [2005년 11월 13일 주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2) 05-11-131230
79  [2005년 10월 30일 주일] 조연의 아름다움 05-10-301245
78  [2005년 10월 16일 주일] 돌아가서 복종하라 05-10-161159
77  [2005년 10월 9일 주일] 하나님이 살아계십니까? 05-10-091410
76  [2005년 10월 2일 주일] 교회의 사명 05-10-021266
75  [2005년 9월 4일 주일] 기독교의 힘 (2) 05-09-041766
74  [2005년 8월 28일 주일] 기독교의 힘 05-08-281265
73  [2005년 8월14일 주일] 평화통일 선교의 길 05-08-101166
72  [2005년 7월31일 주일] 백부장의 믿음 05-07-281498
71  [2005년 7월 24일 주일] 본질적 신앙 현실적 신앙 05-07-241458
70  [2005년 7월 17일 주일]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05-07-171183
69  [2005년 7월 10일 주일] 메시야 비밀 05-07-101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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