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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5일 주일] 우리교회의 헌금생활



우리교회의 헌금생활

신명기 14:22-29




우리는 어떤 현상을 대할 때 그에 대한 깊은 의미를 찾기 보다는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판단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식적인 생각들은 맞을 때도 있지만 맞지 않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 안에서도 많이 나타납니다. 교회는 예배당의 건물이나 장식 그리고 예배의식의 형태에 상징적 의미가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어느 교회의 예배당에 들어가 보면 강대상이 하나인 교회가 있고 또 어느 교회에 가면 두 개인 교회가 있습니다. 여러분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럴 때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회가 넓어서 강단에 여유가 있으면 강대상을 두 개 만들고 예배당이 좁아서 강단이 좁으면 강대상을 하나만 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강대상의 수에 대한 의미는 이렇습니다. 강대상이 하나인 교회는 제사의 의미를 강조하는 교회입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강대상이 하나라는 것은 그 강대상이 설교단이 아니라 제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제단을 통하여 모인 사람들의 죄의 고백과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의 말씀과 위로가 교차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입니다.

그에 반해서 강대상이 두 개인 교회는 교육의 의미를 많이 강조하는 교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리고 로마제국에 멸망되어 소아시아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여 살던 곳에 회당을 지었습니다. 회당(Synagogue)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 모여서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Synagogue라는 말 자체가 히브리어로 <만남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당에 모여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해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였던 것입니다. 그 정신이 후에 예배당에 내려 와서 강대상을 두 개로 분류하여 한 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 할 때만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이 설교할 때는 큰 강단에서 전도사님이 설교할 때는 작은 강단에서 하는 교회도 있는데 그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이렇듯 교회 안에서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는 잘못된 생각들이 많이 있습니다.


헌금의 방법도 그렇습니다. 어느 교회에 가면 헌금을 예배당에 들어갈 때 헌금함에 넣는 교회가 있고 어느 교회를 가면 바구니 같은 헌금 주머니를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예배당에 들어갈 때 헌금을 넣는 것은 신사적인 방법이고 주머니를 돌리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헌금을 많이 걷기 위해서 바구니를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앞에 바구니가 오는 데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도 그런 의미에서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당에 들어갈 때 헌금을 헌금함에 내는 것은 회당의 개념입니다. 말씀을 배우러 회당에 들어가면서 회당의 운영과 구제를 위해 회비를 내듯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그것을 한 때 <헌금>이 아닌 <연보>라고 구분하여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에 비해서 바구니를 돌리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제사의 의미가 들어가 있습니다. 제사에 참석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죄 사함 받기 위해 제물을 갖고 나와 하나님께 다 같이 그 제물을 드리면서 죄의 용서함을 받는 제사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제물을 드린다는 것과 모두 같은 시간에 제물을 드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동체 의식입니다. 그것이 오늘날에는 같은 시간에 헌금을 하기 위해 바구니를 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헌금을 많이 걷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렇듯 교회의 하나하나의 예식에는 신학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2006년도의 신앙생활을 좀 더 바르게 하기 위해 우리의 신앙의 발전된 모습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는 중에 헌금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저는 헌금을 강조하는 목회자는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어려서 다녔던 교회에서 헌금에 대한 상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헌금봉투가 23개였던 그 교회에서 자라면서 저는 나중에 내가 목회를 하면 헌금 봉투는 하나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지금 우리 교회는 봉투가 하나입니다. 그리고 저는 헌금을 강요하지는 않아야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헌금을 강요하지 않는 것과 바른 헌금 생활을 가르치는 것은 구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헌금을 설교할 수는 없고 그리고 헌금을 많이 해야 복 받는다고 설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액수가 많던지 적던지 바른 헌금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는다고 한다면 그 헌금의 방법을 바르게 알려주는 것도 또한 목회자의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바른 헌금 생활을 할 때 우리 손이 하는 모는 일에 복을 주시겠다고 오늘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신14:29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그렇다면 여러분 올바른 헌금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매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교인들이 많이 하게 되는 헌금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하나씩 풀어 보면서 바른 헌금에 대한 방법을 생각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제일 먼저 헌금의 종류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헌금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은 네 곳에 나오는데 그 중 가장 정확하게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부분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헌금의 종류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해야 하는 헌금은 크게 두 가지라고 말합니다. 23가지가 아닙니다. 그 하나는 소득의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헌금입니다. 이 십일조 헌금에 대하여서는 여러분들이 갖고 계시는 책 <우리교회의 신앙>의 십일조에 대한 설교에서 그 정신을 잘 설명하였습니다. 오늘의 설교에서는 다시 그 정신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십일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 믿음의 표현으로 열의 하나를 하나님의 것으로 구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의 하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레위기 27:30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또 오늘 성경에서는 열의 하나를 정직하게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4:22-23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에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하는 또 하나의 헌금은 소득의 30분의 일을 구제를 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신명기 14:28-29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 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오늘 날에는 농사를 짓지 않고 대부분 사업을 하여 소득을 얻거나 월급을 받고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그 당시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신을 계산해 보면 오늘날 월 소득의 30분의 1을 구제를 위하여 헌금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탁이 아닙니다. 우리가 힘써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고 30분의 1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드린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믿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셔야 하는 헌금은 이렇듯 두 가지 입니다. 10분의 1을 드리는 십일조와 30분의 1을 드리는 구제 헌금이 바로 그것입니다.



2. 다른 교회나 선교기관에 십일조를 내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끔 십일조를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 내지 않고 어려운 교회나 선교단체에 보내는 분들이 계십니다. 출석하는 교회에 십일조를 내지 않고 다른 곳에 헌금을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있습니다. 먼저는 헌금하고 싶은 교회나 선교 단체가 너무 재정적으로 어려워 돕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고 또 상대적으로 출석하는 교회는 자신의 십일조가 없어도 그렇게 어려운 상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런 이유와 함께 출석하는 교회가 교인들이 낸 헌금을 잘 사용하지 못한다든지 또 헌금을 엉뚱한데 사용한다고 한다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헌금은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바르게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십일조 헌금은 출석하는 교회에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하여 명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성경이 기록되었을 당시 오늘날과 같이 여기저기에 많은 교회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교인들의 이동이 자주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나오는 십일조의 정신을 살펴보면 얼마든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헌금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다른 곳에 십일조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은 이유는 오직 한가지 입니다. 그것은 헌금자의 이름과 영향력이 그 헌금 속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교회를 돕거나 선교 단체를 돕는 것은 참 좋은 마음이지만 그 헌금을 보낼 때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십일조의 정신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만이 드러나야 합니다. 외부로부터 보조를 받는 교회나 단체는 헌금을 하는 사람을 기억할 것이고 그 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헌금이라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도움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고 만일 그런 마음이 들어가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보다 자신의 이름이 나타나게 되는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려운 곳을 지원하고 돕고 싶으면 십일조 헌금을 온전히 드린 후 따로 도움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도 괜찮습니다.

이쯤 되면 오대식 목사가 다른 곳에 헌금을 하는 것을 아까워하면서 모두 동경교회로 헌금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시는 분도 혹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기준에서라면 우리교회는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으로 선교사 신분으로 올 때 어떤 의사 한 분이 제게 십일조를 보내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의료선교를 오랫동안 해 왔기 때문에 한국의 의사 선생님들을 많이 아는 편입니다. 그 분들 중에 병실 베드가 약 50개 정도 있는 병원을 경영하시는 의사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신앙은 참 좋은 분임에도 불구하고 등록하여 출석하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 분은 한국교회가 헌금을 잘못 쓰고 있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 일본 선교사로 가시는 오 목사님에게 헌금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 분이 제게 보내주시겠다고 하는 십일조헌금의 액수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월 500만원입니다. 당시 환율이 10대 1이었으니까 월 50만 엔 1년에 정확히 600만 엔의 돈입니다. 그러나 저는 거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만일 그 돈이 동경교회에 오면 저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그 분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 분께 고마움을 느끼고 혹 그 분을 만날 때면 저는 그 분께 고마운 마음을 갖고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분이 받아야 할 축복을 목회자가 막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만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분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헌금의 정확한 액수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질문 중 많이 받는 것은 바로 본봉에 대한 것에만 내는 것인가 아니면 전체를 내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사실 목회자인 저도 당황하게 됩니다. 제가 당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그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농사를 지은 것인지 월급을 받은 것도 또 본봉과 각종 수당이 구분되어져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와 있는 그 정신을 찾아보면 그것도 어렵지는 않습니다. 정직하게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한다면 우리가 버는 모든 돈을 계산해야 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재미있는 해석이 생각납니다. 본봉에 십일조를 하는 분과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하는 분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도 축복을 해 주실 때 본봉만 계산해 드린 교인에게는 본 봉 만큼만 수당과 보너스를 수입을 정확히 계산해서 헌금하는 교인에게는 수당과 보너스까지 다 더해서 축복해 주신다는 설명입니다. 맞는 말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4. 헌금에 헌금의 액수와 이름을 기입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헌금봉투에 헌금의 액수와 이름을 기입하지 않는 것이 바른 정신이 아니냐 하는 질문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또 주보에 헌금자 이름이 올라가는 것에 대하여 많이 불쾌해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동경교회 같은 곳에서 어떻게 봉투에 이름을 쓰고 주보에 헌금자 이름을 낼 수 있느냐 하는 걱정의 소리를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우선 그런 분들에게 동경교회를 바른 교회 깨끗한 교회로 인정해 주신 것에 대해 먼저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는 바른 헌금생활을 알려드릴 의무가 있고 또 바르게 낸 헌금을 깨끗하고 투명하게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봉투에 이름을 쓰라고 하는 것은 누가 헌금을 했는지 안했는지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주보에 헌금자 이름을 내는 것은 그 이름 속에 여러분의 이름이 빠지지 않도록 헌금을 모두 내시라는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헌금자가 헌금 한 것에 대한 확인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전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지만 간혹 어떤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 중간에서 없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쓴다던가 아니면 회계를 하는 분이 유혹에 이기지 못하여 자신이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헌금 때문에 교회가 큰 시험에 드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봉투에 헌금액수와 이름을 쓰고 주보에 이름을 내는 일은 그런 불상사를 사전에 막는 의미도 있고 교회가 잘 접수 했다고 하는 것을 확인하시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바로 헌금의 투명성에 대한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께 약속을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는 동안에는 헌금 액수를 발표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십일조는 물론이려니와 혹 우리가 건축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 건축헌금을 할 때도 그 헌금의 액수는 절대 일반 교인들에게는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은 헌금의 액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헌금하는 사람의 정성과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5. 남편 몰래 하는 헌금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가끔 가족 몰래 십일조 헌금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 몰래 십일조를 하는 아내가 있고 또 아내 몰래 십일조를 하는 남편도 있습니다. 얼마나 십일조 헌금을 하고 싶으면 그러겠는가 싶습니다. 그렇게 십일조 하는 분들에게 참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금 드리고 싶습니다. 십일조 헌금을 반대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알 경우 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생기기 때문에 그냥 가족 모르게 십일조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저는 그런 분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셔서 꼭 축복해 주시고 함께 해 주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축복대로 분명히 임하시겠지만 자 여러분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까? 헌금을 바르게 하고 싶은 그 마음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가족이 찬성을 하지 않습니다. 알게 되면 싸움이 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을 봅니다. 창세기에 보면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 때문에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물도 원하시고 화목도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둘 중에 하나를 먼저 원하신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화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화목을 더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화목하게 생활하는 것과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은 무엇보다 기뻐하십니다. 갈등과 미움이 해결되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예물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마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여러분 혹 남편 몰래 아내 몰래 십일조 헌금을 하는 분들이 계시면 이제는 얘기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의 동의가 없다고 한다면 동의가 될 때 까지 기도하시며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가족의 수입은 가족 전부의 노력으로 벌게 된 돈입니다. 남편만 직장 생활을 한다고 해서 남편의 돈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모두의 동의가 있을 때 하나님은 그 예물을 맘 편하게 기쁘게 받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자 며느리가 반대하는 용돈을 아들이 부모님들께 드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며느리가 반대한다는 것을 그 부모님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찌 부모님들이 그 용돈을 편히 쓸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효입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리면 불효입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이 먼저 화목하기를 원합니다. 십일조 때문에 가정이 불화 한다면 하나님은 십일조를 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화목을 먼저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화목해야 바른 헌금생활에 대하여 이해를 할 만한 좋은 믿음을 가족들이 더 빨리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가족과 꼭 상의하시고 동의가 된 십일조를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정도의 기간은 하나님께서 참아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옹졸한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새 해에 우리가 어떻게 헌금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십일조헌금과 구제헌금입니다. 열의 하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정직하게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 달의 하루 분은 어려운 사람의 몫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하루의 몫을 헌금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선교헌금이나 감사헌금으로 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교회도 헌금 수입의 30분의 1은 꼭 구제에 써야 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그 일을 위해 헌금한 돈이기 때문입니다.

2006년도의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바른 헌금생활 한 번 힘써 보시기 바랍니다. 평생 정직하게 헌금 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도 같이 이 땅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하루 밥 세 끼 먹으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시고
이제는 남을 돕는 일도 조금은 할 수 있도록
채워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의 나됨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빈손으로 이 땅에 온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늘 그것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2006년도 그 마음을 갖고
한 번 바른 헌금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바른 십일조헌금을 할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30의 하나를 떼어 구제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을 얻는 우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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番号 題目 文件 日期 照会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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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2006년 4월 16일 주일] 무엇이 부활하는가? 06-04-161623
95  [2006년 4월 9일 주일] 잡히시던 밤의 만찬 06-04-091682
94  [2006년 3월 26일 주일] 하나님의 법을 잊지말라 06-03-261623
93  [2006년 3월 19일 주일] 옥합 깨뜨리기 06-03-191399
92  [2006년 3월 5일 주일] 세월을 아끼십시오 06-03-05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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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006년 1월 22일 주일] 충성된 종의 완성 06-01-22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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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2005년 11월 13일 주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2) 05-11-1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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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2005년 10월 9일 주일] 하나님이 살아계십니까? 05-10-091410
76  [2005년 10월 2일 주일] 교회의 사명 05-10-021266
75  [2005년 9월 4일 주일] 기독교의 힘 (2) 05-09-041766
74  [2005년 8월 28일 주일] 기독교의 힘 05-08-281265
73  [2005년 8월14일 주일] 평화통일 선교의 길 05-08-101166
72  [2005년 7월31일 주일] 백부장의 믿음 05-07-281499
71  [2005년 7월 24일 주일] 본질적 신앙 현실적 신앙 05-07-241458
70  [2005년 7월 17일 주일]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05-07-171183
69  [2005년 7월 10일 주일] 메시야 비밀 05-07-101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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