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HOME SiteMap Contact Us Japanese Korean English Chinese
Information
   

[2006년 6월 4일 주일] 성령이여 강림하사


성령이여 강림하사

엡4:1-16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할 때 그들에게 성령님께서 찾아오시어 그들에게 능력과 용기를 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성령은 무엇이며 성령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활동에 대하여 우리가 그동안 갖고 있었던 개인적이고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성경에서 말해주고 있는 성령의 역할에 대하여 보다 철저하게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주 저는 잠시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한국에 갈 때면 항상 한국의 뉴스 방송을 유심히 듣고 또 신문의 기사를 자세히 보고 옵니다. 지난주 한국 사회의 이슈는 물론 월드컵과 선거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온통 월드컵과 관련된 광고들이었고 들리는 것은 온통 선거와 관련된 소리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중요한 이슈들 중에서 제가 소중하게 생각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작년 11월 1일부터 15일까지 실시했던 인구조사에 대한 결과가 지난주에 한국에서 발표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인구조사의 통계를 보면 한국사회는 확실하게 고령화 사회로 들어가는 문제 그리고 아이들 적게 낳는 문제들 그로인한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을 크게 다루고 있었지만 저는 그 중 특별히 종교의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갖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전에는 저와 같은 목사들에게나 관심이 있었던 그런 종교의 문제들이 이제는 한국사회 모두의 관심 있는 이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일반 신문에서 한국사회의 종교의 변화에 대하여 더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대체로 기독교인의 감소와 다른 종교들의 증가에 있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한국의 종교인은 모두 53.1%인데 이는 1995년(10년 전)에 비하여 10%가 높아진 비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불교가 22.8%로 3.9%가 증가하였고 천주교는 10.9%로 74.4%가 증가한 반면 개신교는 18.3%로 오히려 감소한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다 증가했는데 개신교만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한 때 한국 사람의 25%가 기독교인이라고 큰소리 쳤고 또 어떤 발표는 30%라고 말도 했지만 사실 기독교인들은 18.3%밖에는 안 된다는 발표입니다.

일반인들의 관심은 어느 종교의 신도들이 제일 많을까? 어느 종교의 신도들이 많이 늘어났을까? 그런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또 다른 통계의 수치로 인해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종교를 가졌었다가 현재에는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을 조사한 통계였습니다. 과거에 어떤 종교를 가졌다가 현재는 아무 종교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 들 중에 62.2%가 과거 개신교 신자였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21.1% 천주교는 16.7%로 나타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은 비율로 기독교인들이 종교를 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통계입니다.

이런 내용의 통계들을 볼 때 우리가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한국의 교회의 교인이 줄고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교인들이 줄어드는 것은 전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불교와 천주교는 신자가 늘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교인들이 줄어드는 것은 인구가 줄면서 나타나는 사회적인 현상이 아닌 기독교의 특별한 요인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한국의 어느 대형교회에서 발간하는 신문의 논평은 그러한 기독교의 현상에 대한 해결을 다음과 같이 그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신문의 논평은 기독교인들의 수가 감소하는 이유는 성령운동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하면서 한국교회는 70-80년대의 성령 부흥운동으로 돌아가야 다시금 부흥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70-80년대에 한국교회가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을 예로 말하면서 다시 성령운동을 해야 한국교회가 부흥할 수 있다고 강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성령의 운동이 다시 있어야 교회가 회복되고 부흥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70-80년대의 한국교회의 운동이 성령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70-80년대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에 대하여 냉정하게 생각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해 그것은 참된 성령의 운동이 아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첫째는 통계의 수치 때문입니다. 지난 70-80년대의 통계만 보면 그 당시의 기독교의 증가는 가히 폭발적인 수치이지만 다른 종교도 똑같은 수치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도 배로 증가했고 천주교도 배로 증가하였습니다. 기독교만 배로 증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 부흥을 성령의 운동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그것은 사회적인 변화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입니다. 즉 한국전쟁이후 극심한 가난으로 시달릴 때는 종교를 가질 여유를 찾지 못하다가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종교를 찾아 현재의 불안한 마음과 장래의 꿈에 대하여 종교적으로 안정을 찾아보려고 했다는 해석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물론 그 정답은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70-80년대의 성령운동의 내용인 것입니다. 제가 그 때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참된 성령의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신앙생활의 내용이 지극히 개인적인 기복신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소위 성령운동이라는 70-80년대에 교인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바르지 못한 것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합니다. 기복신앙과 치유중심의 신앙은 당시에는 사람을 많이 모으는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람이 떠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 성령운동의 형태가 이제는 기독교를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종교로 보는 중요한 요인이 된 것입니다. 70-80년대의 성령운동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성령이 함께하면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되고 그 성령의 은사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소망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병이 낫고 사업이 잘 되고 돈을 많이 벌고 자녀들이 좋은 학교에 합격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형태의 모습은 지금도 기독교인들 사이에 성령의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런 운동의 결과 이제 그런 기독교가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번에 발표된 인구조사의 통계수치는 바로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에도 우리가 외롭지 않도록 우리를 믿음으로 인도하실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또 우리에게 할 일을 제시해 주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 주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성령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성령님은 오신 것입니다.

성경 요16:7-8 과 엡4:12 에 보면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이유를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게 하시고 돌이켜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16:7-8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엡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헌금을 많이 못해도 괜찮습니다. 봉사를 많이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돈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시간과 봉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여러분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인 것입니다.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의를 행하려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그것을 행치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온전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모든 사람에게 마땅히 보여주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성경 이사야4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을 보내주시는 이유를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전하라고 명령하시며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42:1-7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우리의 이 모습 이대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남을 위한 봉사도 신앙생활도 다 우리가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해도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늘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열매가 생활 속에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령의 열매가 생활 중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셋째는 복음을 전파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하라고 성령님께서는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명이 항상 복음의 증거에 있음을 깨닫고 그 일을 위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억지로 생각한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을 일생동안 잊지 않고 그 일을 감당하게 되는 것은 바로 성령의 도움 때문입니다. 우리 개개인이 부르심을 받은 이유도 이 땅에 우리가 교회를 세워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도 우리가 큰 때를 이루어 예배를 드리는 이유도 다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을 증거 하라는 것이고 그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은사인 방언을 받았을 때 그 사람들은 방언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무식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성령님께서 주신 방언의 은사로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그 방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의 사람들은 성령을 통해 방언을 받았을 때 그 방언을 복음의 전도를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의 계급을 나누는 것으로 사용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고린도 교회는 책망을 받아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방언을 못하면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방언을 못하면 집사의 직분을 주지 않는 교회도 알고 있습니다. 방언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나타내는 척도가 아닙니다. 방언이나 병 고치는 은사 등 성령의 은사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는데 쓰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성령을 자신이 마음대로 주는 목사님도 보았습니다. 성령을 나눠주겠다고 받으라고 소리치는 목사를 모았습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간이 부었던지 무식해서 신학공부를 못했던지.....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성령이여 강림하사>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껏 성령에 대하여 막연히 생각할 때 성령은 인격체가 아닌 물질명사로 생각했었던 것과 성령은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 아닌 쟁취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그런 생각을 바로집기 위해 쓰게 된 제목입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성령을 찾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임을 먼저 알고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을 <성령이여 강림하사>라고 잡게 된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특별한 목적을 갖고 찾아오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온전해 지는 것이요 사랑과 공의를 보여주는 것이요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까?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시대 최고의 성령학자요 영성가로 불리는 라브리 공동체를 창설했던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제일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누구든지 바른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성령에 대하여 알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바른 그리스도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의 시작이고 진정한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시작 되는 것입니다.」

시끄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많은 것을 드리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것이 가장 훌륭한 성령의 사람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내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하시고
남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게 하시며
일생의 삶 속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신앙생활 함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Total : 248 ] [ 5 / 9 ]
No. Subject File Date Hits
128  [2010년 7월 25일]복음(4): 예수를 믿으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 11-05-11711
127  [2010년 7월18일]복음(3):어떻게 예수를 믿습니까?11-05-11487
126  [2010년 7월 11일] 복음(2):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11-05-11646
125  [2010년 6월20일] 이렇게 하면 은혜를 받습니다.(2)11-05-11623
124  [2007년 11월 4일 주일] 한 문둥병자가 07-11-043696
123  [2007년 10월 21일 주일] 듣고 행하는 자는 07-11-042129
122  [2007년 9월 16일 주일] 구하라, 그리하면 07-09-162554
121  [2007년 8월 26일 주일]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07-08-262385
120  [2007년 8월 19일 주일] 너희는 먼저 07-08-192157
119  [2007년 7월 15일 주일]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07-07-162192
118  [2007년 6월 10일 주일]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07-06-142432
117  [2006년 6월 3일 주일] 눈은 눈으로 07-06-142094
116  [2007년 5월 20일 주일] 3개월과 100년 07-05-201842
115  [2007년 4월 29일 주일] 맹세하지 말찌니 07-04-291647
114  [2007년 4월 8일 주일]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07-04-081733
113  [2007년 2월 18일 주일] 그의 소문이 07-02-181818
112  [2007년 2월 11일 주일] 사망의 땅과 그늘에 07-02-121673
111  [2007년 1월 14일 주일] 메뚜기와 석청 07-01-141845
110  [2007년 1월 7일 주일] 지시하심을 받아 07-01-071466
109  [2006년 12월 3일 주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06-12-071982
108  [2006년 11월 19일 주일]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06-11-191751
107  [2006년 11월 5일 주일] 속건제 책임을 묻는 제사 06-11-051557
106  [2006년 10월 15일 주일] 화목을 위해 필요한 것 06-10-161646
105  [2006년 10월 1일 주일] 성경에서 보아야 할 것 06-10-011592
104  [2006년 9월 3일 주일] 질그릇 다시 보기 06-09-052087
103  [2006년 7월 2일 주일] 사람의 절망 하나님의 희망 06-07-042018
102  [2006년 6월 18일 주일] 염려를 맡기십시오 06-06-191856
101  [2006년 6월 11일 주일] 그러면 우리는 06-06-121671
100  [2006년 6월 4일 주일] 성령이여 강림하사  06-06-051744
99  [2006년 5월 21일 주일] 참된 전도자 06-05-211608
[1][2][3][4][5][6][7][8][9]

  
  

 

 

    ▲TOP  


〒162-0827 東京都新宿区若宮町24 東京教会
24 Wakamiya-cho, Shinjuku-ku, Tokyo, 162-0827, Japan
Tel: 03-3260-8891 Fax: 03-3268-6130    
(C) The Tokyo Korean Christian Church in Japan Ministrie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