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HOME SiteMap Contact Us Japanese Korean English Chinese
Information
   

[2006년 7월 2일 주일] 사람의 절망 하나님의 희망


사람의 절망 하나님의 희망

요한복음 9:1-12





지난 주 저는 세상을 놀라게 했던 주 두 가지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마 여러분들께서도 사건과 보도를 접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세레브(호화생활자)로 불리는 여대생 딸이 유괴되었다가 풀려난 사건이었습니다. 6월 26일 시부야에서 연간 12억 엔을 버는 성형크리닉 원장 이케다 유꼬 (池田優子47) 의 딸 가나꼬(果菜 21) 를 유괴한 범인들은 딸의 몸 값 3억 엔을 요구하다 13시간 만에 무사히 풀려난 사건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마음이 씁쓸하였습니다. 한국-중국-일본으로 연계된 유괴 범인들도 문제이지만 부를 항상 과시하는 그 집안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병원장은 일본에서는 꽤 알려진 유명인사입니다. TV에도 자주 출연하는 사람인데 한 대는 이번에 유괴를 당했던 딸과 함께 TV 프로에 출연해서 3억 2천만 엔짜리 자신의 저택을 자랑하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집의 벽이 키프로스 산 대리석이라고 자랑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월에는 발매 된 모 주간지에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명품들을 자랑 하였다고 하는데 그 중 자신이 갖고 있는 자동차로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고 합니다. 롤스로이 팬텀 1대 페라리 360 스파이더 1대 마세라티 콰트로 포르테 1대 메르세데스 벤츠 스테이션 웨건 1대 이렇게 네 대의 차량을 소유했다고 자랑을 했고 여러 가지 명품과 돈을 자랑하였습니다. 저는 일본어에서 <가네모찌>와 <세레브>의 차이를 이 번 사건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든 공급은 수요가 있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잡지들이 그런 기사를 싣는 이유도 TV방송국에서 그런 프로를 만들어 방송하는 이유도 다 시청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수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방송을 보면서 저나 여러분들처럼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프로를 보면서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더 마음 아픈 점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1978년 군산의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북한에 납치 된 뒤 28년 만에 금강산에서 어머니 최계월씨(82)를 만나는 김영남씨의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실종된 메구미상의 남편으로 더 알려진 인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만남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저는 김영남이 한 말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습니다. 걱정하는 어머니 앞에서 그가 한 말은 이것입니다.
「넓은 아파트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말이라면 참으로 슬픈 일이고 혹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이 표현한 것이라 해도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넓은 아파트에서 살기 때문에 잘 산다? 혹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돈을 많이 갖고 있고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비싼 음식을 늘 먹으며 좋은 차를 타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의 고집이 하나 있습니다. 아니 목사의 고집일 수도 있습니다. 잘 살고 못사는 기준이 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억지로라도 드러내며 살고 싶은데 세상은 자꾸만 그런 기준으로 굳히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가며 그런 TV프로에 시청률을 올려주고 부러워하고 열광을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많이 아프다. 무엇인가에 미쳐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제 기억에 시골의 조그마한 학교 선생님 집안도 장사해서 돈이 많은 집안과 사돈을 맺어 자녀를 시집보낼 때 큰 소리 치면서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만 해도 사람 가치의 기준이 단순히 돈에만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돈의 많고 적음을 사람됨의 척도로 착각을 합니다. 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세인들을 이끌어 갑니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그런 가치관으로 TV 프로를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요즘 일본 방송에서는 베르사체 양복 200벌을 세탁소에 맡기는 중소기업 사장의 모습을 자랑스레 방송합니다. 운전면허도 없는 손녀에게 벤츠 승용차를 사 주는 치과 의사가 소개되고 부유층의 호사스런 생활이 버젓이 공중파 방송을 통해 안방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銀座의 클럽의 호스티스를 취재해서 방송하는 프로가 몇 차례 방송되어 높은 시청률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10만 엔짜리 꽃다발 위에 100만 엔짜리 반지를 얹어 선물하는 병원장 손님의 선물에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한 호스티스가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돈이 있고 값비싼 명품에 좋은 물건이 많으면 잘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 주변에 모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잘 산다!> 라는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나는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렇게 그런 가치관을 갖고 살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사회적 환경은 가정의 환경과 더불어 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의 장이 되는데 우리도 예외 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 이런 교육을 날마다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기준은 세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잘 모를 뿐입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그것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내가 어떤 가치기준을 갖고 살아가는지 잘 모를 때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힘들고 마음 아프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알아보면 됩니다. 즉 불행의 기준을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힘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원인 그 기준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들께서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상황일 때의 일입니까? 돈이 없을 때 입니까? 사는 집이 누추하다고 생각될 때 입니까? 갖고 싶은 물건을 마음껏 갖지 못할 때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건강을 잃었을 때 입니까? 많이 배우지 못했을 때입니까? 좋은 직업을 갖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 입니까? 자식이 좋은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을 때입니까?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오늘 성경의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것을 하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실로암 연못에서 앞을 볼 수 있게 된 소경의 얘기가 나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저가 나면서부터 소경이 된 이유는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사람들은 <소경>이라는 그 상황을 보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묻는 질문은 다시 말하면 이런 질문이 됩니다.

「저 사람은 지금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인데 저 사람의 불행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사람들은 그를 보고는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창조 때부터 인간에게 주신 달란트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름을 짓는 달란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들의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아담의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달란트를 다시 거두어 가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지금도 무엇이든지 이름을 지으려 합니다. 아담은 사람의 대명사 아닙니까? 지금이야 새로운 동물이 없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을 보면서 이름을 지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버릇인 것입니다. 자신이 결정을 하려는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못 산다> 이름을 붙였습니다. 얼굴이 못생겼으면 <못났다>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업이 잘 안되면 <실패> 했다고 말을 합니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하지 못했으면 <불행>이라고 말을 합니다. 건강을 앓고 병이 들면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불행한 상황 불쌍한 상황을 사람이 이름붙이고 결정해 버립니다. 자신이 결정을 해 놓고 그 안에서 자신이 기뻐하기도 하고 자신이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간혹 교회 안에서도 그런 가치관으로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번은 제가 행정담당으로 부목사생활을 할 때 어느 해 선거철에 꽤 유명한 정치인 한 분이 교회를 찾아 왔습니다. 제가 있던 교회는 예배시간에 정치적인 선거운동을 절대 불허하였기에 예배 후 그 정치인이 수행원을 데리고 담임목사실로 왔습니다. 교인이 너무 많은 교회였기에 예배 후 많은 교인들이 담임목사님을 만나기 위해 순번대로 비서실에서 앉아 있었는데 그 정치인이 의자 맨 끝에서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자 그 분을 수행했던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이 어떤 분인데 이렇게 사람을 기다리게 하느냐고.... 빨리 목사를 만나게 해 달라고.... 그 일을 담당하고 있던 저는 화가 났습니다. 교회에서 귀한 사람 따로 있고 천한 사람 따로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시간이 귀한 줄 알면 남의 시간도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결국 그 사람은 화를 내면서 어른(?)을 모시고는 가 버렸습니다. 힘 있고 권세 있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라는 가치관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현상도 있습니다. 한 번은 어느 가난한 교인이 목사인 저를 오래도록 외면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무슨 상처가 있었는지 인사도 안하고 눈길도 마주치지 않을 만큼 관계가 소원해졌습니다. 오래도록 그렇게 마음 아프게 지내다가 드디어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어 그 집사님께 용기를 내어 여쭤보았습니다. 왜 나를 외면하시냐고.... 혹 오해가 있으면 푸시라고.....

그 분의 말씀은 이랬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들어오면서 현관에서 교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던 오목사와 눈이 마주쳐 인사를 반갑게 하였는데 오목사가 자신의 인사를 외면하고는 부자로 보이는 다른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하기에 몹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돈이 없어 그러지 않아도 사회에서 부시당하고 있는데 교회에서조차 돈이 없다고 무시당한다 생각하니 화가 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인사도 못하였는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며 그것을 풀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계속 제 마음은 편치 못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마음속에 돈을 사람됨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돈이 많은 자신을 교회에서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반대로 돈이 없다고 해서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모두 그 기준으로 생각하고 상처를 받는 것도 큰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뿐입니다. 사람이 결정해 놓고는 스스로 그 결정을 한 것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성경의 본문에서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향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저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한 사람이다.」 라고...


그런 좋지 않은 사건과 방송으로 인해 지난 주간 저는 마음이 많이 아팠었는데 함께 TV 를 보던 우리 집 큰 아이가 아빠인 나를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아빠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왜?」
「평범한 것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저는 그 순간을 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아이에게 재차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럼 지금까지는 어떻게 생각했니?」
「응! 그냥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집이 넓으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갖고 싶은 것 다 가질 수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 것 같아!」


여러분 저는 집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집은 없지만 다른 집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고집>입니다. 그것이 무슨 고집이야 하면 집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고집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집집집 합니다. 돈돈돈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집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것입니다. 제 신앙적 고집입니다.

집이 없고 돈이 없고 병이 나고 배운 것이 없으면 사람들은 잘 못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한 상황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고 우리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상황을 보고 무엇이라 평가하십니까? 하나님이 실패라 하시면 그 때 절망해도 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사는 모습을 보고 그것은 불행한 것이다 라고 선언하신다면 그 때는 못사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적인 상황으로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반대로 가진 것이 많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넓은 집에 산다고 잘 산다 여기지 마십시오. 좋은 옷을 입었다고 사람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다 사람이 정해 놓은 기준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평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절망하지 말아라! 그것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상황이다!」

하나님을 세상의 악한 세력이 주는 기준으로 슬퍼하지 않고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와 사랑을 얻으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넉넉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동경교회 교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 Total : 248 ] [ 5 / 9 ]
No. Subject File Date Hits
128  [2010년 7월 25일]복음(4): 예수를 믿으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 11-05-11711
127  [2010년 7월18일]복음(3):어떻게 예수를 믿습니까?11-05-11488
126  [2010년 7월 11일] 복음(2):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11-05-11646
125  [2010년 6월20일] 이렇게 하면 은혜를 받습니다.(2)11-05-11623
124  [2007년 11월 4일 주일] 한 문둥병자가 07-11-043697
123  [2007년 10월 21일 주일] 듣고 행하는 자는 07-11-042129
122  [2007년 9월 16일 주일] 구하라, 그리하면 07-09-162555
121  [2007년 8월 26일 주일]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07-08-262385
120  [2007년 8월 19일 주일] 너희는 먼저 07-08-192157
119  [2007년 7월 15일 주일]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07-07-162192
118  [2007년 6월 10일 주일]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07-06-142432
117  [2006년 6월 3일 주일] 눈은 눈으로 07-06-142094
116  [2007년 5월 20일 주일] 3개월과 100년 07-05-201842
115  [2007년 4월 29일 주일] 맹세하지 말찌니 07-04-291647
114  [2007년 4월 8일 주일]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07-04-081733
113  [2007년 2월 18일 주일] 그의 소문이 07-02-181819
112  [2007년 2월 11일 주일] 사망의 땅과 그늘에 07-02-121674
111  [2007년 1월 14일 주일] 메뚜기와 석청 07-01-141845
110  [2007년 1월 7일 주일] 지시하심을 받아 07-01-071466
109  [2006년 12월 3일 주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06-12-071982
108  [2006년 11월 19일 주일]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06-11-191751
107  [2006년 11월 5일 주일] 속건제 책임을 묻는 제사 06-11-051557
106  [2006년 10월 15일 주일] 화목을 위해 필요한 것 06-10-161647
105  [2006년 10월 1일 주일] 성경에서 보아야 할 것 06-10-011592
104  [2006년 9월 3일 주일] 질그릇 다시 보기 06-09-052088
103  [2006년 7월 2일 주일] 사람의 절망 하나님의 희망  06-07-042019
102  [2006년 6월 18일 주일] 염려를 맡기십시오 06-06-191856
101  [2006년 6월 11일 주일] 그러면 우리는 06-06-121671
100  [2006년 6월 4일 주일] 성령이여 강림하사 06-06-051744
99  [2006년 5월 21일 주일] 참된 전도자 06-05-211608
[1][2][3][4][5][6][7][8][9]

  
  

 

 

    ▲TOP  


〒162-0827 東京都新宿区若宮町24 東京教会
24 Wakamiya-cho, Shinjuku-ku, Tokyo, 162-0827, Japan
Tel: 03-3260-8891 Fax: 03-3268-6130    
(C) The Tokyo Korean Christian Church in Japan Ministrie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