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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5일 주일] 화목을 위해 필요한 것


화목을 위해 필요한 것

레 3:1-5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다섯 가지 대표적인 제사 방법 중 세 번째인 화목제(和睦祭)에 관한 설명입니다. 화목제는 말 그대로 화목한 생활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제사의 목적이 바로 화목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목제는 두 가지 큰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화목제를 드림으로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화목해 지는 것을 바라며 또 하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화목해 지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화목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까?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화목의 중요성을 말하고 강조하였습니다. 중국 주나라에 태공이라는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흔히 강태공이라 부릅니다. 그가 명심보강에 이르기를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른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거기에서 유래됩니다. 화목한 삶은 행복과 성공의 기초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요 윤리학자 몽테뉴도 「인간의 가장 큰 기쁨은 화목에 있다. 화목할 수 없는 사람은 비참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화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화목이 없으면 불행과 실패 그리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꼭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 하루하루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깨닫게 되는 생활 속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우리는 화목한 것이 가장 귀한 삶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부요하고 넉넉하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화목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잠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와 같이 화목한 삶이란 우리 인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생활의 요소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그런 복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하여 그 방법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이 화목제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화목제의 방법의 의미를 알게 되면 우리도 이 땅을 살아갈 때 진정 화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화목제를 잘 이해하기 위해 히브리어 언급하겠습니다. <화목제>라는 단어는 히브리말로 <쉘렘>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쉘렘>은 「회복하다」는 뜻인데 하나님과의 관계나 인간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말하고 이는 바로 하나님이나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야만 화목하게 된다고 규정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쉘렘>이라는 단어에서 평화를 의미하는 <샬롬>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돤다는 것입니다. 매우 의미 있는 관계입니다.

<샬롬>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잘 아는 단어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인사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샬롬>을 번역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화」라고 번역을 합니다. 그러나 <샬롬>은 단순한 「평화」가 아닙니다.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샬롬>은 「평화」 보다는 「평안」의 의미를 더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외적인 평화」뿐 아니라 「정신적 내면의 평화」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바로 「전인적인 평안」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이 이 화목제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가 회복이 되어야 삶의 「진정한 평안」이 깃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화목제가 잘 드려지기 위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늘 레위기 3장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두 가지 의문점이 나타납니다. 그 의문을 풀면서 화목제사의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화목을 위해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제사의 비중에 비추어 볼 때 동물을 죽여 바치는 것이 타당한 방법인가 하는 것 때문입니다. 죄를 용서함 받기 위하여 제사를 드릴 때는 동물을 죽여 제물로 드리는 것이 이해가 가는데 단지 화목하게 지내기 위하여 비둘기가 아닌 소나 양 염소 같은 매우 큰 동물을 죽여 제물로 바치라는 것은 너무나도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만일 우리 집 아이가 숙제를 하루 하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잘못에 따른 벌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까? 길에 가다가 다른 사람하고 시비가 붙어 말다툼을 했는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면 그것이 타당한 것입니까? 지금 이 화목제의 상황을 보면 제사의 목적에 비해 그 내용이 너무 지나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내장을 단 위에서 불살라 태우라고 했는데 내장의 구체적인 이름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콩팥이라든지 간이라는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내장의 이름이 제사의 형태에서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은 딱 두 번 속죄제와 화목제뿐입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번제나 속죄제 같은 중요한 제사를 드릴 때는 그 내장을 구체적으로 꺼내서 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화목하게 지내기 위해 이렇게 가장 힘들고 잔인하고 어려운 제사의 방법을 수행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가 느끼는 두 가지 의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목제의 방법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화목제사를 성공적으로 우리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하여 이런 복잡한 제사의 방법을 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의문점을 풀면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하나씩 풀어 보겠습니다.


먼저 왜 동물을 죽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답은 하나님과 화목하든지 사람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즉 하나님과 다시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별히 하나님과의 화목을 말할 때 필요한 것인데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더러운 죄를 대신 감당해야 할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화목제의 희생제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화목제물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로마서에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롬5: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그리스도 예수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관계가 회복됨으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평한 것이 곧 「샬롬」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하여 누군가가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어 죽으셨기에 우리는 그것을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고 진정 「샬롬」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예수만 믿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똑같이 적용이 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화목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목은 아주 값비싼 것입니다.

두 번째 의문을 풀어보겠습니다. 내장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깊은 신학적 의미가 있지만 그것을 쉽게 생각하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말에 내장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간을 빼 준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다 준다는 말입니다. 또 「쓸개 빠진 인간」 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주관이 없는 사람을 쓸게 빠졌다고 표현합니다. 쓸개는 곧 주관 혹은 줏대를 표현합니다. 그럼 내장을 다 빼내어 태우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모든 것을 다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내 주관과 생각까지 다 내어 주라는 것입니다. 다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화목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인간관계 때문에 많이들 힘들어합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하여 즉 화목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바로 누군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간을 다 빼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쓸개가 빠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공동체가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의 공동체는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샬롬」의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화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정과 직장에서 우리는 화목한 생활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화목을 원하면서 우리는 남들을 먼저 생각합니다.

「저 사람만 좀 가만히 있으면 화목할 텐데...」
「저 친구만 좀 참아주면 별 문제가 없을 텐데...」
「당신 성격만 좀 죽으면 우리 집이 화목하게 될 텐데...」
「당신만 좀 양보하면 다 좋아질 텐데...」
「그 집사님만 없으면 우리 교회가 화목할 텐데...」

그러나 그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화목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희생은 내 속을 다 내어 주는 희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간을 다 빼주고 내 쓸개를 다 내어주는 그런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죽어야 그 곳에 화목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 같이 우리도 누군가가 죽어야 인간관계에서 화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바로 나인 것입니다.


2004년도의 일입니다. 그 해 5월 우리 교회는 淸里라는 곳으로 전교인 수련회를 갔었습니다. 그 때 제 기억으로는 약 200명이 훨씬 넘는 교우들이 참석한 것으로 아는데 우리 교인들이 사용했던 숙소는 그 인원을 수용하기에는 좀 방이 부족했었습니다. 따라서 방이 없어 고생하신 분들이 많았었습니다. 늦게 참가신청을 하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을 미처 배정받지 못한 분 중에 서정웅 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서집사님은 당시 대사관의 국방부의 대표인 무관으로 근무하셨던 분이셨는데 무관으로는 드물게 장군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에게 방 배정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4명이 잠 잘 수 있는 방에 서집사님을 포함해 6명이 들어갔던 것이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 수련회에 참석해 주신 것도 참 감사한 일인데 그분에게 방 배정이 잘못되어 혹 기분이 상할지 몰라 마음 졸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서집사님께 너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어떻게든 방 조정을 해 드리겠노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당시로서는 뾰족한 수는 없었습니다. 서집사님을 편안하게 주무시게 하기 위해 방 배정을 해 드리면 또 누군가는 4인실에 6명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 난감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사정을 아신 서집사님은 오히려 웃으시며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괜찮습니다. 오시레에서 자면 됩니다. 오시레가 괘 넓습니다.」

서집사님은 그 날 밤 다른 한 집사님과 함께 오시레 위아래에서 잠을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제게 찾아와 잠을 아주 잘 잤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한국에 가시고 우리교회에 계시지는 않지만 저는 아직도 그 분을 잊지 못합니다. 군인정신이라고 하기에는 그분은 계급이 너무 높은 분입니다. 전쟁 중이라 해도 그렇게 잠을 자는 분이 아님을 제가 알기에 더욱 감사했던 것입니다. 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4인 용 방에 6인을 배정하였습니다. 당연히 불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 모두 불만을 말하면 공동체가 힘들어 집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스스로 희생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기쁨으로.....

예상보다 많은 교인들이 참석하여 자칫 수련회가 엉망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수련회를 진행하는 분들이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매우 힘들어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그 집사님의 그 희생이 모두를 안심시켰습니다.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한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 집사님도 조금은 힘드셨을 것입니다. 아니 많이 불편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희생이 모두를 화목하게 만들었습니다.

화목은 나를 죽일 때만이 생겨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정의 화목도 직장의 화목도 모두 내가 한 번 죽을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한 샬롬의 세계 즉 평강의 세계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화목하기 위한 방법을 제사로 규정해 가르쳐 주시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화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방법으로도 화목은 얻을 수 없습니다. 화목한 삶은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고 나를 희생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평강을 날마다 생활 속에서 누리시는 동경교회 교우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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