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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1일 주일] 듣고 행하는 자는

듣고 행하는 자는

마7:24-29




중세에는 가톨릭교회에서 신앙을 가르칠 때,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계명과 보다 중요한 공동체 즉 헌신자들에게 해당되는 가르침을 구별하였습니다.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착하게 살아라, 주일을 잘 지키라 등의 계명을 가르쳤다면, 헌신자들에게는 물질에 대한 포기와 구체적인 순결과 복종에 대한 가르침을 구별하여 하였던 것입니다. 또 성경을 읽는 것도 제한하였습니다. 일반교인은 성경을 보지 못하게 하였고 오직 헌신자들만 성경을 볼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일반인과 사역자들의 신분의 차이를 말하는 것 같고 신앙의 귀족화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신앙의 차원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세상과의 철저한 분리와 은둔을 통해서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일반교인과 사역자를 구분하게 되었고 또 그 사역자들을 위한 생활공동체인 수도원을 만들고 그래서 수도원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에도 많이 남아 있어서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대충대충 예수를 믿어도 되고, 목사나 선교사 같은 사역자들은 철저하게 모든 말씀을 더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렇게 구별될 수 없습니다. 물론 목사나 사역자들에게 보다 높은 생활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신앙 자체는 일반 교인과 사역자 모두 같은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따로 12제자들 불러 3년 간 사역자에 대한 훈련을 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역에 대한 방법의 훈련이지 신앙생활에 대한 훈련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하는 산상보훈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는 대상은 12제자가 아닌 바로 보편적인 그리스도인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헌신의 정도에 따라서 신앙의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면 예수님은 기독교의 가장 소중한 교리를 12제자들에게 가르쳤어야 했고, 또 베드로에게는 특별한 교육을 별도로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알듯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인 산상보훈을 특정 집단이 아닌 일반교인들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대상은 모든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시고 일반 그리스도인이나 사역자들 모두에게 같은 기준을 얘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들은 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도 들은 것을 행하여야 하고, 헌신자들도 들은 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 하나 밖에는 없습니다. 헌신자들과 사역자들이 말씀을 더 많이 들었기 때문에 더 많이 실천해야 하는 것은 있지만, 들은 것을 듣는 대로 행해야 하는 것은 사역자나 일반교인이나 모두 같은 것입니다.

세상 끝날 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으면 우리는 일반인이든 헌신자이든 세상 끝 날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삶의 장이 다를 뿐, 그리고 그 곳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방법이 다를 뿐, 일반 그리스도인이나 헌신자나 다 같은 의무를 갖고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기준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법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사람들에게 주실 때도 제사장만 그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제사법은 무척 복잡하였습니다만, 그것은 제사장이 아닌 모든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의 방법이 매우 복잡하였지만 그것이 말씀대로 그대로 지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제사법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어서 그렇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행함 그 자체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느냐 아니냐를 하나님은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하나님은 매일 여리고 성을 한 바퀴 돌고 마지막 칠일 째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일곱 바퀴를 돌면 과학적으로 자기장이 발생해 땅이 무너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일곱 바퀴를 돌면 성 안의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이상해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명령을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라 없이 2000년 간 세계에 흩어져 살았지만 1946년 나라의 재건을 위해 다시 가나안 당에 모였을 때, 저들은 이스라엘의 문화와 정신을 잃지 않고 옛날의 그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아니,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정신을 잃지 않았고 다시 이스라엘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미련할 정도로 말씀을 지킨 것이 거꾸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지켜 준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출발이자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여름 휴가 기간 중 미국의 산호세에 있는 교회들을 여러 곳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켈리포니아의 산호세는 실리콘 벨리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곳으로 세계적인 IT산업으로 인해 미국 내 소득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문화가 기독교문화인 것을 말해주는 듯, 주택가의 각 불럭마다 교회들이 있었는데 저는 그 교회들의 규모에 놀라고 또 아름다운 건축양식에 놀랐습니다.

참 예쁘고 큰 미국인 교회가 하나 있어 교회도 구경할 겸 교회를 들어갔는데, 이상하게도 별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았습니다. 그 교회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은 그 예배당을 지키고 있는 관리인이었는데, 그 관리인은 제게 교회를 소개하면서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와 예배하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텅 빈 교회가 되었다고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교회를 둘려보면서 저는 그 좋은 시설에 많이 놀랐습니다. 주일마다 찬양연습을 했을 성가대실, 아이들로 넘쳐났을 교회학교 교실들, 교인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을 친교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을 예배실..... 건물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그러나 이제는 그 곳에 있어야 할 교인들의 그런 활기찬 모습들은 더 이상 보이질 않았습니다.

교회의 주보를 보니 예배의 모임은 한 주일에 단 한 번 주일 오전예배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노인들만 20-30여 명이 출석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주일 저녁예배도 있었고 수요일 기도회도 있었고, 목요일 성경공부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교인이 없어서 모임이 줄었냐고 묻자 그 관리인은 교회의 역사와 함께 그 이유를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교인들이 스스로 하나씩 하나씩 모임을 없앴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일 저녁예배를 없애더니 그 다음은 수요일 기도회를 없애고 그 다음에는 목요일 성경공부모임을 없앴다고 합니다. 그것은 실리콘 벨리가 갑가기 성장한 10여 년 전부터 모두들 바빠지면서 교회에 모일 시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주일에 예배 한 번 잘 드리면 되지 않느냐 하는 말을 하면서 없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관리인은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교인이 줄어서 모임이 준 것이 아니라 모임을 줄이면서 교회가 쇠퇴해졌다는 것입니다.

미국 산호세의 교회, 유럽의 교회, 그리고 이 땅 일본의 교회. 마치 무슨 법칙과도 같이 선진화된 국가의 교회들은 하나같이 쇠락의 길을 걷는 것을 보게 됩니다. 더 이상 삶 가운데 간절히 구해야 할 필요들이 줄어들면서 그들의 삶에는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또 그들의 생활문화가 교회의 문화와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더 이상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내 시간의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배도 줄이고 순종의 범위도 좁혀 나가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정신은 다 사라지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힘도 잃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상상보훈의 결론 부분입니다. 마5-7장의 긴 부분, 우리가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주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개념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1. 말씀을 듣는 것은 그 들은 말씀대로 행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많은 사람들은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은 같은 개념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너는 왜 내 날을 안 듣니?” 라고 말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언제 하게 됩니까? 상대방이 내 말을 듣지 않을 때 그런 말을 하게 됩니까? 아닙니다. 그 말대로 행하지 않을 때 그런 말을 하게 됩니다. 듣는 것은 행동이 따를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 주 예배당에 나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죄송합니다. 듣는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듣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여했다고, 설교를 들었다고 나의 신앙의 책임이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행할 때 믿음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하였습니다.

의사가 말하는 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의사에게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 행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면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매 주일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잘 알면서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고 조금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경이 제시하는 복된 삶을 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의사가 처방해 주는 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이 병이 낫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듣는 것과 행하는 것 이 두 가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같은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행위를 하나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순종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순종을 배우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이런 순종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순종,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 그것이 바로 생명을 얻는 데에 유일한 기반이 된다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어떠한 폭풍이 몰아쳐 와도 그에게 대한 복종에 근거해 있는 삶은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이 모든 삶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마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이 말씀은 예수를 믿으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 같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모레위에 집을 짓는 것 같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산상보훈 자체가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즉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심판 때에는 구분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말씀인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에 눈에 보이는 집은 다 같습니다. 예수를 따르며 사는 삶이 마치 집을 짓는 것 같은데 인데,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는 사람이건 그렇지 못한 사람이건, 그 집은 같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때가 되면 그 집은 든든한 집인지 허술하여 쉽게 무너지는 집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구분은 바로 듣는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산상보훈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행하지 않는 자들은 희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심판에 관한 경고인 것입니다.

기초가 흔들리면 그것은 무효입니다. 아니, 좀 더 확실하게 말하면 흔들리는 기초 위에는 높은 집일수록 더욱 문제가 커지고 심각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격에도 고층이 있고 단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저 별로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무너져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하나 망가지면 그만입니다. 자기 집안 정도 망하면 됩니다. 그러나 돈 많고 출세했다는 사람들은 그 기초가 잘못되어 무너지면 자기 혼자 망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함께 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바르게 신뢰하지 않는 교회교육은 약삭빠른 악마를 키우는 것과도 같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8장부터는 이적과 기적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7장 까지는 우리가 행해야 할 말씀이 나오고 8장부터는 듣기만 해도 통쾌한 이적과 기적들이 이어집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복음서를 펼칠 때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적과 같이 병을 물리치고 부자가 되고 귀신을 물리치는 모습이 나온다면 더 호감이 갈 것입니다. 끝까지 복음서를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산상보훈이 먼저 나오고 기적이 나중에 나오는 것입니까? 마태의 편집 의도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말씀을 듣고 행할 때 기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많은 기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생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신분이 변화되고, 어려운 문제가 풀리고, 병이 낫는 삶을 꿈꿉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귀중한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삶이 기적같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기적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삶을 살 때, 아무리 시간이 없고 힘들어도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생활을 할 때,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는 기적과 같은 평안과 기쁨의 삶은 나도 모르는 사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믿는 보람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기쁨의 삶인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적 같은 생활을 먼저 찾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행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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