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HOME SiteMap Contact Us Japanese Korean English Chinese
Information
   

[2007년 2월 11일 주일] 사망의 땅과 그늘에


사망의 땅과 그늘에

마4:12-22




우리 교회는 아시다시피 주재원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주재원들은 근무기간이 끝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요즘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의 말에 의하면 서울 강남에서 집을 장만하여 사는 것이 무척 힘들다고 합니다. 강남에서 살다가 직장 때문에 동경에 주재원으로 오신 분들조차도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서울의 강남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몹시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미 아시는 대로 서울은 강남과 강북의 경제적이 차이가 많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입니다.

저는 서울의 강북에서 태어나 강북에서 죽 살아 온 사람입니다. 제가 성장할 때의 강남은 지금의 강남 같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쉽게 강북의 집을 팔고 강남의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고 오히려 교통이 불편해 이사를 많이 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사이 강북과 강남의 차이는 많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좀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많은 곳을 여행 해 보니 사는 곳이 차이가 나는 것은 서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호주의 시드니에 가니까 거기에도 강남과 강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강북이 부천이고 강남이 보통의 주택지였습니다. 동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 지대가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범람했다고 해서 생긴 이름 下町가 있고 그 반대의 개념인 山手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곳에서 살기를 바라며 그 능력이 있는 대로 집을 옮깁니다. 그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마음이기 때문에 나쁜 것도 정죄할 일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가능하면 좋은 지역에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비가 올 때마다 물이 범람하지 않는 곳으로 안전을 보장받는 곳으로 이사하여 살고 싶어 했지만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사회가 되면 좀 더 부유층이 모여 사는 곳으로 옮겨 살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마음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교인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이사하는 것을 절대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축하할 일이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직장생활을 하든 사업을 하든 성실히 일하여 부자가 되어서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입니다. 下町와 山手가 있다고 한다면 교회는 어느 지역에 세워져야 보다 효과적인 선교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거기에 대한 결론을 얻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문제에 관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 방법이라고 가르쳐 줄까?

이탈리아의 사상가인 움베르또 에코는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교회의 선교에 대하여 말합니다.
14세기 중세 이탈리아 북부 어느 수도원에서 종교논쟁이 벌어집니다. 교황의 사절로 참가한 베르나르도 귀 신부와 프란시스코 수도사인 윌리엄 수도사 간의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프란시스코 신부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가난했다!」
그러자 교황의 사절인 베르나르도 신부는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그런 가난한 예수를 전하기 위해 교회는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힘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는 예수는 가난했기에 우리도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란시스코파의 윌리엄 수도사를 이단으로 몰아 부칩니다.

단순한 소설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것은 오래도록 교회의 신학적 논쟁이 되어 왔습니다. 선교학에는 이 문제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논란의 주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의 선교에 있어서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선교의 대상을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느냐 하는 문제와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즉 상류계층의 사람들을 공략하는 것이 좋은 선교인가? 아니면 하층민들을 공략하는 것이 좋은 선교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드리면 대부분의 답은 이렇게 나올 것입니다.
「하층민들도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 성경적인 방법이지만 효과는 상류층의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이 더욱 클 것이다」


교회는 가난한 자에게 다가 가야한다는 것이 원론입니다. 예수님이 가난한 자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교회도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교회는 부유층 사이에 파고들어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할 때 효과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바울의 로마정복을 예로 듭니다. 로마의 귀족들을 전도하여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였을 때 로마는 불과 300년 만에 기독교국가가 되는 성과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보다 효과적인 선교의 방법으로 <위로부터의 전도>를 생각합니다.

반대로 하층민들로부터 선교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일본을 그 좋은 예로 말합니다. 일본은 스페인의 예수회 소속의 프란시스 자비에르가 선교사로 와서 평민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기리시단>이라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하층민으로부터 급속하게 퍼져나갔습니다. 일본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한 해 수 만 명씩의 신도들이 생길 정도로 기독교가 급속도로 커지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의 원인이 바로 하층민들에게 정성껏 장례를 치러 준 것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층민들은 장례식이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가마로 둘둘 말아서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 하층민들에게 교회는 정성껏 예의를 갖추어서 장례식을 치러주었고 그런 사랑이 하층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이 두 가지 방법 중 어떤 것이 바른 전도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것 그리고 교회사가 가르쳐 주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다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어느 것 하나를 바른 것이라 말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이 두 가지의 방법을 상황에 따라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바르다」 「바르지 못하다」의 문제가 아닌 바로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전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 해 복음을 전하시는 모습이 나타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약하고 천한 사람들을 절대로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 제일 먼저 일하신 곳은 바로 사망의 땅과 그늘에 있는 자들에게 가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마4:15-16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스블론 납달리 지역은 이스라엘 땅으로서는 매우 작고 약한 땅이었습니다. 스블론은 야곱의 아내 중 레아의 여섯 번째 아들의 이름이고 납달리는 라헬의 몸 종 빌하가 낳은 두 번째 아들의 이름입니다. 즉 그들은 야곱의 12 아들 중 뛰어난 인물도 아니요 눈에 띠는 인물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물려받은 땅은 이스라엘에서 결코 좋은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첫 전도지로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그 땅을 가신 것이 아니라 그 곳의 사람들을 부르시고 제자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증명해 주시는 것이 갈릴리의 청년들을 부르시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천한 땅 갈릴리의 청년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약한 자 가난 한 자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그들을 부르시고 격려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셨고 그들에게 삶의 문제를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을 사용하시어 세상을 바꾸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의 방법과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고린도 전서 1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고전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저는 제가 목사로서 어떤 마음을 갖고 목회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점점 커지는 교회 많아지는 예산 참석해야 될 모임과 관계 일본에서의 동경교회의 역할....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서 제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합니다. 제가 가야 할 곳을 생각합니다. 어디를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 지을 생각합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깊이 묵상해 보면 늘 답은 하나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분 한 분을 소개 해 드립니다. 동경에서 젊어서부터 혼자 두 아이를 어렵게 키웠던 어느 여 집사님을 소개합니다. 일본의 어느 큰 회사 식당에서 일하던 그 분은 늘 작은 살림에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분의 눈에는 항상 눈물이 있었고 직장을 오가는 길에 늘 교회에 들려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목사인 저와 제 아내는 그분이 늘 걱정되어 함께 기도해 주고 서로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반찬을 많이 주었고 우리는 그 분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리가 동경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 분은 너무 밝은 표정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생활은 안정되어 있었고 눈에는 눈물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두 자녀는 모두 잘 성장하여 하나는 北海道에 있는 대학의 교수 부인이 되었고 하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함께 기도했던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져 그분에게나 저에게나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목회의 보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인들 중에 가끔 제게 골프를 배우라고 권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동경교회 목사가 되면 그 위치가 일본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골프를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골프를 배워서 사회의 지도자들과 운동을 하면 많은 전도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골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골프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골프는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골프를 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목사입니다. 골프에는 건강의 유익이 있고 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풀 수 있는 힘이 있는 운동입니다. 저는 그 골프의 유익을 알고 있습니다. 골프를 치며 전도를 하면 분명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은퇴할 때까지 골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골프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골프와 목사가 잘 맞지 않아서도 아니고 눈치가 보여서도 아닙니다. 저는 사람 눈치 보면서 목회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골프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골프가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한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골프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래 전 제가 좋아하던 바둑을 두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인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 창립 99주년의 날입니다. 선교의 방법에 있어서 교회가 가야 할 길을 목사로서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 교회는 어느 길로 가야 할 것입니까? 일본 사회에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일본의 한인 사회에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우리가 그 길 중 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아래로 가겠습니다. 저는 생리적으로 위로 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제게 더 많은 시간이 있다면 저는 그 여 집사님과 같은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한 번 더 심방하겠습니다. 그분들을 찾아가 한 번 더 위로해 주고 기도해 주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들도 얼마든지 강하게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 믿음대로 아래로 갈 것입니다.

아직 일본 땅에는 사망의 그늘에서 어렵게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분들을 위해 더욱 최선을 다 하는 교회가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교의 좋은 열매들을 주실 것입니다. 그 열매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창립 99주년이 되도록
우리교회를 지켜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교회를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했던 많은 사람의 믿음으로
동경교회가 이만큼 성장했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감사드리며
교회의 나아갈 길을 선택합니다.
화려한 교회 중요한 위치의 교회라는 생각을 버리게 하시고
다시 예수님이 가셨던 그 길을 걸어
낮아지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망의 땅과 그늘에 있는 자들을 찾아나서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Total : 248 ] [ 5 / 9 ]
No. Subject File Date Hits
128  [2010년 7월 25일]복음(4): 예수를 믿으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 11-05-11711
127  [2010년 7월18일]복음(3):어떻게 예수를 믿습니까?11-05-11487
126  [2010년 7월 11일] 복음(2):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11-05-11646
125  [2010년 6월20일] 이렇게 하면 은혜를 받습니다.(2)11-05-11623
124  [2007년 11월 4일 주일] 한 문둥병자가 07-11-043696
123  [2007년 10월 21일 주일] 듣고 행하는 자는 07-11-042129
122  [2007년 9월 16일 주일] 구하라, 그리하면 07-09-162554
121  [2007년 8월 26일 주일]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07-08-262385
120  [2007년 8월 19일 주일] 너희는 먼저 07-08-192157
119  [2007년 7월 15일 주일]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07-07-162192
118  [2007년 6월 10일 주일]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07-06-142432
117  [2006년 6월 3일 주일] 눈은 눈으로 07-06-142094
116  [2007년 5월 20일 주일] 3개월과 100년 07-05-201842
115  [2007년 4월 29일 주일] 맹세하지 말찌니 07-04-291647
114  [2007년 4월 8일 주일]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07-04-081733
113  [2007년 2월 18일 주일] 그의 소문이 07-02-181819
112  [2007년 2월 11일 주일] 사망의 땅과 그늘에  07-02-121674
111  [2007년 1월 14일 주일] 메뚜기와 석청 07-01-141845
110  [2007년 1월 7일 주일] 지시하심을 받아 07-01-071466
109  [2006년 12월 3일 주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06-12-071982
108  [2006년 11월 19일 주일]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06-11-191751
107  [2006년 11월 5일 주일] 속건제 책임을 묻는 제사 06-11-051557
106  [2006년 10월 15일 주일] 화목을 위해 필요한 것 06-10-161646
105  [2006년 10월 1일 주일] 성경에서 보아야 할 것 06-10-011592
104  [2006년 9월 3일 주일] 질그릇 다시 보기 06-09-052088
103  [2006년 7월 2일 주일] 사람의 절망 하나님의 희망 06-07-042018
102  [2006년 6월 18일 주일] 염려를 맡기십시오 06-06-191856
101  [2006년 6월 11일 주일] 그러면 우리는 06-06-121671
100  [2006년 6월 4일 주일] 성령이여 강림하사 06-06-051744
99  [2006년 5월 21일 주일] 참된 전도자 06-05-211608
[1][2][3][4][5][6][7][8][9]

  
  

 

 

    ▲TOP  


〒162-0827 東京都新宿区若宮町24 東京教会
24 Wakamiya-cho, Shinjuku-ku, Tokyo, 162-0827, Japan
Tel: 03-3260-8891 Fax: 03-3268-6130    
(C) The Tokyo Korean Christian Church in Japan Ministrie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