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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일 주일] 성경에서 보아야 할 것


성경에서 보아야 할 것

눅15:11-32



가을이 되면서 저는 시간이 나는 대로 우리교인들의 집을 계속 심방하고 있습니다. 심방을 하면 교인들과 친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교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어떤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알게 되어 목회를 하는 제게도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교인이 점점 많아지면서 모든 교인들의 가정을 자주 심방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나는 대로 열심히 심방을 하려고 합니다.

심방을 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은 의외로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해주는 모습으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아마 이런 모습은 대부분의 교인들 가정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생각되는데) 교인들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데 자신들은 지금 바른 신앙의 길을 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늘 세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부끄럽고 교회의 봉사도 열심히 하지 못하고 예배 참여나 기도생활도 열심히 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면 대체로 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많이 합니다. 제일 많은 대답은 「하나님이 나를 보시면 실망할 것」이라는 대답이고 두 번째로 많은 대답은 「분노하실 것」이라는 대답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똑같은 질문을 여러분들에게도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보고 계실 때 여러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까?」
아마 우리 중에서도 「실망할 것이다」 라든가 「분노하실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심방을 하면서 알게 된 여러분들이라면 그런 대답을 많이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대답에 대해서 한 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실망이나 분노를 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자신의 죄가 가장 주목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대답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가장 민감하게 보고 계신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특별한 것을 원하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탕자의 비유라고 말하는 오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죄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죄를 들추어내는 대신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만나기 위해 달려 나오는 모습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내 죄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실까? 하는 두려움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왜 나는 아버지가 나를 하인으로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무슨 일을 했든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목사나 장로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전도자나 선교사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으로 창조하셨기에 우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윤리적으로 완벽하고 흐트러짐이 없는 모범 된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넘어지는 그런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원하는 것입니다. 뱀의 꼬임에도 넘어가는 그 연약함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도 주님을 부인하는 그 약한 의지 하나님은 그 모습을 우리에게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연약한 사람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창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며 사는 것을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탕자의 비유 속에서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돈을 허랑방탕하게 쓰지 않고 갖고 간 돈을 잘 활용해서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혼자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오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께 온 사람들에게 자녀의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돈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성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더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과거의 잘못과 죄를 보지 않으시고 세상적인 능력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연약한 사람으로 창조되었기에 연약한 사람의 모습을 찾으면 되는 것이고 나의 무능함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아버지께로 가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그 것 하나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 혼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하나님께 돌아가야 살 수 있겠다는 그 생각을 우리가 할 수 있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믿음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가면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 온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과거의 죄가 바뀌지 않아도 우리의 죄의 흔적이 없어지지 않아도 그것은 하나님께는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버지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넘어집니다.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인 교회가 그 교회의 특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부르십니다. 그리고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한 교회에서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그것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너무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람이 커다란 물동이 둘을 지고 있습니다. 물동이는 그의 목에 걸린 지게 양 끝에 하나씩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한 물동이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물 한 동이는 성했으나 다른 물동이는 금이 가 있었습니다. 우물가에서 그 사람이 자기의 집까지 먼 길을 걸어오면 성한 물동이에는 언제나 물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금 간 물동이는 물이 반 밖에 없었습니다. 꼬박 2년 동안 그 사람은 날마다 금이 간 물동이 때문에 반동이의 물을 나르지 못했습니다.

성한 물동이는 자기의 모습이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금이 간 물동이는 자기가 맡은 일을 절반밖에는 할 수 없어서 늘 주인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쓰라린 삶처럼 느껴진 2년을 보낸 어느 날 금이 간 물동이가 우물가에서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나는 내가 부끄러워요. 당신께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주인이 묻습니다.
「왜? 무엇이 부끄러운데?」
「주인님이 저를 데리고 집까지 가는 동안 저의 금 간 옆구리 때문에 항상 물이 새지요. 그래서 지난 2년간 물을 반 밖에 나르지 못했습니다. 나의 흠 때문에 주인님은 매일 물을 반이나 얻지 못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주인은 금이 간 물동이가 불쌍하고 가여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따가 집으로 돌아갈 때 길가의 예쁜 꽃들을 잘 보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언덕을 오를 때 금 간 물동이는 정말 길가의 아름다운 꽃들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햇빛을 받고 밝게 웃고 있는 꽃들을 보면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집에 와서는 다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절반의 물이 또 새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동이는 또 주인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주인님 또 물이 새고 말았습니다.」
그 때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꽃이 반대편 물동이 쪽에는 없고 네 쪽에만 있는 것을 보았니? 내가 늘 네 흠을 알고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나는 네 쪽의 길가에 꽃씨를 심었고 우리가 우물가에서 돌아올 때마다 네가 꽃씨에게 물을 주었지. 2년 동안 나는 예쁜 꽃으로 우리 집을 예쁘게 꾸밀 수 있었단다. 네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아름답게 집을 꾸밀 수 없었겠지?」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라서 여러분 모두 이 이야기의 의미를 금방 아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입니다. 깨지고 부서진 우리의 부끄러운 인생의 모습을 갖고도 훌륭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 때부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바꿔 선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갖게 되는 특권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 저는 집에서 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아픈 일을 하나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둘째 딸 서현이가 <안네의 일기>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서현이가 그렇게 좋은 책을 읽고 있는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 책의 머리말을 보면서 제가 놀란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모든 책은 그 머리말에 책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즉 이 책은 어떻게 쓰여 졌으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딸이 읽던 그 책의 머리말은 논술고사에 이렇게 응용을 하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그 책이 어떻게 쓰여 졌는지 책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습니다.

여러분 <안네의 일기>가 어떤 책입니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점령 하의 네덜란드 임스텔담에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은신처로 피신해 있던 프랑크 가족의 2년 동안의 생활을 기록한 프랑크의 딸 안나 프랑크라는 소녀의 일기입니다. 사춘기 소녀의 시각으로 보는 어른들의 전쟁의 세계와 그 속에서의 한 소녀의 용기를 읽을 수 있는 매우 감동적인 책입니다. 안네는 후에 나치 독일에 의해 유대인수용소에 수감되었고 언니와 함께 그 곳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어린 나이에 수용소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쓴 일기가 후에 발견되었고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버지에 의해 1947년 네덜란드에서 책으로 출판되어 세계적으로 큰 반응을 일으킨 책입니다.

그 책의 머리말에 「이 책을 읽으면서 논술에 이렇게 이용하라」고 써 있는 것을 보면서 저는 화가 났습니다. 다른 책은 몰라도 그 책은 논술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안네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2년 동안 그 일기를 써 내려갔습니다. 하루하루의 그의 일기는 공포와 두려움 고통과 눈물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그녀의 일기를 보면서 대학 입시에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그 책을 이용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그 책에 대한 내용을 다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우리는 그 성경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봐야 합니다. 우리를 너무 사랑해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아들을 죽이도록 내어주기 전 하나님의 그 고통을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기 전 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그 피나는 기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 외아들을 잃음으로 더 많은 자녀를 얻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자녀의 권세를 주시기 위해 달려 나오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것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들을 아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러분은 과거로 인해서 괴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봅니다. 이 성경을 날마다 보고 읽을 때 여러분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은혜를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자녀의 권세를 충분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바로 그런 신앙의 자세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자녀답게 생활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과거의 잘못과 많은 아픔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마음만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 성경을 바로 읽고 바로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당당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들의 권세를 누리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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