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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5일 주일]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니

마6:19-24



어느 주인이 집에 찾아 온 손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술과 밥과 떡이 있는데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그 때 손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왕이면 술에 밥을 말아 떡을 안주삼아 먹겠소!”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는 항상 아쉬움이 남게 되는데 그것은 두 가지 다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봉사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되는 것은 참 싫었습니다. 목사가 되면 물질적 제약을 참아야 하고, 행동의 제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장로가 되어서 마음껏 물질로 하나님께 봉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저의 욕심에서 나온 대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 신앙생활을 멋지게 하는 것과 물질이 가져다주는 편안한 생활, 두 가지를 다 노치고 싶지 않은 생각에서 나온 대답이었던 것입니다.

결혼 후에 제 아내에게서도 같은 고민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되는 것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을 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는 목회자의 아내가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남편을 잘 도와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장로가 되게 해서 하나님께 마음껏 봉사하여 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장로가 되는 것은 목사가 되는 것보다 헌신이 약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와 장로는 그 몫이 다릅니다. 제가 목회자가 되려 할 때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을 될 수 있는 대로 피해보고자 했던 마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과 편안하게 사는 것 두 가지를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가치관에 따라서 행동이 나타납니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명예를 위하여 돈을 버립니다. 그러나 돈이 소중한 사람은 돈을 위하여 명예 따위는 쉽게 버립니다.

그 가치, 그것을 예수님은 오늘 <주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행동이 변화된다는 것은 곧 가치관에 따라 행동이 변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언제나 하나여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서 그 주인이 둘 이 될 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위선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좋고 나쁜 것 보다, 주인이 둘 인 것이 더 나쁜 것입니다. 결혼한 남자는 한 여자에게만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집에서는 아내에게 가치를 두고 밖에서는 다른 여자에게 가치를 둔다면 그 때는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이 상황에 따라서 돈에 가치를 두고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만일 매 주일마다 하나님에게 가치를 두자고 설교하면서, 제가 돈을 가장 사랑하고 돈만을 위하여 산다고 산다면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이겠습니까? 또 돈을 더 벌기 위해 다른 일에 힘쓰고 그 돈으로 술집에 가서 술을 먹고 오락을 즐긴다고 한다면 저는 위선자가 되는 것이고 더러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두 주인이 있으면 안 됩니다.

마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케 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입니까? 바자회를 하면 안 되고 김치를 만들어 팔면 안 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지도자들이 실상은 하나님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위해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달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참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보물은 무엇이었을까요? 역사적인 상황과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당시의 사람들이 무엇을 보물같이 생각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보화는 역시 오늘날과 같이 돈이 제일 귀했고, 옷과 곡식, 그리고 보석류나 동으로 된 그릇들도 귀하에 쓰였습니다. 이런 것들이 귀하게 쓰여 진 이유는 돈과 같은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옷으로 다른 물건들을 살 수 있었고, 곡식으로 필요한 것들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의 이 모든 보물은 종교지도자들이 관리하고 독점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재물과 보화를 무척 좋아하였는데 재물과 보화를 위하여 오히려 종교를 이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친인척까지 부를 축척했고 부를 쌓아 갔습니다. 차라리 내 놓고 돈을 벌 것이지,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뒤로는 재물을 섬겼던 것입니다. 위선자이고 배신자였습니다. 두 주인을 함께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교회에서 교회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은 서로의 주인이 다양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일수록 주인은 하나여야 합니다. 주인이 같아야 합니다.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교회를 잘 모르는 분들은 재물이 주인이 되어도 좋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러나 직분자들은 그러면 안 됩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는 점점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왕 주인을 섬길 것이면 강한 주인을 섬겨야 합니다. 그들이 왜 두 주인을 섬겼던 것일까요? 그들이 뒤로는 재물을 섬겼다는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부요함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능력보다 재물의 능력이 커 보였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한 주인만을 섬겨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보물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오늘날에는 다이아몬드나 보석들이 귀하고 먹는 것은 너무 넘쳐나 버리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나면 먹는 것 이상으로 귀한 것은 없습니다. 한국전쟁 때 저희 아버지는 옥수수 3개와 손목시계와 바꿨다고 했습니다. 보물의 가치는 바뀝니다.

높은 값의 주식이 하룻밤에 휴지조각이 되는 경우도 있고, 손목시계가 옥수수만도 못한 경우가 있고, 보물같이 여기던 자식들이 어느 순간에는 부담스런 존재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보물의 한계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보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당시에는 옷과 곡식과 돈이 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보물과 같이 여기는 그 물건들이 변화되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옷은 좀이 먹고, 곡식은 쥐가 먹거나 썩어 버리고, 돈은 도둑이 가져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보물은 영원한 가치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늘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중요한 것은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물질을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레는 “돈을 힘 써 벌 되 하나님의 뜻대로 쓰라”고 말하였습니다. 돈은 죄가 아닙니다. 그래서 돈이나 돈이 가져다주는 평안한 생활을 우습게보거나 천하게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돈을 얻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돈을 우상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격언에는 “돈을 지배하면 돈이 당신에게 충성된 종이 될 것이지만, 만일 돈을 섬기면 돈이 당신에게 폭군이 될 것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은 언제나 우리 사람들의 생활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전공과목을 선택을 하는 것이나,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의 적성보다는 돈을 많이 생각합니다. 돈이 목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이 목적이 될 때 삶은 평안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물이 나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애써야 하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주인이 되지 않는 삶을 위해 우리는 십일조의 훈련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일조는 우리가 물질을 섬기지 않겠다는 가장 좋은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십일조의 액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정확히 지키는 것을 워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일조는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일조는 사람에 따라서는 떼어 하나님께 드리기가 많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아까움을 버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며 사는 삶을 아깝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헌금은 돈이 필요하여 모금을 하는 것이나 돈에 대하여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의 시간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겠다는 헌신의 뜻이 담긴 의식입니다. 헌금의 시간은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는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그 어떤 순서보다 장엄해야 하고 경건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가 돈을 많이 걷기 위해 바구니를 돌린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헌금의 시간은 두 주인이 한 주인이 되는 시간입니다.


둘째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중요하게 하시는 말씀은 부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일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항상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급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땅의 삶은 잠깐입니다. 이제 반 이상 살아오셨다고 생각되신다면, 또 그만큼 살면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사고 없이 병 없이 잘 살아야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 계산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곧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아무 것도 갖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 땅의 보화는 잠깐의 생활만을 편안하게 해 줄 따름입니다. 그 뒤 우리가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하여서는 우리가 이 당에서 하나님의 일에 애써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 일에 힘을 쓰고 계십니까? 어떤 일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한 번은 부목사님들이 제게 다음부터는 에스라 성경공부를 목요일에서 다른 요일로 옮겨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가끔 버버리세일을 목요일에 하는데 그 날이 되면 많은 분들이 결석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목사님이 성경공부가 버버리보다도 못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공부에 잘 나오던 어느 집사님이 두 주을 결석을 하였습니다. 나중에 왜 두 번 결석을 했냐고 물으니 옆집에서 길게 여행을 가면서 그 집사님에게 개를 맡겼는데 개 밥 주느라고 성경공부에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이 개만도 못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갖고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사람이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물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항상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 하야 합니다.

자, 우리 앞에 보물과 하나님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보물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합니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우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은 오늘본문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 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두 주인을 놓고 담대하게 이렇게 고백한 여호수아의 고백을 우리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기도>
하나님,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의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오늘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의 가치에
우리의 삶을 전부 투자하는
허무한 삶 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보화를 하늘에 쌓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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