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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6일 주일]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마6:25-34




어느 심장병 환자의 부인이 10억 엔의 상금의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면 남편의 병이 위험해 질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을 평소 치료하던 의사에게 가서 상담을 하였습니다. 의사는 자신이 그 사실을 놀래지 않게 알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의사가 남편인 환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당신에게 1억 엔이 생기면 뭘 하시겠습니까?”
“만일 1억 엔이 생긴다면 나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함께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좋은 차를 한 대 사 주겠습니다.”
의사가 또 묻습니다.
“만일 당신에게 10억 엔의 돈이 생긴다면 당신은 뭘 하시겠습니까?
환자가 말합니다.
“만일 10억 엔의 돈이 생긴다면, 평소 나를 친절하게 치료해 준 당신에게 그 절반인 5억 엔을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그 의사는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돈을 좋아합니다. 오늘날 동경에서 사는 우리들도 돈을 좋아하고,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에 살았던 유대인들도 다 돈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돈 때문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심하게는 사람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돈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 하기도 하고, 편안하게 하기도 하고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17, 18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원래 사람들은 재물과 돈을 좋아하였기에 자본주의가 자연적으로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요단강의 동편을 선택한 것도,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했을 때 아간이 재물을 숨긴 것도,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다른 주변의 나라가 부러워한 것도, 모두 돈과 물질을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이유는 돈이 사람에게 편안한 생활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좋은 집과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등, 돈은 남들보다 윤택한 생활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남들보다 그만큼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돈의 위력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돈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편안한 생활을 줄 뿐 아니라 돈이 높은 인격까지 함께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돈이 많으면 훌륭한 사람처럼 여기고 돈이 없으면 평범한 사람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돈이 많으면 소중한 사람대접을 받지만 돈이 없으면 그런 대접은 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물질로 인해 그 가치가 형성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물질의 중요성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용하는 것이 광고입니다. 예전에는 상품 자체를 선전했지만 현대는 상품을 쓸 때의 이미지를 광고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서 제품을 만들면 그 제품에 대한 기능을 광고 하였습니다. <이 제품은 어떤 어떤 기능이 있다>는 식의 광고를 하면서 소비자에게 접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소비자의 판단이었습니다. 소비자의 이성에 대한 접근이고 소비자는 합리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대는 그런 광고를 하지 않습니다. 이성적인 광고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광고를 합니다. <이 제품은 어떤 기능이 있다> 는 것 보다, <이 제품을 쓰면 당신은 어떻게 변한다> 는 식으로 제품을 통해 사람의 인격과 품위가 달라진다는 광고를 합니다. <우리 화사가 만든 아파트에 살아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거나 <이 자동차를 타야 성공한 사람이다>라는 식의 광고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괴롭습니다.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제는 돈이 단순히 편안함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인해 사람이 인격까지 평가받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생활의 모든 부분에 돈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돈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많은 근심과 염려의 뿌리가 되기도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 모든 문제도 돈과 연결되는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의 주제는 <염려하지 말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염려의 근원이 물질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의식주의 모든 문제는 바로 돈과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근심과 염려는 <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근심>이나 <염려>는 단순히 생각이 깊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근심>이나 <염려>의 정의는 그것으로 인해 다른 일상생활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가상적인 일에 대한 생각이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현상을 <근심> 또는 <염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읽어 보면 하나님은 원래 우리 인간을 <염려>나 <근심> 없이 살아가는 존재로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상상하실 수 있으십니까? 염려와 근심이 없는 생활을....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창조해 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근심과 염려가 없는 생활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염려와 근심 없이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공중의 새 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그 부모가 존재함으로 인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 같이 우리를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녀의 특권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이 주지도 않으신 근심과 염려 속에 하루하루를 사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그 위치에 돈이 올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돈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을 더 신뢰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무시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은근히 무시한다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을 축복으로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나이 많으신 권사님 댁에 심방했을 때입니다. 함께 간 구역장님이 제게 그 권사님을 이렇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많이 하셨지만 하나님을 잘 믿어 큰 축복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축복의 내용이 무엇인가 물어보았더니 혼자 키운 두 아들 모두가 사업을 잘 해 큰돈을 벌었다는 내용입니다. 아들들은 사업을 크게 하느라 시간이 없어 교회도 잘 나오지 못하는데 단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유로 큰 축복을 받았다고 소개하였습니다. 마음이 무척 아팠지만 그것이 우리들의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좋은 학교를 졸업하면 축복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의식 속에는 돈의 소유가 축복으로 여겨지는 마음이 있습니다. 돈의 많고 적음이 축복의 많고 적음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어느덧 하나님의 고귀한 축복이 돈에 가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축복과 평안을 노치고 있는 것입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쌓아 놓고 있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그것을 매일 공급받는 것 자체가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할 때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의 만족감을 비교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일요일은 무엇을 하는 날입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요일은 그동안 정통적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날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아이들과 젊은 부모들은 주일은 가족과 함께 쇼핑하고 외식하는 날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미 많은 백화점들은 쇼핑의 편리함을 위해 쇼핑과 식사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콤플렉스 형태의 쇼핑몰로 바꾼 지 오래입니다.

가족과 함께 백화점으로 쇼핑을 가는 길을 생각해 보십시오. 차를 타고 한참을 가는데도 아내와 아이들은 불만이 없습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주차를 해도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기만 합니다. 두 세 시간 서서 매장을 돌아다니지만 다리가 아프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싼 물건의 값을 지불할 때 아까와 하지도 않고 물건을 사 들고 돌아오는 길에는 만족함이 있습니다. 행복감을 느낍니다. 반면, 교회에 오실 때에도 같은 만족감이 있으십니까? 교회에 오는 시간이 즐겁습니까? 주차 하는 것이 많이 불편한데 괜찮으십니까? 한 시간 앉아서 예배하는데 허리는 안 아프십니까? 헌금은 아깝지 않으십니까? 돌아갈 때 큰 행복이 있으십니까?

많은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백화점이 교회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가지 않아도 쇼핑과 외식은 합니다. 교회가 주지 못하는 만족함을 백화점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소비문화는 이미 현대인에게 있어서 종교가 되었습니다. 지나친 비유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마음의 근심과 걱정이 어떤 행위로 인하여 안정을 얻는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있는 머시(Macy's) 라고 하는 백화점은 너무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백화점입니다. 그런데 그 백화점의 현관 입구에는 예수님이 손을 벌리고 서 있는 큰 석상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곳이 관광명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예수님 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이 곳 백화점에 와서 갖고 싶은 물건을 사라! 그러면 네 마음이 편안해 질 것이다!> 라는 메시지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많이 슬펐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어쩌다가 저 위까지 올라가셨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자리에 예수님을 올려놓은 것입니다. 사단은 옛날에는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올려놓더니, 이제는 백화점 위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요즘 기독교의 유행어 중에 <영적 전쟁>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영적 전쟁이라는 말은 우리의 믿음을 파괴시키는 사탄의 보이지 않는 힘과의 싸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는 이단 사이비 종교의 도전으로부터의 싸움을 말하기도 하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시험으로부터의 싸움을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많은 이단의 공격을 많이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위험은 현재에도 끊임없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각 교회와 교단들은 이단을 물리칠 수 있는 교리교육을 강화하고, 이단에 대한 특징들을 설명하는 책자들을 만들어 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이단의 위협이 계속되기 때문이며, 이단에 한 번 빠지게 되면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 기독교를 위협하는 것이 다른 이단 종교가 아니라 현대의 소비문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현대의 소비문화는 기독교를 가장 위협하는 것이라고 많은 신학자들이 걱정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학자들은 기독교를 위협하는 가장 큰 종교는 잘못된 교리로 사람을 유혹하는 이단들이 아니라 바로 소비문화를 부추기는 백화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영적으로 싸워 이겨야 할 것은 바로 이 <돈>의 문제인 것입니다.

영적 전쟁은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너무 거창하게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돈을 우습게 여겨야 싸움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 돈을 모두 버리고 돈을 부정해야 바른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은 백화점을 가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고, 주일날 식구들과 외식을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것 한 두 가지만 실천할 수 있으면 됩니다.

그것은 첫째, 돈이 곧 축복이라는 개념은 억지로라도 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이 곧 축복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나님의 바른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돈으로 온다는 생각을 버려야 우리는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매일 매일 쓸 것을 공급해 주심을 믿을 때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없게 되고 돈 때문에 지을 수 있는 죄도 줄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백화점에서 물건을 살 때의 만족감보다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할 때의 만족감이 더 크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백화점에서 주차할 때의 마음보다 교회의 불편한 주차가 더 기쁠 때 우리는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고, 물건 값을 지불할 때의 마음보다 헌금할 때의 마음이 더 기쁠 때 사단은 우리를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영적 전쟁은 생활 중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염려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데서 오는 불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는데서 오는 불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을 예로 드시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공중의 새보다 들의 꽃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말은 다른 성경에서는 <너의 사는 것에 대하여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공급을 믿고 단순한 믿음을 갖고 살라는 것입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돈 때문에 근심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입는 것으로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급을 믿으며, 돈이 주는 만족감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근심하며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있습니까?
정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울며 무엇 때문에 행복해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를 깨우쳐 주셔서
하나님의 자리에 돈을 올려놓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돈이 주는 만족함보다 하나님의 그것이 더 큰 것을
맛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모습으로 시험하는 사탄의 도전을
우리가 믿음으로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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