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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8일 주일]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요20:11-18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에 있어서 그 역사적인 부활의 현장에 제일 가까이 있었던 인물을 말 해 보라면 우리는 단연 막달라 마리아를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 해 마리아는 부활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서쪽의 막달라 지방에 살던 여인입니다.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시달림을 받다가 예수님을 만나 치유된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평생을 산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즈음에는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까지 예수님을 좇아갔고 빌라도 법정에서의 재판 골고다 언덕에서의 십자가형 예수님의 임종 시체의 매장까지 다 지켜 본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던 그 아침에 향유를 가지고 무덤을 찾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갖고 있는 신앙을 말해본다면 그녀는 이른 새벽에 주를 찾는 열정적인 신앙이 있었고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을 만큼 헌신적인 신앙이 있었으며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순교적 신앙이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신앙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런 신앙의 끝이 바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절망>이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마리아로부터 전해 듣고 그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은 바로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버려진 땅 천박한 갈릴리 지역에서 태어나 그 어떤 교육이나 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성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세상을 뒤집을만한 큰 힘을 가졌다고 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을 뒤집기는커녕 그들은 사실 자신의 앞가림도 하지 못했던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제자들이 세상을 뒤집을만한 능력을 갖게 된 것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갈릴리의 무식한 청년들이 예수님을 만난 뒤에 3년 동안 교육을 받고 기적을 체험하였기에 그들에게는 큰 능력이 생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이 갖고 있었던 신앙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갖고 있었던 그 신앙의 결과가 바로 <절망>이요 <신앙의 부인> 이었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절망 제자들의 절망 이것은 마리아의 얘기가 아닙니다. 제자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버려가며 열정을 갖고 주님을 따랐지만 3년간이나 열심히 주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았지만 그 결과는 <절망>과 <배신>뿐이라면 그들이 갖고 있었던 그 신앙은 참된 신앙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3년간의 교육을 받고도 서로 누가 높은가? 만 따졌던 한심한 사람들이었고 최소한의 인정도 없었던 치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개만도 못한 제자들이었습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마리아는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누구입니까? 마리아는 열정적 신앙 헌신적 신앙 순교적 신앙이 있지만 삶에 큰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쓰러지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눈물 흘리는 나약한 신앙인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열정이 있습니다. 잠을 자지 않고 먹지 않고 하는 많은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헌신이 있습니다. 많은 시간과 물질을 바치며 주를 사랑하는 헌신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순교의 각오가 있습니다. 욕을 먹어도 손해를 봐도 그것을 기쁨으로 감당하려는 마음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가정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사업의 문제 자녀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가 크게 다가오면 제일먼저 신앙을 버리게 됩니다. 신앙을 적용하려 해도 힘없는 죽은 신앙만이 있을 뿐입니다. 울면서 아무 능력이 없는 죽은 예수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열정과 헌신과 순교는 완성된 신앙의 형태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교회는 교인들이게 열정을 소유하라 가르치고 헌신하라 강요하며 순교하라 격려합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라고 하면서 그 힘을 교회에 집중시킵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그것이 바른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을 아십니까? 그것은 미완성의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부족합니다. 우리가 소유해야 할 그 신앙은 바로 부활의 신앙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형편없는 자질의 제자들이 세상을 뒤집을만한 능력을 갖게 된 것은 하나의 사건이 있은 후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흩어졌던 제자들을 다시 모이게 했고 그들에게 기도하게 했으며 성령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바뀐 저들의 모습입니다. 부활의 사건이 있은 후에야 그들은 그들이 받았던 교육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에야 그 교육이 비로소 완성된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도대체 부활의 신앙이 무엇이기에 부활을 접하지 않고서는 부활을 느끼지 않고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그 신앙 우리가 갖고 있는 그 열정 우리가 받아 왔던 그 가르침이 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일까요? 도대체 부활의 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활신앙은 주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나와 함께 사신다는 것입니다. 삶의 크고 작은 문제 속에서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신앙은 우리에게 완성된 신앙의 모습을 가져다줍니다. 사망을 이기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굳은 믿음이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책임지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신앙입니다.

또한 부활신앙은 이 땅에서의 모든 삶을 다 마치면 다시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는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부활신앙이 없으면 죽음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이 있으면 가족이 죽어도 내가 죽는다 해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슬픔 중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활의 신앙이 없으면 죽음이 견딜 수 없는 절망으로 다가오지만 부활의 신앙이 있으면 죽음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이지만 어려움을 만나면 절망적이고 좌절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울며 누군가를 찾게 됩니다. 주님을 찾아도 죽은 예수님만을 찾고 있습니다. 죽은 예수님이라도 보려고 과거의 그 열정을 생각해 보지만 죽은 신앙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나의 모든 슬픔과 눈물을 없애주시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여러분은 주님의 이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신앙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날마다 세상 걱정에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교육을 많이 받아 왔지만 근심과 걱정이 있을 때는 과감하게 주님을 부인하는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어찌하여 우느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오늘 이 부활의 아침에 주님의 그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으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부활의 아침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죽은 신앙이 되지 않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부활신앙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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