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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0일 주일]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마5:43-48


많은 종교 전문가들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지 않아 이 세계에 있어서 제일 큰 세력의 종교는 이슬람교가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지금까지 수위를 지켜왔던 기독교를 믿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전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쳐서 20억 정도로 보고 있지만 현재 그 숫자가 계속 줄고 있는 형편이고, 현재 13억 정도의 이슬람교 신도는 현재 1.8%라는 가장 높은 증가율로 급속도로 불어나고 있어 곧 수위의 위치가 뒤바뀔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미 서구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이슬람교인의 활발한 이민과 높은 출산율로 대부분 이슬람교가 제2의 종교로 자리를 잡았고 몇 몇 나라들은 제1종교로 되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의 보고에 의하면 프랑스의 파리에서는 이슬람교 신도의 공식 집계가 기독교의 신도보다 많아졌고, 대개의 유럽의 대도시에서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하고 다니는 여성들을 길거리에서 보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미 상대적으로 생활수준과 의식이 높아진 기독교인들은 자녀를 적게 낳는 반면에 생활의 수준과 의식이 낮은 이슬람 교인들은 일부다처제를 허락하는 나라도 있고 또 많은 자식을 낳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독교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슬람교를 많이 믿는 것을 보면 꼭 기독교인들이 아이를 적게 낳기 때문에 수가 적어진다고 보는 것은 맞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서구 기독교인들의 현저한 감소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느는 곳은 오직 중국과 남미지역 뿐입니다.

이미 영국의 스코틀랜드의 감리교회에서는 목사의 담임제도가 없어졌습니다. 감리교는 영국에서 시작된 개신교입니다. 그런 감리교의 종주국인 영국에서 목회자가 없어서 몇 안 되는 목회자가 일정지역을 순회하면서 예배를 인도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감소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기독교의 수가 감소하고 있을까요? 이유는 이미 나와 있습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호감을 갖지 않는 두 가지 큰 이유는 그것은 첫째, 기독교가 극단적인 신비주의로 치우쳐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고 둘째는 기독교의 강한 배타성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 때문에 많은 문제를 일으켜 왔습니다. 때로는 기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였고, 때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학살을 행하기도 했으며, 오래도록 선량한 백성들을 괴롭혀 왔던 것입니다. 그 중 기독교의 배타성의 문제는 이런 전쟁과 학살 등의 현상들이 나오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군전쟁만 봐도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배타성과 욕심으로 인해 2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많은 희생을 만들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전쟁에 내 보냈고, 예루살렘 대학살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미국의 노예제도를 보는 백인 기독교인들의 시각은, 흑인은 하나님이 주신 기독교인을 위한 축복이라 여겼으며 흑인들은 영혼이 없으며 사람과 짐승의 중간 존재라고 교회가 가르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마음을 갖는 기독교인들의 사상의 기초가 바로 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레위기의 말씀을 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이 해석하여 그 말씀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는 율법을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수를 미워하라!>라는 말씀이 이상합니다.

마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그런데 이 말씀에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원수를 미워하라는 이 말씀은 구약의 율법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구전으로 가르쳤던 율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사람의 임의로 판단하여 율법이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의 모든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에 의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을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알고 지켰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레19:18절의 말씀입니다.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구약의 율법에는 오로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만 나와 있을 뿐입니다.

둘째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그 <이웃>과 <원수>의 개념을 유대 백성들에게 확실하게 구분하여 가르쳤습니다. 즉 그들이 정해 놓은 이웃은 이스라엘 민족이고 원수는 이스라엘 백성 이외의 다른 민족을 모두 지칭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명령으로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명령에 <이웃>이라는 말의 범위를 한정시키는 오류를 범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의 <이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민족으로 한정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다른 민족은 사랑하지 않았고 원수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는 율법에서 말하고 있는 <원수>라는 단어를 오해한 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즉, 율법에서 말하고 있는 원수는 본래 이방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 성품과 반대되는 이방인들의 가증스러운 행위를 가리키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를 모든 이방인들에게 적용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방민족을 원수로 생각했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껏 3,000년이 지나도록 원수지간으로 전쟁을 하며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십니까?

어느 이스라엘 선교사의 보고의 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이스라엘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두 청년의 시체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두 아들을 잃고 남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슬피 울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사람이 그 어머니를 위로하고자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다행이 아들 하나가 남았으니 그런대로 참고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 그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남은 아들도 키워서 반드시 전쟁에 내 보내겠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사람들의 전쟁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은 구약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만족이나 이방민족이나 다 똑같이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사람들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죄를 미워하는 것이지 이방 사람 자체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도 그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레 19:33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신10:18-19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여기서 나그네란 이방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들을 사랑하라 하시고 그들을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순을 지적하신 것이 아니라 이처럼 유대교의 지도자들에 의한 잘못된 율법의 해석을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언뜻 보면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 같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인 것 같지만 사실 그런 표면적인 것의 요구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바로 중요한 요점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바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을 받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아들로서 행동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항상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운운할 때에는 항상 화평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언뜻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사랑하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들릴 수 있지만 예수님은 더 근본적인 화평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도 편을 가르는 사랑이 있고, 하나로 만드는 사랑이 있습니다. 남여의 사랑은 편 가르는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어머니의 사랑도 희생적이기는 하지만 편 가르는 사랑으로 변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5:46-47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하나로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 사람을 화평케 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화평을 위하여 힘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 14:19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히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아버지를 닮아 화평케 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 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그 곳을 하나가 되도록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화평을 위해 힘쓰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예배를 드려도 여전히 편협하고 편 가르기를 힘쓰고 화평을 깨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경쟁과 싸움, 미움과 시기, 그래서 생기는 분열의 상처를 다 치유해야 합니다.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싸움을 그치고 화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들도 화해를 시켜야 합니다. 그 때에 비로소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을 해 주는 것입니다.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그리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믿음이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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