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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3일 주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마1:1-5



2007년부터 저는 새롭게 마태복음을 설교하려고 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한 가지 고민은 이 마태복음 설교를 새 해 첫 날인 1월부터 할 것인가? 아니면 교회력의 시작인 대강절 첫 주 바로 오늘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성탄절도 있고 해서 교회력에 맞추는 것이 보다 좋겠다고 생각하여 오늘부터 마태복음을 설교하려 합니다.

오늘부터 마태복음을 시작하면서 저는 마태복음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 바른 해석을 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의 바른 해석을 찾아 설교를 준비하다 보면 때로는 설교가 딱딱해 질 수 있고 또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에게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반복이 될 수도 있어 설교에 대한 새로운 흥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설교는 재미와 흥미가 아닌 바른 진리를 찾아 나가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을 하면서 매 주 진리를 찾아 나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를 할 것입니다.

제가 복음서를 특히 마태복음을 설교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우리 교인들의 가정을 심방해 보면 의외로 이제 막 성경을 접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성경에 대하여 많은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성경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성경을 알고 싶어 하는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복음서를 함께 공부해 나가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 모두가 다 기독교에서 생명과 같이 여기는 이 복음에 대하여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고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복음서를 매 주 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복음이라고 말 할 때 넓은 의미에서는 성경이 모든 말씀을 다 복음이라고 말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구분해 보면 복음이란 좀 더 범위가 좁혀집니다. 마태복음이라고 말 할 때의 이 복음이란 바로 예수님과 관계된 이야기를 말 합니다. 즉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 활동 가르치심 죽으심 부활하심 그리고 승천하신 이야기를 모두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성경에는 예수님의 일생에 관한 것을 네 사람이 기록해 주고 있고 그것을 우리는 4복음이라고 말합니다.

한 성경에 복음이 왜 네 개씩 필요할까? 그것은 그 복음이 쓰여 진 목적과 읽어야 할 대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당시의 헬라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 쓰여 진 반면 마태는 유대인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이 복음서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이 복음서의 저자인 마태는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에 관계된 이야기를 자신과 같은 민족인 유대인들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복음서를 쓰면서 그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특별히 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복음을 글로 쓰게 된 이유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탄생의 비밀>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 가지 흥행 요소 중 한 가지 이상은 영화 속에 반드시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애정이 담겨 있는 사랑 스릴 넘치는 서스펜스 그리고 허황되지 않은 역사성이라고 합니다. <三國志> 같은 영화는 언제 만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며 봅니다. 그 안에는 사랑도 없고 또 서스펜스도 없지만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바로 역사성이라는 흥행요소가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넋을 잃고 봤던 <冬のソナタ>에는 서스펜스도 없고 역사성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드라마에는 사랑이라는 흥행요소가 있었습니다.

간혹 대박을 터뜨리는 영화들이 가끔 나오는데 그것은 어렵지만 그 요소들을 한꺼번에 넣으면 그만큼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997년에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예로 들어 본다면 그 영화에는 한 가지도 제대로 넣기 힘든 흥행의 요소 세 가지를 모두 다 넣었습니다. 사랑의 이야기가 있었고 보석을 훔친 범인을 잡는 긴박감이 있었고 그리고 오래 전 대서양에서 침몰 타이타닉호의 탄탄한 역사성이 그 이야기를 뒷받침 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흥행의 3요소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류바람에 의해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연구하는 일본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드라마의 흥행요소가 한국 드라마에는 하나 더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탄생의 비밀>이라고 합니다. 한 개인의 탄생이 뭐 그리 대단한 관심거리가 되겠는가?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탄생의 비밀은 엄격한 신분사회일수록 그리고 엄격한 윤리사회일수록 사람들의 매우 흥미진진한 관심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극에 있어서 주인공이 천민으로 살아가는데 사실은 양반의 자녀였다거나 현대극에 있어서 매우 가난하게 살아가는 어느 사람이 알고 보니 자신이 어느 재벌의 사생아였다는 이야기 어느 남여가 서로 사랑했는데 알고 보니 남매였다는 그런 이야기..... 한국의 드라마에는 그런 요소가 숨어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마지막 부분의 반전을 기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탄생의 비밀이 가져다주는 흥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천박한 탄생의 비밀과는 좀 다른 탄생의 비밀이 마태복음서의 첫 장에 나옵니다. 탄생의 비밀에 대한 관심은 옛날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사회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지배 하에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유대교의 율법 하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마다 귀천이 서로 다른 엄격한 신분사회였습니다. 게다가 사람을 매우 힘들게 하는 율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외형적으로는 엄격한 윤리사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회적 배경 속에 이제 막 십자가를 지고 죽은 한 죄인에 대하여 마태는 지금 그의 출생의 비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여 하나님을 모독 한 죄 예루살렘 성전을 헐어버리면 자기가 다시 세우겠다고 하여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모독한 죄 창녀와 세리 같은 죄인들과 같이 앉아 먹고 마심으로 유대교의 율법을 어긴 죄 그런 죄로 인해 그는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행위 뿐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 없이 처녀가 낳은 아이였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베들레헴이라는 아주 작은 고을에서 마구간에서 태어난 신분 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에서 자랐던 사람 그리고 목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형수.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그 예수에 대하여 지금 마태는 그의 출생의 비밀을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면서 마태는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비밀을 가장 먼저 밝히고 있는데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의 비밀을 말하면서 처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이 매우 놀랄만한 반전의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탄생의 비밀을 증명해 줄 예수님의 족보의 소개에 있어서 그 첫 머리에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름을 기입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누구입니까?

오래 전 미국의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그 공항의 이름이 케네디 공항이라고 하였습니다. 뉴욕을 구경하다가 뉴저지로 넘어가는데 웬 다리를 하나 건넜습니다. 조지 워싱턴 다리라고 하였습니다. 뉴욕의 맨하튼과 뉴저지의 거리에는 크고 멋진 차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링컨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에 가면 많은 건축물과 시설 등에 유명한 이름이 붙여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중 제일 많은 것은 워싱턴이고 또 링컨입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은 1등이 워싱턴 2등이 링컨 3등이 케네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미국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에는 豊臣秀吉 德川家康 가 있고 한국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있습니다. 그렇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마음에 흠모하는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조상들 중 1등은 아브라함이요 2등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그 사람들을 그토록 좋아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을 존경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자신들의 살고 있는 그 이스라엘 땅으로 처음 들어 와 믿음의 자손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첫 조상이 되었기 때문이고 그리고 다윗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을 다스렸던 가장 위대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의 증명은 예수님이 곧 유대인의 정통한 후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왕의 혈통으로 처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는 높은 신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는 어촌이었던 나사렛에서 자라난 천한 목수의 아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다스릴 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반전의 드라마가 어디 있습니까? 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 비윤리적으로 탄생했다고 생각한 사람 하나님을 거역하고 유대교를 모독하여 가장 잔인하게 죽였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왕의 혈통을 이어 받은 다윗의 가문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로서는 이를 밝힘으로 예수가 존귀한 신분이 사람이었음을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치할만한 왕이었음을 밝히려 했던 것입니다. 놀라운 반전이 복음서 첫 장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세상적인 기준에서의 반전입니다. 예수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 예수가 다윗의 혈통을 받았다는 것은 존귀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것 역시 세상의 기준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었던 마태가 그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마태의 표현은 한갓 세상적인 반전을 위한 천박한 탄생의 비밀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마태가 말하려는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을 한 그 본래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것을 하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바로 구약 성경에서 그토록 예언 해 오던 바로 그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바로 그토록 하나님이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그 사람이요 선지자들이 예언해 오던 바로 그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 선지자들의 예언은 메시야가 아브라함의 자손에서 나온다고 하였고 다윗이 집안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그 예언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이 복음서의 첫 부분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을 강력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구약의 예언자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정확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라는 시각에서 마태복음 전체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넓게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좁게는 다윗의 가문에서 메시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예언의 기간은 무려 3천 년 그리고 그것은 유대인들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마태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 즉 메시야임을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 속에서 그냥 막 생겨난 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의 첫 시작점에서부터 계획하신 구세주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에서 구세주가 나온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왕위에 있는 다윗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하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여러분 3천년 동안 수도 없이 성경 전체를 통해 예언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이 이 땅에 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 사람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역할도 예언대로 그대로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풀어주시고 우리에게 나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뿐 아닙니다.

사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렘33:15-16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그의 역할은 우리에 대하여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대신 지는 분이고 우리의 좋은 상담자가 되어 주시며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오직 유일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수 없는 예언의 결과라고 한다면 그의 역할도 예언대로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아픔을 낫게 하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외로움을 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괴로움을 대신 감당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불안함을 평강으로 바꿔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짐을 대신 지시는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의 가정을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버렸고 천하게 생각했고 결국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기만 한다면 그 분은 우리를 평강으로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대강절 첫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대강절을 가치있게 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대강절의 의미가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다가와 생활에 영향을 주는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 주님께서 이루시는 정의와 공평을 보며 내 삶의 모든 곳에서 평강을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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