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HOME SiteMap Contact Us Japanese Korean English Chinese
Information
   

[2006년 6월 18일 주일] 염려를 맡기십시오


염려를 맡기십시오

빌4:4-7



요즘 지구촌에는 월드컵 열기가 한창입니다. 어디를 가나 월드컵 얘기뿐입니다. 며칠 전 택시를 탔는데 운전하시는 분이 제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는 한국이 월드컵 첫 시합에서 이겨 좋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본이 크로아티아를 이기고 브라질과 비기면 더 좋겠다고 말하니까 그 분은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잔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택시에서 내린 뒤 저는 좀 말을 잘못했다 싶었습니다. 크로아티아도 이기고 브라질도 이겼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아예 택시요금을 받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요즘 축구얘기 잘 하면 뭔가 생기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도 축구 얘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기독교축구팀이 중요한 원정경기를 하기위해 기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기차 안에 함께 탄 신문사 기자가 감독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물어봅니다.
「감독님은 이 번 시합의 승리를 위해 기도해 주실 목사님도 함께 모시고 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시겠습니까?」
감독이 대답을 합니다.
「글쎄요. 어떤 목사님을 원하시는지요. 우리는 공격을 위한 목사님과 수비를 위한 목사님 두 분이 있습니다. 어느 쪽을 원하십니까?」

이 얘기는 세계적인 영성가로 유명한 <안소니 드 멜로>의 우화집에 나오는 얘기로 기독교의 신앙에 있어서 두 가지 특징을 보여 주는 우화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삶 성공적인 삶을 살기 원하는데 승리를 위하여 두 가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공격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수비하는 것입니다. 공격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얻고 싶은 것을 얻는 것입니다. 수비라는 것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얻고 싶은 것은 얻어야 하고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은 빼앗기지 않을 때 우리는 승리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늘 평안을 누리며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안할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공격과 수비에서 찾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 같은 불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빼앗길 것 같은 불안 여기에 우리의 불안이 있습니다. <안소나 드 멜로>는 축구이야기를 통해 기독교신앙의 그런 맹점을 지적하려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은 어떠십니까? 여러분들은 항상 평안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그 평안이 여러분들에게 늘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평안하지 못하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마디 말로 정확하게 정리하기는 힘들어도 분명 우리에게도 불안한 마음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의 원인은 <안소니 드 멜로>가 지적한대로 공격과 수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데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원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고 또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들을 한 두 개 씩 빼앗길 때 거기에서 불안의 마음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도 삶에 있어서 평안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거나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데에 그 불안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합니다.

일본인들이 리더십에 있어서 가장 존경한다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 입니다. 그 중 오다 노부나가를 좋아하는 일본인이 꽤 많은데 그에 관한 이야기 중 유명한 일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노부나가 장군이 적군에 비해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군사를 데리고 전쟁을 하려 합니다. 노부나가 장군은 승리를 장담했지만 병사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기에 매우 불안해하였습니다. 전장으로 행하는 길에 신사 앞에서 행군을 멈추게 한 노부나가는 신사에 들어가 전쟁의 승리를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를 마치고 신사에서 나온 노무나가는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지금 동전을 던지겠다. 앞쪽이 나오면 우리가 이길 것이요 뒤쪽이 나오면 우리가 질 것이다. 승패는 오직 신의 뜻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는 동전을 던졌습니다. 모든 군사들은 숨 막히는 마음으로 그 동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전은 땅에 덜어지면서 앞면이 나왔습니다. 조마조마하며 이를 지켜보던 군사들은 떠나갈 듯한 함성을 질렀으며 사기가 오른 군사들은 어렵지 않게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자기들보다 10배가 더 많은 적의 군사를 무찔러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돌아오는 길에 신복인 부하 장수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장군님 하늘의 뜻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나 봅니다」

그 때 노부나가는 부하 장수에게 말없이 그 동전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 동전은 양 면이 다 앞면으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자! 이 때 군사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군사들은 신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고 결국 불안해하지 않으며 잘 싸워 10배 더 많은 군사들을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신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힘이 났던 것입니다. 그들이 믿었던 그 신이 참 신이냐 아니냐는 차치하고라도 무엇인가 신이 함께한다는 확신만 있어도 사람들은 불안해하지 않으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삶에 있어서 불안해하는 요인은 무엇입니까?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해서입니까? 지켜야 할 것들을 많이 잃어버려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표면적인 이유야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근본덕인 이유는 더 깊은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우리의 불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와 그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할 때 그래서 우리는 정성을 다 해 예배를 준비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만나는 이 예배를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예배를 통해 자녀인 우리에게 주실 선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가장 귀하고 필요한 것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평안>입니다. 마아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은 정말 세상에서 사는 동안 이 평안이 제일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평안을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평안을 얻기 위하여 우리도 하나님께 준비하여 드려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정성을 다 해 드리기 위하여 예배에 나올 때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예물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성을 다 해 예물을 준비합니다. 헌금을 준비합니다. 예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예물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물 속에 있는 우리의 마음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물만을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물과 함께 또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모두 종합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① 첫째 감사와 찬송의 마음입니다. 즉 요즘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찬양과 경배의 마음을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하나님을 존경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것과 내 삶을 인도하신다고 하는 그런 믿음과 고백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주님이 되신다고 하는 그 고백을 하나님은 듣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그런 마음을 갖고 나아오십니까?

또 하나 ② 두 번째 요구하시는 것은 예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 우리는 정성을 다 해 하나님께 예물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물을 받으실 때 예물의 많고 적음을 보시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예물 속에 있는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물질로 살지 않겠다는 그 고백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살겠다는 그 고백을 듣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한 마음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그 순결한 마음을 예물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한 가지 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③ 우리의 염려를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올 때 우리의 염려를 갖고 나아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벧전5:6-7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염려는 예배 때에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준비하여 갖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염려는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염려를 받기를 워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염려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하나님께 드린 것은 다시 가져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염려는 예물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준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드리고 난 뒤에 그것을 다시 가지고 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 헌금을 한 뒤에 그 헌금을 다시 찾아 가실 수 있습니까?

서양속담에 절대 할 수 없다는 의미로 「차라리 교회의 헌금을 훔치겠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 못된 짓은 다 할 수 있어도 교회의 헌금을 훔치는 것만큼은 못하겠다는 뜻의 속담입니다. 즉 하나님께 드린 것은 다시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드린 헌금은 다시 가져가지 않으면서도 하나님께 드린 염려는 대부분 다시 다 가져갑니다. 여기에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평안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우리는 여전히 염려하고 여전히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 안 믿는 사람은 그냥 염려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기도하고 염려한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 염려를 드리고 다시 가져가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기인합니다.

빌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러분 모든 시험과 염려는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그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시험을 주고 또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문제를 안고 힘들어하다가 하나님을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해 시험을 주는 것입니다. 욥기에서 그것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모든 시험과 염려가 사단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단은 우리보다 항상 한 수 위이기 때문에 사단이 주는 시험은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우리의 능력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능력도 모르고 사단의 능력도 모르는데서 오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염려를 드리지 않는 것과 또 하나님께 드린 염려를 다시 내가 갖고 가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은 죄이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인정하지 않는 죄이고 나를 만드시고 천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죄입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인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 나아올 때 여러분의 염려를 준비해서 나아오십시오. 정성을 다 해 여러분의 염려를 정리해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리고 헌금과 같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다시는 갖고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섭섭해 하십니다. 하나님으로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으로 여러분의 창조주가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염려를 주께 맡기도 다시 가져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때 여러분들에게 준비하신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그 평강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평강을 다 얻어 기쁨의 생활을 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엔 항상 염려가 있었습니다.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늘 근심과 걱정 속에 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염려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평강을 얻게 하시고
그리하여 승리의 기쁨을 늘 맛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 Total : 248 ] [ 5 / 9 ]
No. Subject File Date Hits
128  [2010년 7월 25일]복음(4): 예수를 믿으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 11-05-11711
127  [2010년 7월18일]복음(3):어떻게 예수를 믿습니까?11-05-11488
126  [2010년 7월 11일] 복음(2):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11-05-11646
125  [2010년 6월20일] 이렇게 하면 은혜를 받습니다.(2)11-05-11623
124  [2007년 11월 4일 주일] 한 문둥병자가 07-11-043697
123  [2007년 10월 21일 주일] 듣고 행하는 자는 07-11-042129
122  [2007년 9월 16일 주일] 구하라, 그리하면 07-09-162555
121  [2007년 8월 26일 주일]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07-08-262386
120  [2007년 8월 19일 주일] 너희는 먼저 07-08-192157
119  [2007년 7월 15일 주일]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07-07-162192
118  [2007년 6월 10일 주일]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07-06-142433
117  [2006년 6월 3일 주일] 눈은 눈으로 07-06-142095
116  [2007년 5월 20일 주일] 3개월과 100년 07-05-201842
115  [2007년 4월 29일 주일] 맹세하지 말찌니 07-04-291648
114  [2007년 4월 8일 주일]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07-04-081733
113  [2007년 2월 18일 주일] 그의 소문이 07-02-181819
112  [2007년 2월 11일 주일] 사망의 땅과 그늘에 07-02-121674
111  [2007년 1월 14일 주일] 메뚜기와 석청 07-01-141846
110  [2007년 1월 7일 주일] 지시하심을 받아 07-01-071467
109  [2006년 12월 3일 주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06-12-071983
108  [2006년 11월 19일 주일]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06-11-191751
107  [2006년 11월 5일 주일] 속건제 책임을 묻는 제사 06-11-051557
106  [2006년 10월 15일 주일] 화목을 위해 필요한 것 06-10-161647
105  [2006년 10월 1일 주일] 성경에서 보아야 할 것 06-10-011592
104  [2006년 9월 3일 주일] 질그릇 다시 보기 06-09-052088
103  [2006년 7월 2일 주일] 사람의 절망 하나님의 희망 06-07-042019
102  [2006년 6월 18일 주일] 염려를 맡기십시오  06-06-191857
101  [2006년 6월 11일 주일] 그러면 우리는 06-06-121672
100  [2006년 6월 4일 주일] 성령이여 강림하사 06-06-051744
99  [2006년 5월 21일 주일] 참된 전도자 06-05-211608
[1][2][3][4][5][6][7][8][9]

  
  

 

 

    ▲TOP  


〒162-0827 東京都新宿区若宮町24 東京教会
24 Wakamiya-cho, Shinjuku-ku, Tokyo, 162-0827, Japan
Tel: 03-3260-8891 Fax: 03-3268-6130    
(C) The Tokyo Korean Christian Church in Japan Ministrie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