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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9일 주일] 난파선의 중심 끈

난파선(難破船)의 중심 끈

행27:9-26


여러분들께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세상이 공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조건을 갖고 태어나는 부분에 있어서는 많은 부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노력하는 대로 얻게 되는 면을 생각한다면 그런대로 공평한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는 시각에 따라서 또 자신의 상황에 따라서 세상은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은 참 공평하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것은 조금 다른 시각인데 우리가 모두 늙는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모두 죽는다는 점에서 저는 이 세상이 공평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은 늙지도 않고 또 죽지도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처럼 억울하고 불공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두세 번쯤 죽거나 아니면 죽지 않는다고 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돈이 많건 적건 간에 지위가 높건 낮건 간에 사람은 모두 나이가 들면 늙게 되어 있고 또 때가 되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상은 참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저는 이 공평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가 비싼 것에 감사하고 금이 비싼 것에 감사하고 고급 브랜드의 상품들이 비싼 것에 감사합니다. 왜냐 하면 그런 것들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에 없어도 되는 물건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인 물과 공기 같은 생명과 직접 연결되는 것들이 값이 비싸다고 한다면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해 보면 이 땅에는 일정한 법칙이 하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과 관계가 있으면 있을수록 값이 싸고 생명과 관계가 없으면 없을수록 값이 비싸다는 것입니다. 또 생명과 관계가 있으면 있을수록 공평하고 생명과 관계가 없을수록 공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세상은 식량과 의약품의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명과 가장 밀접한 식량과 의약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지구 곳곳에 많이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사람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은 분명 사람들이 살아 갈 때 사람들을 사랑하시어 하나님의 법칙을 만들고 나름대로 공평하게 운영을 해 나가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그 가치에 대해서 스스로 속고 있는 부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내가 속고 있다고 하는 것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값이 비싸면 소중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값이 싸면 천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속고 있는 것입니다. 가치라는 것의 기준을 돈의 가치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에 기준을 두고 보면 그것이 틀리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갑자기 어느 날 마실 물과 공기가 없어진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는 진정 본래의 가치를 알게 되고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없어도 되는 물건들에 목숨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값이 비싸니까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모녀 절도범이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어머니와 딸이 백화점의 고급 옷 매장에서 상습적으로 옷을 훔치다가 직원에게 잡힌 것입니다. 그런데 경찰에서 그들이 밝힌 범행 동기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나이가 들면 고급 옷을 입어야 사람대접을 받기 때문에 어머니와 같이 옷을 훔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 보다 옷을 훔쳐가면서까지 남들에게 대접받으며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비싼 옷을 입어야 사람다워지는 것입니까? 고급 옷을 입어야 잘 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럴듯한 말 같지만 틀린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고급 옷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얘기는 우리와 동떨어진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매일 매일 언제든지 일어나는 또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들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이런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3아이가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대입준비를 위해 늘 밤새 공부하며 열심을 다해 공부를 했는데 너무 열심히 공부한 나머지 아이가 그만 쓰러져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자 그 상황에서 그 아이의 부모님들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아이는 죽을병에 걸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생명이 먼저입니다. 어떻게든 아이를 살리기 위해 부모는 학업까지라고 포기해 가며 생명을 얻기 위해 애를 쓸 것입니다.

저는 이와 유사한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목사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딸이 공부를 잘 해 항상 공부에 대한 기대 대학에 대한 기대가 컸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공부를 하던 고 3때의 어느 날 사모님께서 손 수 운전을 하고 학원에 데려다 주러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가 나서 사모님과 딸아이가 심하게 다쳤습니다. 사모님은 후에 회복이 되었는데 고3 딸아이는 뇌를 많이 다쳐서 오래도록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이 많이 기도하며 회복을 빌었는데 회복이 무척이나 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 여러분들이 만약 그런 상황을 당했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딸을 위해 어떻게 기도할 것입니까? 그래도 대학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니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까? 좋은 신랑감을 만나야 팔자가 고쳐진다고 생각해서 좋은 신랑감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살려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가장 귀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평생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생활하다가도 막상 죽을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우리는 생명을 위해서 집도 팔고 돈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경에 처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삶의 진정한 가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과의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이런 소중함의 가치를 평상시에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그것을 평소에는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미련한 사람인 것입니다. 미련하게 살다가는 어려운 곤경에 처해서만이 그 올바를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잠언 9:12에서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말씀하고 있고
잠언 13:14에서는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 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고 지혜롭지 못한 자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그 귀한 깨달음을 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상황은 대략 이렇습니다.

유대교를 반대하며 다녔다는 이유로 체포된 바울은 1차로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바울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로마에 가서 재판은 받아야 한다고 해서 바울을 로마로 압송하는 때의 일입니다. 바울을 데려가는 길에 몇몇 죄인도 함께 로마로 압송하는데 그 일을 황제 부대의 백부장인 율리오 라는 사람이 맡게 됩니다. 소아시아에서 로마로 배를 타고 로마까지 압송하는 과정에서 일기가 고르지 않아 배도 바꿔 타 가면서 죄수를 포함한 276명이 항해를 하는 모습의 얘기입니다. 이 때 미항(아름다운 항구)이라는 중간 기착지에서 바울이 위험을 알리고 겨울을 지내고 출발하자고 권면을 하는데 책임자 율리오가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의 말을 더 들어 출항을 결정하게 되고 그 후 항해를 하자마자 곧 큰 광풍을 만나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오늘 몬문 11절에 보면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보편적인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전문가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바울은 앉아서 공부만 한 사람이고 선장은 평생 바다에서 항해를 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상황에서 누구의 말을 들을 것입니까? 전문가의 말을 따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거기에 나의 모든 것을 걸 때는 분명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경험에 모든 것을 의지하려 합니다. 세상의 지식과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고 생활합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과 가치관을 믿고 당당히 출발한 항해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부터 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며칠 바람 불고 끝이 나는 광풍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 광풍이 14일이 넘도록 계속 되었다고 말합니다(27:27). 14일을 먹지 못했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14일 이상인 것입니다. 14일이 넘는 기간의 광풍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긴 시간입니다. 그 기간 동안 배에 타고 있던 276명 모든 사람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태풍과 싸워 견뎌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 상황이 상상이 가십니까?

이렇게 생명을 잃느냐 얻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에 부닥쳤을 때 사람들은 행동이 달라지 게 되는데 오늘 성경을 보면 두 가지의 형태로 그 달라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먼저 첫째로는 무엇을 갖고 무엇을 포기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사람들은 분명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광풍이 2일째 되던 날 사람들은 배의 짐을 버렸다고 했고 (18절)
광풍이 3일 째 되던 날 배의 기구들을 뜯어 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절) 그리고 14일 째가 되던 날 그들은 결국 식량까지 버리게 된 것입니다. (38절)

무엇을 의미합니까? 생명을 얻기 위해 정말 소중하지 않은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버리는 것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는 생명과 관계없는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또 하나의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책임자였던 율리오라는 사람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주의 말을 들었습니다. 11절에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고 했습니다. 그랬던 율리오가 본문 21-26절에 바울이 말하는 그것을 그대로 믿고 바울을 따르게 됩니다. 여러분 목사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역경이 찾아오면 엄청난 고난이 닥치게 되면 비로소 우리는 그 삶의 가치를 제대로 보게 됩니다.

나의 경험이 나를 살릴 수 없습니다.
나의 지식이 나를 살릴 수 없습니다.
나의 학위가 나를 살릴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를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중한 물건보다 생명이 가장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의 경험이나 지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참 가치관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으로 잡혀가 포로 생활을 할 때 왕의 포도주와 고기를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한 번 만이라도 먹어봤으면 했던 음식이요 한 번 쯤 누려보고 싶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그렇게 소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에게 중요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가 왜 하나님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곧 생명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것을 볼 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자 굴레 던져지는 것도 뜨겁게 타오르는 풀무 불에 던져지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참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유라굴로라는 광풍과 같은 삶의 고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오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참된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이전에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던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게 되면 오히려 더 세상의 가치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사업에 부도를 만나면 제일 먼저 돈을 찾습니다. 돈이 있으면 부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잃으면 돈을 찾으려 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건강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먼저 찾아야 할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돈도 있어야겠지만 그보다 먼저 찾아야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분이 가라는 곳에 가고 그 분이 서라는 곳에 서겠다는 신념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꽤 오래 전 이야기 입니다. 대학을 다닐 때 학교의 학보사 기자노릇을 3년간 했었습니다. 취재도 하고 기사도 쓰고 편집도 했는데 그 일이 참 적성에도 맞고 또 즐겁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1983년에 탄광촌의 르뽀 기사를 쓰기 위해 동료 기자들과 강원도 황지(태백시)에 가서 한 주간 머물면서 같이 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탄광이라는 곳을 처음 들어가 봤는데 지하 1600m까지 들어갔었습니다. 맨 끝에 소위 <막장/のぼり>이라는 곳이 있는데 각 막장에는 3명이 한 조가 되어 탄을 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막장에서 일 하는 사람들이 허리에 끈을 하나씩 매고 그 끈은 막장 바깥에 까지 연결되어 있었는데 조금은 불편해 보였습니다. 왜 이렇게 끈을 묶고 일을 하는가 물어 봤더니 막장은 자주 무너지는 곳이라 이렇게 끈을 묶지 않으면 무너졌을 때 구조하기가 어렵다고 말 하면서 죽지 않으려고 묶는 것이라 설명해 주었습니다.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그 끈 그러나 막장이 무너졌을 때는 바로 생명의 끈이었던 것입니다.


난파선 같이 죽음이 코앞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이라도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중심 끈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끈을 잘 잡아야 합니다. 그 끈을 잡을 때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 끈이 무엇입니까? 그 끈은 곧 하나님입니다. 그것을 잡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잡으려고 하면 배는 좌초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라굴로 광풍과 같이 삶의 극심한 고난의 광풍을 만날 때 꼭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지키시고 가장 소중한 생명의 길로 우리를 안내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삶의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삶의 괴로운 역경에 부닥칠 때
하나님 우리가 세상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그 능력의 손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그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끈을 붙드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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