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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월 5월 22일 주일] 제일 좋은 은사를 사모하며


제일 좋은 은사를 사모하며

고전12:29-13:3



여러분들이 많이 기도해 주신 덕분에 저는 지난 주 神戶東部敎會에서 부흥집회를 하며 참으로 귀한 주일을 보냈습니다. 함께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그 교회 교인들과 함께 좋은 말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나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셔서 많은 감동의 집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없었던 지난주는 마침 성령 강림 주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 주가 지나기는 하였지만 설영의 은사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날에 있어서는 성령강림주일을 기념하는 것이 많이 형식적인 것으로 변화되기는 하였지만 성령이 우리에게 신령한 능력으로 임하기를 바라는 것 보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를 먼저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한국의 서울에서 살았을 때 저는 약 1000세대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파트의 꼭대기 층인 26층에서 살았었는데 하루는 옆 동 14층에서 살고 있는 주부가 14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경찰이 투신자살이라고 결론을 내긴 하였지만 그 후에도 그 사건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의 정황이 좀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심하게 싸움을 하고는 남편이 다른 방으로 들어간 후 아내가 투신을 하였다고 남편은 주장하였지만 그 날 그 집에는 두 사람 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증언해 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엉뚱하게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에 정말 남편이 심하게 말다툼을 하고 난 뒤에 다른 방으로 들어갔을 때 아내가 투신자살을 했는데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대며 남편이 밀어서 아내를 떨어뜨렸다고 결론을 지었다면 남편은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남편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세상 사람들이 남편이 아내를 죽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들의 얘기라 한다면 이것처럼 답답하고 끔찍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실제로 그런 일이 이 땅에서는 종종 벌어지고 있습니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 Fried Green Tomatoes>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여성의 삶과 우정 그리고 가정의 소중함을 그린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제시카 텐디(Jessica Tandy)와 케시 베이츠(Kathy Bates)가 열연을 한 작품인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그런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1930년대 미국 남부지방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쓴 소설을 1990년 존 에브넷(John Avnet)감독이 영화화 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나이가 많은 여주인공들이 옛날이야기를 회상 하면서 줄거리를 풀어나가는 그런 영화입니다. 회상 속에 「잇지」라는 주인공이 나오게 되는데 그가 살인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서게 됩니다. 사실은 살인을 하지 않았는데 모든 정황이 그가 살인을 한 것처럼 되어 버렸고 그의 결백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법정에서 그녀는 이제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판결이 나면 그녀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감옥에서 생활해야 하는 불행한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그 지역의 목사님이 법정에서 그녀를 위한 결정적인 증언을 해 줍니다. 사건 당일 그녀는 교회의 부흥회에 참석했기 때문에 사건과는 관계가 없다고 목사님은 증언을 하였던 것입니다.

목사님의 그 증언 한마디로 모든 일이 극적 반전을 이루게 되었고 재판은 그것으로 종료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증언을 모두가 믿어 배심원도 판사도 이의를 묻지 않고 그녀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증언으로 그녀는 무죄의 판결을 받았는데 정작 제일 놀란 것은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 날 교회의 부흥회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그녀의 결백을 믿고는 거짓 증언을 해 주신 것입니다. 결국 목사님의 거짓 증언으로 인해 한 여인이 살아난 셈입니다.

자 이쯤 되면 생각이 좀 복잡해집니다. 단순한 사람들은 목사가 그렇게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것이냐 생각하면서 목사의 거짓말에 의문을 가질지 모르겠으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목사의 어려운 결단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상황윤리를 말하지 않더라도 확신을 갖고 행동을 하는 한 신앙인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삶입니다. 신앙은 일요일에만 나타나는 시간제 변화가 아닙니다. 물건도 아니고 우리 몸에 걸치는 액세서리도 아니고 취미생활도 여가생활도 물론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매일매일 삶으로 나타나는 생활양식인 것입니다. 이 생활 속에서 예수를 믿는 자들로서의 선택과 행동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그 것 때문에 고민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신앙 때문에 여러분들의 선택이나 행동에 있어서 혹 갈등이나 고민이 있었다면 그 선택과 행동의 기준이 있는 것입니까? 좋은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지만 무엇이 좋은 신앙생활인지 어떤 생활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인지 여러분들은 그 기준을 갖고 계십니까?

신앙 인플레이션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지나치게 해석하여 본래의 그 의도가 변질된 것이나 모습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배우면서 특히 복음서를 대할 때 바리새인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도 그렇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신앙이 율법적이고 행위위주의 신앙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왜 잘못된 신앙을 갖고 있는지 여러분들은 전문적으로 설명하실 수가 있으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말씀)을 지나치게 문자적 인간적으로 해석하여 말씀의 본래의 순수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지나쳐서 본래의 뜻이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앙 인플레이션이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경우인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 말씀을 가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을 켜서는 안 된다 옷고름을 매느니 푸느니 지팡이를 드느니 마느니 물건을 사느니 마느니 공부를 하느니 마느니..... 이런 이스라엘 사람들의 율법적 신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나타나는데 이러한 신앙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 율법에 얽매여 힘들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 인플레이션의 예는 바리세인들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창세기 때부터 나옵니다.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하시면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의 유혹을 받았던 하와의 말을 들어보면

창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고 이해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 인플레이션 현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이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앙의 인플레이션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왜 나쁜 것일까요?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이 부인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활의 작은 것 까지 자세하게 나타내 주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들이 다시 설명을 해야 한다고 바리새인들은 주장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생활의 세심한 것 까지는 해결 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은 부분은 성경을 많이 아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정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술 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씀의 작은 부분을 다시 해석하면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법에 얽매여 하나님이 주시는 참 자유를 놓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시기 위해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말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율법에서 해방시키시기 위해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시 그 율법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입니다.

졸든 말든 주일에는 예배당에는 나아가 앉아 있어야 하고 기쁨이 없는 억지로 드리는 헌금생활을 하면서도 복 받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벌써 행위에 얽매여 있는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는 이 신앙의 인플레이션은 반드시 자신의 교만함을 부추기게 되고 남을 정죄하는 것으로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율법을 지킨 것으로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여기고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그런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세인들은 길모퉁이와 성전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하루 세 번씩 기도하고 일주일에 하루 금식하고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하루에 세 번 기도하면서 기도를 하지 않는 세리 같은 사람들을 정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저는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는 장로님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나오시는 어느 권사님이 야단을 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회를 이끌어 가야 할 장로님의 신앙이 형편없다고 말을 하면서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 권사님에게는 새벽기도의 출석이 신앙의 척도요 새벽기도 참석이 큰 권세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가고 성령을 따라 생활하려고 하는 모든 행위를 기독교에서는 영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영성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때 가장 잘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면 그 받은 은사대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신앙의 인플레이션으로 생각하는 영성의 부분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신령한 은사가 최고의 영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방언이나 병 고침의 은사들이 신앙이 좋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은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전도와 봉사에 열심을 내는 것이 좋은 신앙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전도와 봉사에 힘을 쓰는 것이 신앙인의 바른 자세이고 가장 힘 써야 할 덕목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의 신령한 은사를 받는 것과 전도에 열정을 갖고 있는 것들이 가장 좋은 신앙이라고 생각하고 그와 같은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면 신앙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모해야 할 가장 좋은 은사 가장 큰 은사는 신령한 능력도 아니요 전도에 바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큰 은사는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모든 비밀을 말할지라도 봉사하고 희생할지라도 그것이 사랑의 마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신령한 은사는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탄의 도구가 될 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전도와 선교는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일 좋은 영성으로 바로 사랑을 꼽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켰느냐 지키지 못했느냐 따지기 전에 전도를 했느냐 못했느냐 따지기 전에 봉사를 했느냐 못했느냐 따지기 전에 방언을 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 따지기 전에 우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은사가 제일 큰 것입니다. 그래서 갈5:22에서도 9가지 성령의 열매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0세기가 다 간 후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성령의 사람을 세계의 신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뽑을 때 마르틴 루터 킹 목사와 마더 테레사 수녀를 뽑았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사랑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사랑을 실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들은 성령의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성령 강림주일을 보내는 요즘 저는 개인적으로 동경교회의 위임을 받은 지 1년을 맞아하고 있습니다. 담임목회를 한 지 1년 그동안 성도님들의 큰 사랑을 받아 꿈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말씀이 좋지 않아도 여러분들은 은혜를 받으며 말씀을 들었고 제게 많은 실수가 있었음에도 다 이해하고 용납했던 꿈같은 기간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허니문 기간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면서 이 허니문 기간이 끝이 나고 있습니다. 허니문 기간이 끝이 나면 시작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부싸움입니다. 다시 말해 부부싸움이 시작되면 허니문 기간이 끝이 난 것을 의미합니다.

위임 받은 지 1년이 지나면서 교회의 각 부분에서 갈등의 소리들이 들립니다. 불만의 소리들이 나타납니다. 나와 신앙이 다르다고 나와 관심 분야가 다르다고 나와 봉사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나와 성령의 은사가 다르다고 말들이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일본 땅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세우신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갖고 세우신 교회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신앙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가장 큰 성령의 은사를 간직하여 그것을 생활 속에 나타내 보여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첫째도 사랑이요 둘째도 사랑이요 셋째도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삶들은 남을 비판하기 이전에 나의 사랑 없음을 인해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남을 정죄하기 이전에 남을 평가하는 나의 잣대를 사랑으로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가장 큰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을 보내면서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큰 성령의 은사를 받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동경교회 교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위치에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령의 사람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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