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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1일 주일] 무엇으로 보답할꼬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116:1-14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감사의 조건이 줄어들어 젊어서 비해 감사의 마음이 많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큰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정서적인 문제이고 또 하나는 생리적인 문제입니다. 먼저 정서적인 것을 예로 든다면 사람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경험들 중 기쁘고 감사한 일들 보다는 슬프고 힘들고 괴로웠던 일들이 상대적으로 오래 남습니다. 때문에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살면 살수록 괴로웠던 기억이 많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자식을 잃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는 남은여생을 몹시 괴롭게 지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잃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 땅에 태어나기도 했었습니다. 이 땅에 그 아이가 나올 때 즉 그 아이를 얻을 때 그 기쁨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보다 그 아이를 잃은 기쁨이 더 큰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고 할 때 그는 남은 생을 참으로 괴롭고 힘들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망했다고 하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말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올라갔다는 의미입니다. 그 자리에 가기까지 조금씩 번성할 때 얻은 기쁨이 있었고 자리가 올라갈 때마다 누렸던 행복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 잊어버리고 슬픔만이 남아 괴롭게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상처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많이 괴롭습니다.

또 하나는 생리적인 문제로 나이를 먹으면서 객관적으로 봐도 감사의 조건들이 많이 사라집니다. 우선 나의 몸이 많이 바뀝니다. 40이 넘으면 눈이 침침해집니다. 갑자기 글씨가 보이지 않습니다. 노안이 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갑자기 찾아 온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눈의 노화는 7세 때부터 나타납니다.

또 40세를 지나면 부쩍 <어느 식당이 맛이 있다> 고 말하면서 맛있는 식당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것도 미각의 노화현상입니다. 미각의 절정은 13세인데 여러분 그 때를 기억하십니까? 밥에 간장을 쳐도 세 그릇씩이나 먹었고 총각김치 하나로 양푼에 밥을 먹었던 그 시절입니다. 이제는 그 맛을 찾을 수 없습니다. 혀의 감각이 퇴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옛 맛이 나오질 않습니다. 애꿎은 며느리를 욕합니다. 음식이 싱겁다느니 밥이 질다느니......

여성에게 있어서 가장 마음이 상하는 것은 피부를 볼 때입니다. 피부의 탄력은 20세경에 가장 강하다가 30세 부터는 노화가 가속됩니다. 여성에게 거울은 친구이기도 하지만 적이기도 합니다.

남성에게는 체력저하가 두드러집니다. 전철을 타기 위해 역에 들어갔을 때 맞은 편 프랫폼에서 차가 들오는 신호가 나면 40세에는 띕니다. 넉넉히 차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45세가 되면 간신히 잡아타지만 두 세 정거장까지 심장이 뛰는 것이 그치질 않습니다. 50세가 되면 아예 뛰는 것을 포기하고 다음기차를 탑니다.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집니다. 몸의 변화를 느낍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의 조건과 생활의 조건 모두 나이를 먹으면서 바뀌게 됩니다. 위의 말들은 일본의 유명한 노인학(老人學)의 권위자인 미즈(水野)노 교수의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감사의 조건들을 많이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의 조건을 그대로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감사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그 나이에 따라 감사의 조건이 바뀌고 있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미즈노 교수의 말처럼 감사의 조건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고 아픈 기억만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감사의 조건이 많이 남아 있고 아니 어쩌면 나이를 먹을수록 감사의 조건이 더욱 많아지는지도 모릅니다.



여기 나이와 관계없이 감사의 조건을 많이 갖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시편116편은 치명적인 위기로부터 구원을 받은 한 성도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그의 감사와 사랑을 노래한 아름다운 감사의 시(詩)로서 그가 누구인지 또 그가 직면한 위기가 어떤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경험했던 위험한 상황이 매우 컸다는 사실을 본문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3절)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란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8절)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10절)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이 시인은 이러한 큰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향한 감사의 마음이 지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절)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심으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7절)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12절)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온실 속의 화초처럼 외부로부터의 자극이나 시련을 전혀 모르고 일생을 평온하게 사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살아가는 것을 성도의 특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 시편 116편을 쓴 시인은 성도의 축복이나 특혜를 전혀 입지 못한 사람이거나 어쩌면 그 성도의 대열에서 제외된 사람처럼 보일 것입니다.
죽을 병 인지 박해인지 아니면 재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인은 극심한 고난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인이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결코 불신앙적인 말을 내뱉지 않고 사망의 줄이 그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그를 덮치는 상황에서도 주께 굳게 의지하며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응답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신앙을 지닌 모범적인 성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감사주일입니다.
오늘은 「 ~을 감사하자」 「 ~도 감사하자」 라는 설교는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런 것은 우리에게 기본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임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포인트는 「우리가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의 표현은 진정 무엇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한국은 5월 8일 <어버이 날> 에 자녀들이 부모님께 선물을 하나씩 드립니다. 자녀들이 제일 많이 준비하는 선물은 건강식품과 건강 보조기구랍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제일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은 옷과 돈이라고 합니다. 선물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받고 싶어 하는지 알아야 좋은 선물 기쁜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선물을 좋아하실까?
하나님은 자녀들의 어떤 표현을 더 좋아하실까?

어떤 나리에 임금님이 평소에 돼지를 몹시 좋아했다고 합니다.
돼지를 목욕시키고 좋은 음식을 먹이고 궁궐의 뜰에 풀어 놓고는 길렀는데
돼지는 여전히 지저분한 곳으로 가서 지저분하게 생활했습니다.
그것을 본 임금이 말합니다.
「누가 이 돼지를 데려다가 양처럼 길들여 놓으면 상금을 주겠다.」
한 지혜로운 신하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해 보겠습니다. 한 달간 훈련을 할 시간을 주십시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임금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훈련시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지혜로운 신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양의 심장을 떼어다가 돼지의 심장과 바꾸어 놓았습니다.」
탈무드에서 나오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내면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되지 않는다는 교훈입니다.

한국의 청년들과 교회에서 많이 부르고 있는 복음성가 중에 <부흥>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고형원 전도사님이 만든 찬양인데 그 가사가 참 좋습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우릴 부르시는 하나님
주의 심장 가지고 우리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처음에 이 찬양을 접할 때 좀 섬뜩한 기분이 있었습니다. 「주의 심장 가지고」 라는 부분이 너무 적나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꾸 그 찬양을 부를수록 그 부분이 참 좋습니다. 주님의 피가 우리 안에 흘러야 우리가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진전 우리의 마음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행위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아름다운 사람의 보습을 보여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먼저 그 마음이 변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게 해 드리고 싶습니까?
먼저 우리의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의 가치관이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감사의 표현을 기쁘게 받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가 가장 기뻐하는 것은 자녀들이 부모의 뜻에 맞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자녀 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선물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2절)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면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9절) 내가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감사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요 하나님은 그를 기쁘게 받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헌금을 많이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려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을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말의 감사라는 단어는 동사로 「야다」(הדי)입니다. 이 말은 「경배하다」 「예배하다」는 뜻이며 「찬양하다」의 뜻입니다.
명사로는 「토다」(הדות)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숭배」 「경배자의 합창」이라는 뜻입니다. 무얼 말합니까?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의미는 단순히 감사의 표시인 사의(謝儀)가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려 한다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주께 나아와 예배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다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살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바라시는 예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순종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15:2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참된 예배요 참된 감사의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두 길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내 뜻을 따라 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길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되는 것이며 그 삶을 살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에 보답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감사주일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감사의 헌금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감사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요 그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입니다.
이 감사가 감사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감사의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의 또 새로운 축복의 시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후 기도>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합니까?
감사절을 맞이해 감사의 조건을 찾기보다
감사의 방법을 찾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감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인 것을 깨닫사오니
그 마음 우리의 마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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