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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2일 주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리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리라

행3:1-10




저는 올 해 들어 지난봄부터 교우들의 집을 심방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우들의 가정을 다 돌아보는 것은 시간적으로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번은 다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심방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중순에 시작한 심방은 아직 반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올 가을까지는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교인들 개개인의 가정을 방문한다는 것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자칫 실례가 될 수도 있고 또 불편을 드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우리 기독교에서는 매우 특별한 유익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는 교우들의 집을 심방하게 되고 저도 그 심방이 주는 유익으로 인해 새롭게 교인들에게 다다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번 심방을 통해서도 막연하게 알았던 교인들을 더욱 새롭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심방을 하면서 제가 새롭게 느끼는 것은 우리교인들이 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다들 편안해 보이고 아무 근심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막상 가정을 방문하고 기도의 제목을 나누다 보니 우리 교우들 중 많은 분들이 참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로서 동경교회 교인들에 대하여 더 마음이 무거워지고 더 책임감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심방을 하면서 내내 어려운 가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저를 위한 기도도 하지만 어려운 가정을 생각하고는 기도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오늘 이 설교도 우리 교인들 중 그런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언제나 문제가 있기 마련이고 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오히려 문제가 없는 것은 비정상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역설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문제가 있을 때보다는 문제가 없을 때 더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을 있을 만큼 우리는 문제의 연속선상에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은 우리가 아주 몰락해 버릴 만큼 위험이 있는 것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가 널려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풀어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부러 고난과 위협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고난과 위험을 당하지 않기 위해 힘들게 애를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짧은 삶을 돌이켜 보아도 저에게는 많은 위기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참으로 많은 죽음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 때마다 죽었으면 아마 수십 번도 더 죽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저는 네 살 때 동전을 삼켰다가 기도가 막힌 일이 있었습니다. 거반 질식해서 죽을 뻔하였는데 저를 엎고 병원으로 뛰는 어머니의 뒤에서 할머니는 제 등을 계속 때리며 좇아가셨고 그렇게 정신없이 병원 근방에 다 달았을 때 그 때 동전이 목구멍에서 나왔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을 것입니다.

다섯 살 때는 말로만 듣던 유괴를 당했습니다. 옛날의 유괴방법은 좀 촌스러워서 두 남자가 자루에다가 저를 넣고 데려가는데 제가 경찰서 근방에서 울었습니다. 그 때 범인들이 자루를 놓고 도망하였습니다. 그 때 울지 않았으면 저는 아마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섯 살 때에는 동네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저희 집은 서울 龍山의 厚岩洞이었는데 집 근방에 미군부대가 있었습니다. 그 미군부대의 큰 버스 앞 범퍼에 머리를 부딪쳐 나가 떨어졌고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모두들 제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합니다. 미군들이 제 신원을 몰라 미군부대로 우송하려고 하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알아보고 근방의 병원으로 이송하여 치료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유로 그 사고의 전 기억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의 기억은 정말로 병원에 누워있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전에 동전을 삼킨 일도 유괴를 당한 일도 후에 얘기를 듣고 알게 된 사건들입니다.

일곱 살 때는 남대문시장에 있는 아버지 가게에 가려다가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놓쳐 서울의 변두리에서부터 길을 잃고 헤맨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경찰에 신고를 하여 겨우 저를 찾았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태몽을 얘기해 주시곤 하였습니다. 저희 집은 남산 바로 밑에 있었는데 남산에서 흰 구렁이가 집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머리는 집에 있는데 꼬리는 남산 꼭대기에 있었다고 하면서 분명 너는 명이 길 것이라 하였습니다.

태몽 때문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이렇듯 저는 전쟁을 치르지도 않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죽을 뻔한 일들은 많이 있기는 있었지만 그것이 그렇게 괴롭거나 견디기 힘든 일들은 아니었습니다. 정작 제가 힘들어 하고 마음 아파야 했던 일들은 그 후에 더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 성장하고 난 후에도 꽤 많은 좌절과 아픔을 느껴야 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아픔 자신에 대하여 느끼는 초라함 또 그것에서 파생되는 무기력은 참으로 제게는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한 철이 들면서 겪어야 했던 내적인 갈등과 인간관계 속에서 느껴야 했던 고통들은 참으로 죽음보다 힘들고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가족들과 겪는 아픔들 경제적인 어려움들 목회의 현장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들은 다시 생각하기 싫으리만큼 심각했던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신문의 사회면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 이해합니다. 사람이 정말로 힘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어찌 저만의 일이겠습니까? 여러분들에게도 있지 않습니까? 또 여러분들 중에는 지금 저와 같은 아픔을 겪었던 분들도 계시지 않습니까? 가정의 문제 때문에 점점 어려워지는 사업 때문에 자녀들의 장래의 문제 때문에 풀리지 않는 부부의 문제로 그리고 직장의 문제 인간관계의 갈등 등으로 살맛을 느끼지 못하고 무겁고 답답한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우리 중에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고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와 같은 문제없이 오늘 이 자리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하면서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모든 문제는 결국 해결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크고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문제는 결국 해결됩니다.

모든 부러진 뼈와 찢어진 살은 창조의 법칙에 의해 다시 붙습니다. 저는 그것이 그렇게 신기합니다. 모든 상처가 아물어서 원상복귀 되듯이 우리의 상처가 아물어서 원래대로 회복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법칙입니다. 그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아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체의 병과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병과 상처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안에서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리고 지난 날 하나님 안에서 그렇게 문제는 다 해결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아주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저는 과거의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을 기억하곤 합니다. 과거에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다 해결이 된 문제들이었습니다. 그 문제가 해결 되었기에 오늘 새로운 문제 때문에 어려워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때 그렇게 힘든 일도 해결되었으니
결국 이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그 고난을 이길 힘이 생기곤 하였고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용기가 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골은 <절망>을 가리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문제 때문에 죽고 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절망 때문에 죽고 망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해결이 되고 만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진 사람은 문제 때문에 망하거나 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문제는 결국 하나님 안에서 해결된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문제는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보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을 만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애를 써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자주 부르는 찬송은 434장 찬송입니다.

1. 나의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 하시니
내주안에 있는긍휼 어찌의심 하리요
믿음으로 사는자는 하늘위로 받겠네
무슨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무슨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2. 나의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 하시니
어려운일 당한때도 족한은혜 주시네
나는심히 고단하고 영혼매우 갈하나
나의앞에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
나의앞의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밤새 찬양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놀랍고 뜨거운 은혜가 마음에 차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에스겔에 있는 생명의 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와 발목에 차고 무릎에 차고 허리에 차서 내 마음의 큰 강이 되어 헤엄을 칠 만큼 되었을 때 저는 참으로 은혜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 때 제가 만일 몸에 병이 있었다면 그 병도 분명 나았을 것입니다. 다른 문제가 있었다면 그 문제도 해결이 되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였다면 분명 그것도 해결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성경의 본문에 나와 있는 이 사건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쳤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베드로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에서만 나타난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일어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 지치고 쓰러질 때 그리하여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만 같은 앉은뱅이의 상태가 되었을 때라도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기억만이라도 한다면 우리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고 싶어 하고 또 예수를 믿는 이유는 금과 은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리고 금과 은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앉은뱅이의 상태에서 일어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금과 은이 있으면 누구나 다 일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금과 은은 우리에게 한정적인 것만을 줄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찾는 이유는 보다 근본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 얻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은과 금을 주시는 것 보다는 예수의 이름을 주시는 것을 더욱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말라기 4:2 / 일본성경은 말라기3:20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저는 치료하는 광선을 나름대로 <은혜 받았을 때의 뜨거움>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은 많이 있겠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아 가슴이 뜨거워져 정말 눈물과 콧물이 쏟아질 때 그 뜨거움이 곧 치료의 광선이 됩니다. 그 때 그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면 여러분의 병도 나을 것이요 마음의 상처도 씻음 받을 것이요 얽혔던 삶의 모든 문제도 해결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예수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제일 쉽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와 주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약 열왕기 상에 보면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상세하게 나옵니다.

열왕기상 8:33-39 (1부는 36절까지만)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안정하고 이 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만일 저희가 주께 범죄함을 인하여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곳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옵시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온역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열왕기상 9:3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



저는 무능한 사람입니다. 특별한 능력이 없는 아주 평범한 한 목회자에 불구합니다. 그러기에 제가 여러분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 교우들의 아픔을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저는 그것을 해결해 줄 아무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십니다. 저는 여기에 계신 대부분의 여러분들보다 인생의 경험이 적습니다. 아는 것도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삶을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주님 우리 교인들이 삶이 답답하고 괴롭고 억울해서 죽고 싶어 할 때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고 이 동경교회의 성전에 올라 예배하며 기도한다면 하나님 그 시간에 우리 교우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다 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는 동경 飯橋驛 앞에 있는 아주 작은 교회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눈과 귀와 마음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 성전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눈과 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길이 모두 막혀 눈물과 한숨만 나올 때는 이 성전에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앉은뱅이는 평생 성전의 문 앞에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예수님을 만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평생을 교회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성전의 문 앞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와 같은 상태로 교회를 다니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능력을 힘입지 못하고 평생을 앉은뱅이와 같이 지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평생을 앉은뱅이와 같이 주저앉지 마시고 예수의 이름을 붙들고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인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는 예수의 이름으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엔 언제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모든 문제는 반드시 해결됩니다. 문제를 대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방법이요 또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소극적인 방법은 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간만 지나면 어떻게든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은혜 충만한 신앙생활과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냥 건성으로 성전의 뜰만 밟으면서 교회생활을 하지 마시고 은혜 충만한 신앙생활을 욕심내어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여러분들에게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하나님과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새 삶을 사는 동경교회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우리의 아픔과 상처 중에 계시는 주님
우리가 주를 의지합니다.
세상의 은과 금을 좇아 문제를 풀려하지 않게 하시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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