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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4일 주일] 십일조와 주일성수

십일조와 주일성수

신명기 14:22-29



여러분들은 혹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대화가 전혀 되지 않은 사람과 말하는 것처럼 그것처럼 속이 답답할 때는 없습니다. 전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의 말 할 기회는 주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만 늘어놓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과는 오래 함께 앉아 있어도 전혀 대화가 되질 않습니다. 기분도 나쁘고 답답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답답한 것은 내 말을 잘 듣는 것 같은데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얘기해도 나의 마음이 올바로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열심히 얘기 했고 상대방은 잘 들은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엉뚱한 말들을 합니다. 속된 말로 정말 미칠 노릇입니다.

한반도에서 남북한의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면서 그동안 폐쇄적이었던 서로의 문화 속에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겨납니다. 금강산을 여행하는 젊은 남자들이 북쪽의 예쁜 안내원 아가씨들에게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안내원들의 대답은 「일 없습네다」 였습니다. 거절한다고 생각해서 사진을 찍지 못하고 그냥 갔는데 나중에 안내원들이 항의를 하더랍니다. 실없는 사람들이라고. 무슨 영문인가 했더니 북한에서의 「일 없습네다」라는 말은 다른 일이 없으니 지금 좋다는 의미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에게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도 말해 주셨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기초로 해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법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모아 놓은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열심히 듣고 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읽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예로 든다면 바로 십일조와 주일성수입니다.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주의 자녀들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지키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정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그 정신의 표출이 바로 십일조와 주일성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 정신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십일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십일조를 축복의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십일조를 정직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득의 열의 하나를 정직하게 바치면 하나님께서 훨씬 더 많은 소득을 보장하신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십일조에 대해 이렇게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정직하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헌금을 한 그 액수보다 결국 더 많은 것을 얻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일조의 액수가 아까워서 하나님께 드리지 않거나 속여서 드릴 경우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물질적으로도 불이익을 당하게 하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그런 십일조의 정신에 대해 말라기의 말씀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3:8-10
⑧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⑨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 느니라
⑩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십일조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 두 가지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정직한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는 정직한 십일조를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는 개념입니다. 십일조를 온전히 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을 말합니다. 정리해 보면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사람들이고 십일조를 정직하게 잘 하면 하나님께서 주체할 수 없는 물질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많은 교회와 사람들이 성경의 이 말라기 본문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실 하나를 노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라기는 부패한 성전과 제사장들을 향해 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즉 일반 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이라기보다는 부패한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교인들이 바친 헌금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그 목회자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엉뚱하게도 일반교인들에게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보면 이 말라기의 말씀은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외됩니다. 올바른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성경의 말씀은 레27:30-33 민18:21-32 신12:5-18 신14:22-29 이렇게 네 곳을 말합니다. 말라기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십일조를 말해주는 본문들의 말씀을 기초로 해서 십일조에 대한 정신을 생가해 봅니다.

오늘날 우리는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의 일본에서 그것도 일본의 한 복판인 수도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월급을 받던지 돈을 벌어 그 번 돈으로 생활합니다. 그 소득의 열의 하나 즉 십일조는 그 소득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렇게 만만한 액수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액수를 정직하게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여러분들에게 정직한 십일조를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십일조의 액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여러분들에게 채워주신다고 설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설교를 들으면 교인들은 마음의 위로를 참 많이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양심으로 저는 그런 설교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바른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의 바른 가르침은 십일조를 내면 손해 본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열의 하나를 떼는데 그것이 왜 열의 열 보다 더 많을 수 있겠습니까? 십일조를 떼면 그만큼 남는 부분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너희가 금전적으로 손해를 봐도 나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라 할 수 있는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관 즉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고 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불이익도 당하게 되고 손해도 보게 되는데 너희는 나를 위해 그 어려움을 감수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내면 더 많은 것을 주신다. 절대로 손해 보지 않게 해 주신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나머지 열의 아홉도 거두어 가신다.」
여러분 그런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이 줄어들어도 십일조를 정직하게 하기에 하나님께서 기특하여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십일조를 내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돈에 모든 것을 걸고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 살겠다는 우리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돈에 내 인생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은 열의 아홉을 의지하지도 않고 열의 아홉까지도 하나님의 소유요 그것까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강한 믿음을 갖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신앙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아무런 고민이나 갈등 없이 십일조를 내고 있지만 저도 믿음이 약했을 때에는 십일조에 대한 많은 갈등을 했었습니다. 열의 하나를 떼어 놓고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돈이면 식구들하고 좋은 식당에 가서 근사한 외식도 할 수 있고 식구들에게 좋은 옷도 한 벌 사다 줄 수도 있고 가까운 곳 여행도 한 번 갈 수 있고 갖고 싶은 것 하나씩 구입할 수가 있습니다. 또 저축을 하면 마음이 든든하고 어려울 때 그 돈을 유용하게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열의 하나를 우리가 임의로 쓴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좀 더 재미있고 편안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의 정신은 우리가 그런 것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고 우리가족을 든든하게 보호해 주는 것은 돈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십일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사에서 주는 월급을 받든지 장사를 해서 돈을 벌든지 해서 그 돈으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그 회사를 흥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사를 해서 그 번 돈으로 살아가지만 경제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분 우리가 장사할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나가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득의 열의 하나가 비록 커 보이더라도 우리의 신앙과는 바꿀 수 없는 참으로 작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득의 열의 하나뿐 아니라 소득 전체를 놓고도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놓고도 그것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일조의 참 정신이 것입니다. 나는 돈으로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떼는 훈련이 되면 물질을 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십일조의 정신과 주일성수의 정신은 같은 것입니다. 주일성수라는 것은 일주일 중 하루를 구별하여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로마시대의 초대교회부터 일요일을 주의 날로 정하고(321년 콘스탄틴 황제 때) 이 날을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주께 하루를 드린다는 개념은 주께 나아와 예배한다는 것과 그 날을 하나님을 생각하며 세상의 일을 끊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직장을 쉬고 사업을 쉬며 교회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또 지나치게 율법주의의 경향으로 흐르는 신앙인들은 주일성수에 대하여 율법주의적인 적용을 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올바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신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어려서 교회를 다닐 때 주일에 물건을 사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돈을 주고받는 것 물건을 사거나 물건을 파는 장사를 하는 행위는 주일을 범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이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주일에 교회를 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한 번 은 그 문제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그것은 내가 안락하고 쾌락을 즐기고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면 된다는 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 답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은 주일에 물건을 사면 안 되니까 교회 선생님께서 반 이이들인 우리들에게 자장면을 사 주시고는 중국집 주인에게 다음 날 자장면 값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돈이 있었습니다. 주일에 물건을 사서는 안 되는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신 것입니다. 무엇을 위한 율법인지 모르겠습니다.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정신이 없는 것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주일 성수에 대해서는 이런 설교를 많이 들어 왔습니다. 장사를 할 때 주일에 문을 닫으면 월요일에 이틀 치를 팔게 해 주셔서 손해를 보기는커녕 더 많이 돈을 벌게 해 주신다는 내용의 말씀들입니다. 똑같지는 않다 하더라도 비슷한 내용의 말씀을 많이 들어왔고 그 때마다 그렇게 살았더니 부자가 되었다는 잡사님 장로님들의 소개를 곁들이는 것도 빼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일 성수의 정신은 주일에 돈 버는 것을 쉬면 하나님께서 월요일에 더 많이 벌게 해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을 철저히 쉬면 나머지 6일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게 해 주신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주일에 문을 닫으면 주일에 일을 안 하면 주일에 바이어를 만나지 않으면 여러분 손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분명 손해를 보는 것이 사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일에 버는 수입을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삶을 풍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주일에 벌 수 있는 돈 보다 그 액수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것이 더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그 고백을 듣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같은 개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같은 정신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십일조와 주일성수의 생활을 평생 꼭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안에 율법주의적인 생각이 아닌 또 잘 하면 더 큰 복을 주신다는 기복주의 생각도 아닌 그저 내가 하나님 때문에 손해를 보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너무 좋아 그리스도 예수가 너무 좋아 성경의 방법대로 사는 것이 너무 좋아 세상의 물질은 좀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으로 살지 않고 주님을 좇아간다는 그 마음으로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중에는 생활이 많이 어려운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또 늘 넉넉하다가도 한 순간 어려움에 빠져 참으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순간을 당한 분도 혹 계실 것입니다. 그 분들에게 십일조 생활을 말씀드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억지로라도 십일조를 내면 하나님께서 크게 보상해 주신다는 그런 기복신앙적인 내용이라면 얼마든지 강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설교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그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말씀드렸듯이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손해의 의미가 더 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분명 성경의 정신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로 밥을 굶을 만큼 어려운 분들은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주일에 장사를 해야 먹고 산다면 장사를 해도 괜찮습니다. 저는 우리 하나님께서 밥 굶을 만큼 어려운 자녀들이 십일조를 내지 못해 마음 아파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하고 주일에 장사 하지 않으면 당장 밥을 굶게 되는 사람들의 주일 장사를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하나님께서 어려운 사람들까지 십일조를 강요하는 그런 옹졸한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리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들이 밥 굶지 말고 한 끼라도 밥을 잘 먹고 힘을 내서 살아가기를 더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하나님께서 그런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거꾸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 받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밥을 굶으면 얼마나 굶겠으며 일생을 살아가면서 그 어려운 순간은 또 얼마나 되겠습니까? 정말 힘들어서 밥을 굶을 때가 있다면 그 때에 한 번 십일조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한 번 주일에 가게 문들 닫고 주님께 나아와 예배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돈으로 사는 것 아니고 밥 한 끼 먹어 사는 것 아닌데 「하나님을 더 의지합니다. 하나님 더 사랑합니다. 날 살리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는 신앙으로 밥 먹는 것 대신해 헌금 드린다면 돈 버는 것 보다 주일에 주께 나아와 예배한다면 우리 하나님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녀들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물질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돈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분이 계셔도 저는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제가 그 돈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차례의 훈련을 통해 극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시고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돈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주일에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예배당에 나오는 것이요 우리 소유가 다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믿음의 표현으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평생을 살면서 세상에 한 눈 팔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잘 섬겨 주님의 기쁨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우리가
이 땅을 위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돈을 위지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좀 힘들고 좀 어렵더라도
나와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를 살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다른데 눈 돌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사모합니다.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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