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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7일 주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1-32





지난 두 주간 일본은 京都에 있는 聖信中央敎會의 사건으로 인해 연일 떠들썩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종교적인 문제를 이렇게 크게 다룬 것은 사린가스 살포로 인해 많은 사상자를 냈던 옴진리교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일 보도의 내용들을 보면 聖信中央敎會와 옴진리교를 같은 선에서 놓고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번 사건을 통해 우리가 옴진리교 때 보다 더욱 놀라는 것은 그 사건이 교회라고 하는 것에서 일어났다는 것과 사건을 일으킨 자가 목사라는 것과 또 그 목사가 재일한국인이라는 것 그리고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했다는 것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 교주의 「パオロ 中田 保」라는 일본 명을 꼭 「金」이라고 언론이 쓰는 것과 예전부터 있어왔던 사건을 왜 하필 이 시점에서 방송하는가에 대해 언론의 그 의도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일반인에게는 한류(韓流)로 인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고 정치적으로는 독도 문제로 인해 긴장이 되는 이때에 聖信中央敎會의 사건을 보도하는 것은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있는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해는 가는 말입니다만 우리는 같은 시대에 교회라는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로서 이 일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며 우리의 신앙을 바르게 하기 위해 이 사건을 되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그 지부가 일본 전국에 퍼져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동경 지역에도 있다고 하니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인들이 한국교회를 보는 시각도 의식해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명을 걸고 하는 신앙생활이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른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聖信中央敎會에서 일어난 사건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金 保 (김 타모츠) 라는 사람이 우리와 절대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재일대한기독교단의 관서지방회 京都남부교회 출신이고 그 교회 집사님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우리교단 어느 목사님의 소개로 한국 군소교단의 무인가신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와 어느 날 목사가 된 사람이기도 합니다.

金 保 라는 교주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씀을 드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 시간에 여러분들에게 그 사건에 대해 풀어드려야 하는 것은 그가 추구한 신앙의 내용과 신도들의 행위에 대한 것입니다. 같은 교회라는 이름을 쓰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고 또 목사가 신앙을 지도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정상적인 교회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번 사건을 통해 그들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 신앙과 다른 점을 찾고 우리의 신앙생활을 더욱 바르게 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 많은 전래종교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도교(道敎)와 불교(佛敎) 그리고 유교(儒敎)의 사상에서도 기독교로 유입된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무교(巫敎)의 사상만큼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종교는 없을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종교 무교(巫敎)의 사상이 한국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참 크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金 保 라는 목사님의 신학적 맥과 聖信中央敎會의 신앙형태 등을 보면 이 巫敎의 그것과 너무나 많은 점들이 같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적 행위가 무교의 행위와 이름만 바뀌었을 뿐 매우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한국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놀라운 사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京都의 聖信中央敎會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한국의 많은 사이비 이단 교회에서 비슷한 신앙의 형태가 행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기독교에 巫敎의 영향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이 기독교신앙인지도 모르고 그냥 전통적으로 내려 온 신앙의 형태를 그대로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많은 문제들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巫敎에 대한 것을 좀 더 깊이 알아보면서 우리 그리스도교의 바른 신앙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교를 알아야 기독교와의 차이점을 알게 되고 그래야 바른 기독교신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교는 한국의 사람들이 조선반도에 정착하면서부터 들어온 신앙의 형태입니다. 그러나 조선반도의 무교뿐 아니라 일본의 神道도 이에 포함 된다 볼 수 있습니다. 무교와 신도의 신앙형태가 매우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즉 이 두 종교는 가장 보편적 하등종교로 이해되어지고 또 오래 된 무속신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이 종교는 귀신의 존재를 기본으로 귀신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신앙입니다. 즉 인간의 모든 생활상에 있을 수 있는 문제들을 귀신들이 관여한다는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즉 귀신을 노엽게 하면 생활 속에 어려운 문제를 당하게 되고 귀신의 노여움을 풀어주면 세상의 모든 근심된 문제가 해결된다는 단순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귀신의 마음은 일반적인 사람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이고 반드시 사람과 귀신의 중재자가 그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 중재자가 바로 무당(巫堂 Shaman)인 것입니다. 귀신과 인간 사이에서 활동하는 이 무당의 중재로 인간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교는 하느님이라는 최고의 신을 인정하기는 하나 주로 저급신령을 다룹니다. 무교는 그런 저급 신령을 다루는데 그 귀신들은 세상의 모든 자연과 죽은 사람에게도 있다고 보는 물활론(物活論/Animism)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방법에 있어서는 마술적인 요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들린 무당이 진노한 귀신을 위로하여 내보내거나(위무/慰舞) 그들을 괴롭히는 약한 귀신들을 힘으로 내보냄(壓僧)으로써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도우려 합니다. 이러한 무교의 방식은 모든 문제가 귀신들에게서 연유한다는 신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단 교회들이나 京都의 성심중앙교회의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귀신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겉만 교회이지 속 내용은 무당집입니다. 귀신을 내 쫓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중재자가 목사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목사가 무당의 역할을 교회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어느 교회는 감기도 귀신이 준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감기가 들면 감기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로부터 귀신을 내쫓는 안수기도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교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인해 행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귀신 때문에 더욱 일상생활이 얽매이게 되는 것이고 그로인해 기쁨이 없이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문제가 귀신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기에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것은 귀신과 사람의 중재자인 목회자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 목회자가 차지하는 부분은 절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무당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당들 사이에는 상하 관계가 없으며 종단을 구성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종의 회중교회와 같은 무당의 개별적 신도집단을 구성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규율이 있습니다. 한 명의 무당은 500-1000명의 신도들을 책임지게 되는데 그들을 「단골가(丹骨家)」 라고 부릅니다.

모든 문제들은 귀신들이 유발시키기 때문에 행복한 삶은 신령과 귀신들을 노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당들이나 신도들은 영적인 행위(靈事)를 매우 중요시 합니다. 聖信中央敎會에서도 성령이라는 이름으로 영적 행위를 매우 중요시 했고 또 그런 맥락으로 모든 신도들에게 영서(靈書)를 쓰게 했다고 하는데 나름대로의 영적인 행위들을 개발하고 성도들에게 하도록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영적 행위의 통제는 바로 무당만이 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오로지 무당만이 <굿>이라는 마술적 의식을 통하여 영사(靈事)를 다룰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귀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리나 사회생활에 대하여서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 특성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단 교회들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해치는 일 사람을 속박하는 일 비윤리적인 성작인 일들 돈을 강조하는일 등 온갖 나쁜 일을 행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의 최고의 관심은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오로지 귀신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교의 신앙구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악령으로부터의 해방 즉 축귀(逐鬼 exorcism)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오로지 「무당」이라고 불리는 카리스마적인 사제에게 의존함으로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무교의 聖化개념은 보다 의식적이며 마술적이고 사제 중심적입니다. 그 무당의 능력도 얼마나 귀신을 잘 내어 쫓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교에서는 영권(靈權)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를 봅니다. 이런 무교와 같은 교회일수록 높은 윤리의식이 없습니다. 지나치게 목회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고 성화의 개념이 신도들의 사회생활에 집중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목회자에 대한 이해도 무당에 대한 이해와 같습니다. 여러분 무당이 되는 경로를 알고 계십니까? 무당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무당이 되는데 그 경로에 따라서 불리는 이름이 다르게 됩니다.

첫째는 학습무(學習巫)입니다. 이들은 학습을 통하여 무인이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굿에 필요한 춤을 잘 추고 주문을 잘 외우는 것이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두 번째는 세습무(世襲巫)입니다. 세습을 통해 무인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주로 모계로 이어져 내려옵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그 무당의 권세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신무(降神巫)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강한 귀신의 이끌림으로 무인이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귀신의 강한 선택으로 무당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주로 처녀들에게 내리며 공통적인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중 가장 신도들로부터 능력 있는 무당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강신무입니다. 직접적으로 신에게서 택함을 받았다고 하는 개념입니다. 그러기에 이 강신무에게는 학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귀신을 내 보내는 능력이 가장 큰 선이기 대문입니다.


오늘날 이단교회의 문제나 聖信中央敎會의 문제도 여기에 있습니다. 신학을 정상적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목사라는 명함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목사로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학습은 중요하질 않습니다. 소위 무교에서 말하는 영권이 있어 귀신을 잘 내어 쫓으면 좋은 목사인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신학공부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신학교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왜 없어지지 않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들이 학습에 대해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귀신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아직도 우리 사람들의 종교성 기저에는 깊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의 성화를 카리스마적인 목사나 예배의식 등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것은 또한 귀신에 대한 두려움 축귀의 선호 그리고 윤리에 대한 무의식 등을 고무시켰는데 이는 모두 오늘날 기독교 교회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요즘 우리를 부끄럽게 했던 聖信中央敎會의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기독교 교회에 들어와 있는 巫敎사상은 ① 모든 일상생활의 귀신 개입 개념 ② 기독교신앙의 마술적 이해 및 그에 따른 예배의식의 변질 ③ 목회자의 카리스마에 대한 이해 (Shaman으로 이해) ④ 윤리적 사회적 책임 무시(聖化의 문제).
바로 이런 것들이 오늘날의 교회에 들어와 교회를 혼탁케 하고 우리 교인들을 미혹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무엇을 믿고 있는 것입니까? 어떤 신앙을 갖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까?

1) 첫째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자유함을 얻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8장 31-32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로 얽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귀신의 영향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참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기독교는 얽매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 함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신중에 가장 강하신 신이요 그 강한 신이 우리를 지켜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점쟁이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이사할 때 길일(吉日)을 찾지 않습니다. 결혼할 때도 길일을 찾지 않습니다.

요8:31-32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딤후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2) 둘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귀신을 내어 쫓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3) 셋째로 목회자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무당이 아닙니다. 귀신을 내 쫓는 역할을 하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목회자는 교인을 하나님께 바르게 인도하는 안내자입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는 동역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요10:11-15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해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4) 넷째로 높은 윤리의식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해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교회의 직분도 주지 말라고 말씀할 정도로 주님은 윤리의식을 강조합니다. 왜야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향기가 되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성이 혼탁한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깊이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이단과 사이비 종교에 유혹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믿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자유를 얻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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