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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7일 주일] 그리스도인의 출발점

그리스도인의 출발점

막15:21-27



오래 전 섬기던 교회의 전 교직원과 야유회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약50명 정도의 많은 직원들이었습니다. 그 때 야유회를 제가 기획했는데 그냥 하루 놀러 가는 것 보다는 무엇인가 테마를 정해서 여행을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전라도 땅 백제 문화를 둘러보는 계획을 잡고 공주(公州) 부여(夫餘) 지역을 갔었습니다. 아무래도 백제의 문화는 불교 문화였기에 자연히 사찰을 둘러보는 일이 빠지지 않았는데 공주 시 근방의 어느 사찰을 들렀을 때 고급 승용차를 타고 경내를 들어가는 스님 두 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스님도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나?」 라고 속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은 제가 틀렸었습니다. 제 마음 속에 스님은 적어도 이래야 한다고 하는 그릇된 편견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목사를 볼 때도 일정한 틀이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도 어떤 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간에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때 거기에 대한 틀을 나름대로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말로써 정확하게 말 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나름대로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렴풋이 잡힙니다. 그리고 그 틀에 들어가 있는 것을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틀에 벗어나면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또 정죄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말 그대로 풀어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원문대로 해석해 보면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 개념 정리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푼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문제를 정확히 풀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처음으로 되돌아가 접근하면 쉽게 그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저는 수학을 잘 못합니다. 못된 수학선생님을 만난 탓에 중학교 때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었는데 그러다 보니 수학과 평생 친해지지 못했습니다. 제가 문과를 선택한 것은 책 읽는 것이 좋기도 했었지만 더 근본은 수학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수학을 못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좋은 수학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선생님은 문제를 푸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수에 대한 개념을 먼저 잡아주었습니다. 본질을 알려주니까 다른 것들이 쉬워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이라는 것은 행위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의 본질에 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성경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바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인에 대한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라의 문제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사람의 처음으로 되돌아가면 됩니다. 즉 사람의 창조 때를 알아보면 쉽게 문제가 풀린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창조할 때를 증언해 주는 성경의 중요한 두 곳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창5:1-2 로 하나님이 무엇을 창조하셨는지를 말해 주는 성경본문입니다.

창5:1-2 /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특정한 신분으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목사로 만든 것이 아니고 장로로 만든 것도 아니고 집사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셨다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입니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 잘 해서 무엇이 되려 하십니까? 장로가 되려 하십니까? 권사가 되려 하십니까? 아니면 목사가 되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의외로 문제가 간단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창조했을 때의 그 사람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겉모습은 사람이나 속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롬3:10-12 /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쉽게 말하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이 만들었던 그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범죄 한 이후에 외형은 사람이나 이미 우리는 그 인간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욕을 할 때 사람 같지 않다고 하든지 짐승 같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그저 도덕적으로 약간 훈련된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동물보다 못한 면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여름 관동지방회 신도 수련회에 강사로 오신 목사님께서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 주셨습니다. 전 세계 원숭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했답니다. 회의를 소집한 회장은 몹시 격앙된 목소리로 말합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우리 원숭이가 진화되어서 인간이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인간들같이 거짓말을 합니까? 사기를 칩니까? 인신매매를 합니까? 살인을 합니까?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과 일사각오로 싸움을 합시다!」

우리 사람들은 벌써 많은 길을 벗어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었던 그 창조의 사람은 없어진지 오래고 죄로 인해 너무 멀리 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사람다움을 포기한 듯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 사람으로 되돌아 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말씀 중 또 하나의 중요한 말씀은 창2:7절의 말씀인데 이는 사람을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창2:7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사람은 가장 마지막 날에 창조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는 이미 많은 재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강철이 있었고 금도 있었고 다이아몬드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소중한 것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하나님의 자녀인 사람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흙이 가장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흙이 제일 귀중했기에 그 소중한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대개의 신학자들이 이 흙에 대한 의미를 공통적으로 부여합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흙은 바로 생명인 것입니다. 생명이 흙의 특성입니다. 사람은 그래서 생명입니다. 이 생명성이 있어야 사람인 것입니다. 생명이 무엇입니까? 생명체와 비 생명체의 차이는 삶과 죽음의 의미에서 갈리게 됩니다. 삶과 죽음이 있는 것 우리는 그것을 생명이라 말합니다.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그 의미를 알려 주는 성경구절이 한 곳 나옵니다.

창4:26 /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성경에는 에노스 때에 하나님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에노스 라는 말은 보통명사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에노스 이전에는 사람이 죽는 존재임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에노스 죽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여러분 한자로 죽을 사(死) 자를 아십니까? 한 일(一)자 아래에 저녁 석(夕) 화살촉 비(匕) 자가 한데 어우러진 글자가 사(死)자입니다.

찬송가 318장의 3절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내 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어느 저녁 느닷없이 화살을 맞는 것 그것이 죽음입니다. 낮에 날아오면 피할 수도 있겠으나 밤에는 비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고 살면 매일매일 오염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헛되다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전도서에 특히 많이 나옵니다. 헛되다는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히브리 말은 「하벨」이라고 합니다. 하벨은 숨쉰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내 뿜었던 숨을 다시 거두지 못하면 그것이 죽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죽음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 이사야 2:22에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했습니다. 생명이 코끝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숨을 쉬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에 한 말씀입니다. 이 진리를 아는 사람이 생명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나의 근원이 어디인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것을 비로소 알 때에 우리 인간은 여호와을 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초대교회가 로마의 박해를 피해서 지하에서 예배를 드렸을 때 우리는 그것을 카타콤이라 합니다. 카타콤은 대부분 응회질 토양 (화산 재가 쌓여 형성 된 퇴적암) 이라서 손으로도 쉽게 파 들어갈 수 있는 그런 토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응회질토양은 공기에 노출되어 산화되면 돌처럼 굳어지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공기 중의 습기를 전부 빨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카타콤에는 예배장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묘소도 함께 있습니다. 산 사람들의 생활공간 곁에 죽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는데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응회질 토양으로 인해 시신들의 습기와 악취를 다 빨아들여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신앙인들은 곁에 있는 사람들의 시체를 보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살아 있는 그들이 죽은 자 곁에서 예배를 드릴 때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나도 곧 저렇게 눕는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누워 있겠지...」
죽음은 비수처럼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원형극장의 사자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정사역을 하면서 부부문제를 단계별로 깊이 하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프로그램을 하나 합니다. 그것은 관(棺)에 배우자가 들어가 누워 있고 내가 그 장례를 치르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죽음 앞에서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우리가 곧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미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머든 것이 다 용서가 될 것이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문제는 우리가 천년만년 죽지 않고 오래 살 것 같이 생각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진리를 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셨다는 것 그리고 흙으로(생명으로) 만드셨다는 것 이것을 알 때 바로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이고 여호와를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골고다에 세워졌습니다. 골고다는 해골이라는 뜻입니다. 이 해골이라는 지명이 붙게 된 배경은 여러 전승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 지형이 해골처럼 생겼다 해서 해골이라 이름 붙였다는 해석이고 또 하나는 죄수들이 사형집행을 하던 곳이라 해골이 나뒹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또 하나는 유대인의 전승으로 그 곳에서 아담의 유골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해골이라 한다고 합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해골 위에 십자가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신의 마음속에 세울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해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나는 곧 죽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이고 영생의 의미를 아는 것이고 그래서 십자가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 믿고 복 받는 종교가 아닙니다. 도깨비 방망이같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얻는 그런 종교도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그런 축복도 주신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만 그 이전에 기독교의 기초는 참된 사람이 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람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하나님의 창조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땅에서의 삶이 곧 끝이 나는 존재입니다. 이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정리가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올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문제 생명의 문제 죽음의 문제들을 바로알고서 우리는 십자가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실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바른 신앙을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며 생활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바른 그리스도인인지 잘 모를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만드셨던 그 사람이 되기 위해 애 쓰게 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 주셨음의 의미를 깊이 아는
주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깨달음 위에 주의 십자가를 우리 마음에 세우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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