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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일 신년예배] 마광한 살 이방의 빛



마광한 살 이방의 빛

사49:1-7




신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마음가짐을 하며 새 해를 시작합니다. 그것이 얼마 가지 않아 또 똑같은 생활이 반복된다 할지라도 또 그것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새해의 출발은 늘 새롭게 하려고 마음먹게 됩니다. 거꾸로 말하면 새해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마음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미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크고 작은 다짐을 하며 새해를 맞이합니다.

일본의 진자(神社)들을 가보면 연말연시를 맞아 에마(繪馬)가 수없이 많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의 소원을 담아 에마에 쓰고 그것을 걸어둡니다.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간절한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가끔 짓궂게도 그 글들을 읽어 볼 때가 있습니다. 대체로 돈 건강 직장 사랑 가정화목 자녀의 문제를 적어 놓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원은 한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고 일본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런 종교성은 한국의 기독교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지난 주 중에 제 아내는 아버님이 좀 편찮으셔서 급히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을 다녀온 아내는 제게 잊지 않고 좋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 선물은 비행기에서 주는 신문을 종류별로 갖다 준 것입니다. 그 신문 중에는 기독교 교회에서 발행하는 신문도 있었는데 그 신문의 광고를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 광고의 많은 부분이 신년 대 축복성회를 알리는 광고였기 때문입니다. 기도원마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신년축복성회를 마련하고 교인들을 부르는 광고였습니다.

정확히 8면에 10개의 산상축복성회 광고가 나왔는데 어느 광고에는 「이런 성령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라고 쓰여 있기도 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불치병 치유 귀신 축사 영적 문제 가정 문제 불면 우울증 우환 문제 영음 분별 해석 예언 기름 부음 성령은사 영분별 재정축복 교회성장 등이었습니다.

또 어떤 광고에는 이런 문구도 있습니다.
「강사도 3년을 돌았습니다. 단기간에 능력 받고 전문지식 알려 드리니 괜한 물질 시간 낭비 말고 오세요. 오시면 소원을 꼭 이루실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에 이런 집회도 보았습니다. 신년에 축복성회를 하는데 특히 돈을 많이 벌게 해 준다는 집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참 재미있습니다. 새해에 벌고 싶은 돈의 액수를 미리 생각하고 그에 따른 십일조를 먼저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그 돈을 벌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회 때문에 돈을 번 사람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기도원 원장이었습니다.

신년 대 축복성회 라든지 상상축복성회를 나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다 이단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에도 그런 속성과 복의 개념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꼭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염려하는 것은 그런 기복적인 신앙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른 영성을 갖기도 힘들 뿐 아니라 아주 나약하고 작은 신앙인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묵묵히 하나님의 계획을 갖고 다가오시는데 그 하나님을 우리가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주 작은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는 데에도 하나님의 법칙을 갖고 기준을 갖고 축복하십니다. 사람의 법칙과 기준으로 축복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과 기준으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축복을 받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기준으로 축복받는 것이 좋겠습니까?
오늘은 신년에 우리도 이 한 해 하나님께로부터 축복받기를 원하는데 그 하나님의 축복의 방법과 기준을 생각해 보고 함께 기도하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봅니다.
이사야서를 우리가 볼 때는 어느 부분을 읽느냐에 따라 유념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사야서의 각 부분에 쓰여진 년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0장에서 55장 까지는 포로기 말기에 쓰여 진 성경입니다. 여러분 포로기란 언제를 말합니까?

주전 587년 남 왕국 유다는 바벨론으로부터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로써 북 왕국 이스라엘은 오래 전 앗수르(앗시리아)로부터 멸망한데 이어 남왕국 유다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모두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다가 저들의 수도인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그리고는 바벨론에서 온갖 힘든 노동을 시켰습니다. 그 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시137:1 에 보면 「바벨론 강가에서 우리가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고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땅을 생각하며 밤마다 우는 모습을 시로 쓴 것입니다.

그 후 약 50년이 지나 바벨론은 신흥 세력인 페르시아에 의해 주전538년에 완전히 멸망하고 맙니다. 성경에 바사 제국이라는 것이 바로 이 페르시아를 말합니다. 페르시아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뒤 바로 이듬해에 잡아 왔던 포로들을 순차적으로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게 되는데 주전 537년에 제 1진이 돌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결국 20년 만에 다 돌아오게 되는데 성경이 이 포로 생활을 약 70년이라 하는 것은 그 포로들의 마지막 귀환 년도까지 70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40장에서 55장 까지는 바로 이 포로기에 쓰여진 것입니다.

자 그러면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황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최소 50년의 포로 생활 중에서 지금 지칠 대로 지친 상태입니다. 여러분 이 때에 저들에게 소망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빅터 프랭클 이라는 사회 심리학자가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썼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사람들의 심리구조를 깨닫게 됩니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에게 가장 마지막까지 간절하게 남아 있는 희망은 바로 가족입니다. 이 가족에 대한 꿈이 거절될 때 사람들은 죽어가기 시작했다고 빅터 프랭클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같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 소원은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돌아가서 가족들과 친지들과 함께 살게 해 달라는 아주 소박하지만 원초적인 소망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50년이 넘도록 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엉뚱한 답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는 단순히 집에 가고 싶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의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때 만큼은 하나님은 이 기도를 외면하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대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나님은 「마광한 살(날카로운 화살)이 될 것이다」 「이방의 빛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뭔가 잘못되어가는 듯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뭔가 잘못된 것 같지만 아닙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분명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항상 차원이 높은 사람과의 대화는 뭣인가 단절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지요.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았던 성철(性徹)이라는 스님의 말도 그렇습니다. 성철 스님이 한 말로 세상에 유명해진 말이 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법어(法語)인데 이 말씀이 한국사회에 많이 유행이 되었습니다.
성철 스님은 8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수행을 하신 분입니다. 8년간 눕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와 같은 범인은 아닙니다.
이 말은 1993년 11월 4일 성철스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더 유명해 졌는데 우리 아이가 유치원이 다닐 때 자기도 그런 말은 할 수 있다 해서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원래 이 말은 1981년 제7대 조계종 정종으로 취임할 때 성철스님이 한 말로 80년대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때에 어수선한 나라의 정치현상과 불교계의 교권싸움을 보며 나라와 불교계의 지도자들에게 던진 말인 것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말은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에 중국에서 쓰여진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라는 금강경의 해설서에 나오는 구절로 야보(冶父)라는 스님의 싯구에 나오는 말입니다.

산시산 수시수 불재하처 / 山是山 水是水 佛在何處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부처님은 어디 계신단 말인가?)

즉 이 땅의 모든 만물에 부처님이 살아 계시고 그 안에서 부처님의 뜻을 알 수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부처님을 어디에서 찾는다는 말인가? 라고 하는 설법의 내용입니다. 시대가 어수선하고 그에 따라 불교계가 양분화 되어 서로 싸움을 하고 있던 그 때에 후배 불자들을 보며 한탄하시던 성철 스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가장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갖고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마광한 살이 될 것이다 이방의 빛이 될 것이다> 하는 대답입니다. 가족들과 같이 만나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유일한 한 가지 소원인 사람들에게 과연 마광한 살 이방의 빛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가족과 함께 사는 일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이루게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볼 때 매우 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것 훨씬 더 먼 것을 계획하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100만원 꾼 사람이 빚쟁이에게 빚 독촉 받습니다. 너무 시달리게 되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너무 힘이 듭니다. 돈 좀 갚아주세요. 내게는 100만원이 필요합니다. 갚아주세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100만원 갚아주는 것은 경한 일이다.
내가 너를 1000만원 꾸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

즉 우리의 많은 소원들 기도의 제목들 그런 간구들을 이루어 주시는 일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가벼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어떤 기도의 제목이 있으십니까? 건강입니까? 돈입니까? 직장입니까? 가정입니까? 자녀입니까? 그 기도의 제목을 들어 주시는 것은 경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 다음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의 시각을 현실에 고정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오늘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기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믿는 그 자녀들을 마광한 살로 만들어 주신다 했습니다. 이방의 빛이 되게 하신다 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축복의 개념은 기껏해야 돈입니다. 건강입니다. 자녀의 성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삶 전체입니다. 돈 몇 푼 때문에 기도하는 것 아닙니다. 건강 때문에 울고 웃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고 그 하나님의 꿈을 이뤄드릴 수 있도록 주께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목사로서 여러분에게 올 한 해 병이 없을 것이라 말 못합니다. 모두 돈을 잘 벌고 자녀들이 성적이 쑥쑥 오를 것이라 말 못합니다. 가정이 화목해지고 사업이 번성할 것이라 말 못합니다. 그 축복을 여러분들에게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올해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자녀 때문에 속상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돈 때문에 괴로운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알고 있고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삶 전체를 주관하시고 나로 마광한 살 이방의 빛을 삼으시기 위해 새 함을 주시는 그 하나님을 볼 수 있기에 그 축복을 볼 수 있기에 올 해도 우리는 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쓰러지지 않고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힘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것은 이방의 빛을 삼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올 한 해 그 하나님의 비젼을 보고 그것을 꿈꾸며 그 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우리를 마광한 살로 만들어 주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주신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계획을 읽게 하시고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돈 몇 푼으로 울었다 웃었다 하지 않게 하시고
자녀들의 성적으로 자녀들의 문제로 괴로워하지 않게 하시며
직장의 문제로 힘들어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제목은 다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삶까지 계획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올 한 해 우리의 교우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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