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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9일 주일] 신앙과 생활의 관계



신앙과 생활의 관계

고전3:6-9



직장인들이나 젊은 학생들에게 세상적인 성공의 개념이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성공하는 비결에 대한 책들이 몇 해 전부터 쏟아지듯 나오고 있습니다. 또 어느 책방엘 가 봐도 베스트셀러 자리에는 항상 이런 성공을 위한 방법을 말하는 책들이 놓여 져 있습니다. 아마 이런 유행을 몰고 온 대표적인 책은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라는 사람의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일 것입니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가 있었던 책으로 일본과 한국의 기업에서도 텍스트로 쓸 만큼 인기가 많았던 책이었는데 저자인 스티븐 코비는 현재 <코비 리더십센터>를 만들고 그 곳의 회장으로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정말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누구나 공감할만한 일곱 가지의 습관을 꼭 가지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들을 잘 보면 모두 태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능력이나 특별한 기술을 가지라고 말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 일에 대한 태도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기술과 능력보다 태도가 좋아야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티브 코비 뿐 아닙니다. 이와 비슷한 부류의 많은 책들이 그 이후에 쏟아져 나왔습니다만 그 내용은 다 하나같이 직장과 직업에 대한 자세와 태도를 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신입사원을 뽑을 때 학력에 대해 묻지 않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도 다 이런 맥락에서 학력보다 태도를 더 높이 평가하는 모습이라 볼 수 있습니다.


커밍 워크(Cumming Wolk)라고 하는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있습니다. 이 사람은 사람이 성공하는 요인으로 네 가지를 꼽고 있는데 그것은 지능 지식 기술 태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연구하여 주장하는 것 중 중요한 것은 그 네 가지 중에 태도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93%라는 것입니다. 지능과 지식 기술도 물론 일을 해 나가는데 중요하겠지만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저도 많은 부목사님들 전도사님들과 함께 생활을 해 보았습니다. 꼭 의식을 갖고 보지 않아도 사람됨의 모습이 자연적으로 생활 중에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세가 중요하였습니다. 겸손한 자세 배우려는 자세 희생하려는 자세 교회와 교인들을 사랑하려는 자세 그런 것들이 개인의 능력과 지식보다 훨씬 더 돋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론은 오늘날 복잡한 사회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새롭게 나타나는 이론은 결코 아닙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쳐 준 책 탈무드에도 그런 똑같은 얘기가 이미 나옵니다.

탈무드의 가르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지금의 상황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어떠십니까? 성공하기 위해 새로 책을 사 읽을 필요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다 이미 옛날부터 있었던 얘기요 우리가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었던 말들 아닙니까?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의 자세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곳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매일매일 부딪치는 삶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지능도 중요하고 지식도 물론 중요하고 기술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사회생활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과 우리의 일상생활은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생활 전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앙이기에 신앙의 모습이 생활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태도에 있어서 우리 신앙생활의 틀을 정립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제일 빠지기 쉬운 위험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하는 것 없이 일하는 것>과 또 하나는 <일하는 것 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라고 그는 말합니다.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둘 만 한 말입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중세 수도원의 생활은 지나치리만큼 율법주의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일부 신앙인들 특히 종교의 지도자들은 일하는 것 없이 기도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기도하는대로 이뤄 주실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중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참으로 많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라며 기도하는 행위 노력은 하지 않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막연한 기도 이런 모습들이 우리 가운데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들을 보면 항상 할 일 없는 청년들이 교회에 한두 명씩 꼭 있는 것을 봅니다. 아침부터 교회에 와서 때로는 목회자를 돕기도 하고 청소도 하곤 합니다. 참으로 고마운 청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장래가 심히 걱정이 되는 것은 그 소중한 젊음의 시간에 그들이 아무것도 안하고 교회에서 산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장래에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체로 목사나 선교사가 되려고 한다는 대답을 합니다. 자매들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주로 목사 사모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열심히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청년들을 보고 걱정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세상적인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일 하는 것 없이 기도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합니다.


또한 루터의 그 말이 나오게 된 또 하나의 배경에는 반대로 기도 없이 일만 하는 교인들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열심히 일 하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잘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금만 살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떻습니까? 한 순간의 실수로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고 또 본인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일이 엉뚱하게 잘 풀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청년은 복잡한 주차장에서 뒤로 주차를 하다가 뛰어다니는 4살 된 아이를 치었습니다. 아이는 오랜 병원신세를 지다가 결국 죽게 되었는데 그로인해 그 청년은 마음도 무척 괴롭게 되었고 또 많은 것도 잃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고가 나고 싶어서 나는 것입니까? 사고는 누구에게나 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어느 전도사님께 들은 말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청년이 日産 自動車에 입사하고 싶어 시험을 보고 면접을 치렀답니다. 면접을 치르는데 면접관이 GNP가 뭐냐고 물었답니다. 긴장을 너무 한 탓인지 GNP에 대해 생각이 나질 않아 전혀 답을 하지 못하다가 그냥 생각나는 대로 「간바레 닛산 펄사!」라고 말했답니다. 너무 엉뚱한 말을 해서 떨어졌다 싶었는데 그 말이 너무 재치가 있다고 회사에서 합격시켰다는 얘기입니다. GNP를 말했으면 오히려 떨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의 재치는 실력입니까? 지식입니까?

이렇듯 우리의 생은 한 순간의 말이나 행동 선택으로 인해 얼마든지 그 길이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의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하나님을 찾아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의 중요한 시점에서 항상 하나님을 찾은 인물 중 으뜸은 바로 다윗일 것입니다. 다윗은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하나님을 찾았던 인물입니다.


골리앗을 대적할 때 그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어쩌면 죽을 수 있는 상황 도저히 세상적인 생각으로는 살 수없는 상황이었던 때 그 때 다윗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은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사울 왕에 쫓겨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도 그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적국이었던 블레셋에 가서 미친 짓을 해 가며 목숨을 부지하는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왕위에 오는 후에도 그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늘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죄를 범한 후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들어났을 때 그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한마디로 다윗은 전천후였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경우에 그는 항상 하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많이 찾지 않아도 될 다윗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슬프고 답답하고 부끄럽고 외로울 때 언제나 중요한 일이 닥칠 때 그는 하나님을 찾아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을 우습게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저는 일본에 와서 목회하면서 교인들에게 마음을 다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가끔 먹었습니다. 그러나 곧 그런 생각이 바뀌어서 마음을 다 주고 있기는 하지만 왜 그런 생각을 가끔 하게 되는가 하면 많이 속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생활에 대하여 장황하게 말합니다. 예전에 어떻게 봉사했다는 둥 예전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다는 둥 교회에서는 나 없으면 안 되었다는 둥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어느 날 힘든 일만 생기면 교회에서 보이질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러 교회 밖으로 뛰어 다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하나님을 좀 더 붙들면 해결 되는 것이 보이는데 거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신앙의 자세가 정립이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교회를 좀 등한시 하다가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슬픈 일 괴로운 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이 있습니까? 부끄러운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 때는 바로 하나님을 만나냐 하는 때입니다.


다시 루터의 말로 돌아갑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있어 노력하는 것으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리고 기도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그것을 가르쳐 줍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심는 것과 물주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렸습니다.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라는 말씀을 잘 못 이해하면 심는 것 물주는 것은 필요 없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의미이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심고 물주는 일이 있어야 하나님께서도 자라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런데 노력과 기도는 언제 해야 하는 것입니까? 늘 복합적으로 생활 중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이것이 늘 고민입니다.

전도서 3장에 보면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전3:1-8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모든 것이 때가 있다면 우리가 노력해야 할 때는 언제이고 기도해야 할 때는 언제입니까? 여러분들은 언제 노력하시고 또 언제 기도를 하십니까? 이것을 잘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시탄은 우리에게 항상 시간으로 유혹하기도 하고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시험을 주는데 교묘하게 일을 못하도록 합니다. 목회자들도 사탄의 시험을 받을 때가 많이 있고 또 잘 빠지기도 합니다. 사탄은 너무 영리하기 때문에 목회자들에게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시험하지는 않습니다.

사탄은 목사들에게 이렇게 시험을 한다고 합니다. 공부해야 할 때 일하라 하고 일해야 할 때 공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많은 목회자가 때와 시간에 넘어 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효과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에 다닐 때 참 좋은 설교학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복이라 생각합니다. 그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설교에 대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 아직도 제가 잊지 못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설교의 준비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것같이 하라!
그리고 설교를 할 때는 준비된 원고가 없는 것 같이 하라!」

참으로 좋은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교의 준비는 최선을 다 해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설교의 준비는 기도만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원문의 사전도 찾아야 하고 주제와 관계된 책도 읽어야 하고 주석도 찾아야 합니다. 원고도 정리해야 하고 연습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막상 교인들 앞에서 설교를 할 때면 준비된 원고가 없는 것같이 즉 오직 성령의 도우심만 의지하여 설교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열심히 준비 한 후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 선생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똑 같이 적용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설교를 준비하는 일이나 우리가 인생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나 똑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것 같이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기도만 하면서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 하는 부지런한 청지기를 좋아하십니다. 최선을 다해 공부하십시오. 최선을 다 해 회사에서 노력하십시오. 최선을 다 해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그 후에 하나님께 그 결과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마치 이 세상에서 준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처럼 간절하게 하나님께 매달리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신앙을 갖고 실아 가는 바른 자세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동경교회 교인들이 이 일본 땅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실력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일본의 한인사회 더 나아가 일본 사회를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노력 후에 겸손히 기도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옛날 다윗에게 그랬던 것처럼 바울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이 땅을 맡기실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와 우리 교인들이 그런 삶을 살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생활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열심히 노력하는 생활 하게 하시고
노력 후에는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기도하는
그런 자녀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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