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HOME SiteMap Contact Us Japanese Korean English Chinese
Information
   

[2005년 1월 9일 주일] 주께 엎드리는 자



주께 엎드리는 자

행10:1-8




저는 요즘 우리 교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교회의 장래에 대한 꿈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어떠한 사명을 맡겨 주실까? 우리는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의 비전과 꿈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벅찹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아름답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꿈만 꾼다고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요소들이 많이 있어야 교회는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일반 사회의 조직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원래 유기체라는 것입니다. 유기체라는 것은 생명체라는 것입니다. 생명체는 자연적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데 그래서 교회는 그냥 놓아두어도 성장하게 되어 있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 얘기가 아니고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성장요인을 억지로 만들기보다는 교회의 아름다운 장래를 방해하는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방해요인을 제거하면 쉽게 성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건강한 성장은 항상 거꾸로 이루어집니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회 성장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교회는 성장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성장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것은 도처에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건강한 발전을 제일 싫어하는 자는 역시 사탄입니다. 그러기에 사탄은 언제나 교회의 성장의 길목에서 교회의 발목을 잡기 마련이고 교회는 그 시험에서 이기고 견뎌내고 승리할 때 더욱 아름답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많은 방법으로 교회를 병들게 하고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합니다. 사탄이 그 일을 위해 쓰는 방법이 많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일본에 있는 많은 한인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길목에서 많이 넘어졌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사람을 잘 못 세워서 그렇습니다.

많은 교인들은 교회가 새로운 일꾼을 세우는 것을 무척 힘들어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교회들은 대부분 사람을 세우는 일에는 큰 시험이 교회적으로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것은 사탄이 사람이 세워 교회 일꾼 삼으려는 그 일을 방해하기 때문에 교회마다 그 어려운 관문을 늘 겪어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결코 두려워하거나 망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꾸어 생각하며 이것은 큰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생명체로서 성장하던 중 또 일꾼을 세워 교회 일을 맡긴다는 것은 더욱 큰일을 준비하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서도 일꾼을 세웠을 때 교회는 더 건강하게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꾼을 세우는 것은 교회의 성장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사탄이 방해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탄의 시험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교회 안에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세상적인 사람 자기의 사람을 들여 놓아 교회를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기의 방법으로 이끌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여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탄의 사람이 들어오게 되면 더욱 헌신하고 더욱 섬겨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대접 받으려 하고 교인들을 지시하려 하고 교회의 주인노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 얘기입니다. 서울의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었을 때 주차장이 부족해서 모든 교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어느 장로님께서 장로전용주차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회에서 주장하셨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교회는 장로님들을 존중하고 대접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인들로부터 나타나야 하는 것이지 장로님이 대접받으려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대접 받으려 하는 것은 세상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미의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면 세상적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미의 사람이 아니면 그리스도의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늘 그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판단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에 언제나 외형의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에게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알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모습은 보여주고 계십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근접한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헌금의 액수의 많고 적음도 아니고 봉사시간의 길이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10장은 하나님께서 이방인 고넬료를 사용하시어 초대교회의 첫 부흥을 이루는 장면입니다. 교회의 지도자인 사도 베드로를 청빙하여 복음을 듣게 하고 성령을 받아 가이사랴가 복음화 되는 데에 그 첫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고넬료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고넬료를 선택했을까? 그는 유대인도 아니었는데 왜 하나님은 고넬료를 선택했을까?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고넬료를 선택하신 이유는 그가 백부장이기 때문도 아니고 그가 로마인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것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는 바로 기도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기준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사람을 세울 때 기도하는 사람을 세우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은 다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신앙인인 우리는 모두가 다 기도의 의미를 알고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기도라고 다 같은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에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깊은 신앙심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잘 하기로는 바리새인들을 따라갈 수 없는데 왜 하나님은 바리새인들을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기도는 행위가 아니라 바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기도의 의미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1. 기도한다는 것은 주 앞에 엎드린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했던 인물 중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다윗입니다. 삼하12장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자신의 범죄 사실이 드러났을 때 다윗은 주 앞에 엎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힘들 때에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에 기도했고 사울을 피해 도망할 때도 기도했지만 다윗은 자신이 왕위에 오를 때 중요한 일을 할 때 꼭 하나님께 기도했었고 또 이렇게 범죄 했을 때에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했던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다윗은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좋을 때 위험할 때 일 할 때 범죄 했을 때 그는 하나님께 꼭 기도했었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바로 여기에서 나타납니다.

왜 이토록 다윗이 하나님께 매달렸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을 다윗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 앞에 엎드린다고 하는 것은 그 표현 안에 모든 신앙적 요소가 들어갑니다. 나는 죄인이고 그러기에 죽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고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백의 행위인 것입니다. 주님이 그런 나를 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알고 게시는 주님을 또 내가 압니다. 이보다 더 귀한 신앙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엇이 필요합니까? 무엇을 기도하겠습니까? 주가 나를 안다고 하는 그 사실에 모든 문제가 해결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입니다. 새벽기도를 하는데 옆 좌석에 앉아 울며 기도하는 어느 교인의 기도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너무나도 처량하게 간절히 기도하는지라 제 기도를 계속할 수 없었고 자연히 그 기도를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께 울면서 「아버지!」 라고 계속 하나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기도를 들으면서 제가 생각했습니다. 「저 교인은 살았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고 믿는 것 아버지가 나를 아는 것 같이 나의 필요한 것을 다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의 삶입니다.

주님을 아니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아니 날마다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아니 주님보다 앞서가지 않습니다.
주님을 아니 주 앞에 무례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아니 주님을 속이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 앞에 엎드리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쓰시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기도하는 사람이란 주님이 도와야 큰일을 행한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을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약한 자를 세워 세상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많은 일을 돈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돈을 보기 전에 그 뒤에 서 계시는 하나님을 보는 사람입니다. 힘을 보기 전에 그 힘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돈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희 집 정현이가 어렸을 때 「100엔을 줄께 울지 마!」하면 울다가 울음을 그쳤습니다. 돈의 의미를 알 때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 아이가 중학생인데 심각하게 울고 있을 때 「100엔 줄게 울지 마!」 하면 아이가 울지 않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으로 오락가락 하지 않을 것입니다. 돈의 유익과 힘은 알지만 어린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100엔으로 울음을 그치지은 않을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돈으로 울고 웃는 것은 어린아이라는 뜻입니다. 신앙적으로도 어린아이 일수록 돈으로 울고 웃습니다. 돈을 축복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일꾼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돈을 달라고 하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도가 나쁜 것은 아니나 교회의 지도자가 할 일은 아닙니다. 교회 지도자이면 교회의 지도자다운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돈이 있어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면 일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돈을 달라고 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주를 의지하는 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단순히 기도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기도의 시간으로 또 기도 소리의 크기로 사람을 판단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바리새인 같이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은 하루에도 세 번씩 한 주간에 한 번을 금식하며 성전 앞에서와 길가의 모퉁이에서 큰 소리로 기도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칭찬은커녕 오히려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이라 책망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형식입니다. 그러기에 기도 그 차제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한국의 전라북도 김제시에는 올해로 100년이 되는 금산교회라고 있습니다. 100년 전 미국인 선교사 테이트가 전주와 정읍을 오가며 전도하는 과정에 그 중간지점인 금산리에서 머무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그 때마다 그 금산의 양반이었던 조덕삼의 집에서 머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머물 때에 잡 주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지금의 금산교회가 된 것입니다.

주인인 조덕삼은 자신이 받은 복음이 너무 좋아 자시의 머슴이던 이자익에게 복음을 전해 믿게 하였습니다. 1908년에 교회 건물을 새로 세우고 차음으로 장로 선거를 했는데 모든 교인들의 예상을 뒤엎고 조덕삼이 아닌 머슴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많이 당황하였는데 그 때 조덕삼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내린 결정이므로 순종하여 이자익을 장로로 받아들여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다」고...

그는 이듬해 이자익을 평양으로 보내 신학을 공부시키고 졸업 후 다시 금산교회에서 청빙하여 자신의 머슴이던 이자익을 평생 목회자로 섬겼습니다.

여러분 저를 잘 섬겨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를 잘 섬기는 사람을 장로로 선출해 달라는 말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만감한 사람을 찾아 달라는 것입니다. 조덕삼은 후에 금산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금산교회는 한국교회 120년의 역사 가운데 아주 훌륭한 역할을 했던 교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사람됨이 교회를 일으키기도 하고 성장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장래가 새로 세우는 일꾼들의 손에 달려 있고 그 일꾼을 뽑는 것이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면 결국 교회의 장래는 우리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좀 힘들겠지만 기도의 시간을 보지 말고 기도의 형식을 보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엎드리는 진정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그 중심을 보고 일꾼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엎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건강한 교회의 성장을 이루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는 이 교회를 이끌어 갈 바른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미의 방법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어른이 필요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는 사람을 세워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을 세워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Total : 248 ] [ 7 / 9 ]
No. Subject File Date Hits
68  [2005년 7월 3일 주일] 재미있는 세상 재미없는 교회 05-07-031460
67  [2005년 6월 19일 주일] 예배가 기다려지는 자 05-06-191176
66  [2005년 6월 12일 주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리라 05-06-121319
65  [2005년 6월 5일 주일] 예정입니까 운명입니까 05-06-051265
64  [2005년 5월 29일 주일] 신앙과 생활의 관계 05-05-291307
63  [2005월 5월 22일 주일] 제일 좋은 은사를 사모하며 05-05-221312
62  [2005년 5월 1일 주일] 누구의 소유입니까? 05-05-011417
61  [2005년 4월 17일 주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05-04-171348
60  [2005년 4월 10일 주일] 복음의 능력 05-04-101250
59  [2005년 4월 3일 주일] 아멘 아멘 할찌니라 05-04-031642
58  [2005년 3월 27일 주일] 우리 교회의 부활 05-04-011327
57  [2005년 3월 6일 주일] 나를 사랑하는 오직 한 분 05-03-081275
56  [2005년 2월 20일 주일] 믿음으로 뿌리는 씨 05-03-051439
55  [2005년 2월 13일 주일] 좋은 교회 좋은 목사 05-02-151323
54  [2005년 2월 6일 주일] 기다리는 사람 서두르는 사람 05-02-081291
53  [2005년 1월 30일 주일] 하나님의 참된 백성 05-02-031174
52  [2005년 1월 9일 주일] 주께 엎드리는 자  05-01-091265
51  [2005년 1월 2일 주일] 또 한해를 사는 이유 05-01-021406
50  [2005년 1월 1일 신년예배] 마광한 살 이방의 빛 05-01-011433
49  [2004년 12월 19일 주일] 마구간 과 말구유 04-12-191258
48  [2004년 12월 12일 주일] 신앙생활의 유혹들 04-12-121270
47  [2004년 12월 5일 주일] 바른 기도생활 04-12-061526
46  [2004년 11월 21일 주일] 무엇으로 보답할꼬 04-11-221305
45  [2004년 11월 14일 주일] 십일조와 주일성수 04-11-141323
44  [2004년 11월 7일 주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04-11-071314
43  [2004년 10월 31일 주일] 예수님은 누구신가 04-10-311190
42  [2004년 10월 17일 주일] 그리스도인의 출발점 04-10-171458
41  [2004년 10월 10일 주일] 아들의 이름 임마누엘 04-10-101086
40  [2004년 10월 3일 주일] 창조의 하나님 04-10-031403
39  [2004년 9월 19일 주일] 난파선의 중심 끈 04-09-191272
[1][2][3][4][5][6][7][8][9]

  
  

 

 

    ▲TOP  


〒162-0827 東京都新宿区若宮町24 東京教会
24 Wakamiya-cho, Shinjuku-ku, Tokyo, 162-0827, Japan
Tel: 03-3260-8891 Fax: 03-3268-6130    
(C) The Tokyo Korean Christian Church in Japan Ministrie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