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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30일 주일] 하나님의 참된 백성



하나님의 참된 백성

눅17:7-10




인도양에서 발생한 쯔나미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받은 지가 벌써 1개월이 지났습니다. 이런 큰 재난들이 한 번 발생하면 그 뒤를 따라다니는 많은 말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특히 이 번 재난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 관광지인 태국의 푸켓에서 자국민들이 희생당한 것에 대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일을 처리하여 비교가 되었었습니다.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정신이 강한 나라의 대처방안과 그렇지 못한 나라의 자세는 많이 달랐습니다. 실종 자 한 사람까지 끝까지 찾겠다고 하는 나라도 있는 반면에 누가 실종이 되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자국민의 시신을 운구하기 위해 특별기를 보내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그에 대하여 아무런 대책이 없는 나라도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한국국적을 갖고 계신 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일본에서 살면서 생활 속에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입니까?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습니다만 제 입장에는 내가 일본 사회에서 <영원한 이방인>이라고 느낄 때가 바로 가장 힘들 때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로부터 보호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될 때 법적인 보호는 받고 있지만 법의 적용에 있어서의 보호와 심리적 보호는 받고 있지 못할 때 그 때가 가장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말들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국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개념에서 볼 때 한국인은 일본의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심리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상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께서 미국에서 아이를 낳으셨습니다. 안식년기간 중에 공부하러 가셨다가 그 곳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미국에서 나올 때 법무성 직원이 이렇게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미국 아이니까 함부로 학대하거나 때리지 마시오!」
자국민에 대한 강한 보호의식이 나타나는 말 한마디 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화가 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한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 물론 거기에는 의무와 책임도 수반되어야 하지만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혜택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는 나라 없는 민족의 슬픔을 곳곳에서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000년간 나라 없이 생활했던 유태인들이 그랬고 터키의 크루드족 중국 안의 티벳 사람들 독립하기 전의 동티모르 족 중동의 팔레스틴 사람들..... 그들의 고난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해줄 나라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해 줄 울타리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당했던 고난은 더욱 컸던 것입니다. 한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그래서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속된 나라가 강하다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보호해 준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믿음 때문에 목숨을 내어 버리는데 그것은 무엇을 얻기 위함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는 목숨을 내 놓고 또 때로는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
「나의 시민권은 하나님께 있다」 고. 그리고
「그것이 너무 좋아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생각한다.」

그는 당시 로마의 시민으로 엄청난 법적 보호와 권리를 보장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었지만 그가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어김없이 풀어준 사실이 성경에 나옵니다. 로마의 시민이라는 것은 힘이었습니다. 강한 보호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 힘을 포기하고 그 보호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시민권을 두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은 단순합니다.
로마 제국의 보호보다 하나님의 보호가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보호보다 하나님의 보호가 더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백성이 되는 것 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좋은 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좋은가? 무엇이 좋지 못한가? 그것을 보는 가치관이 다를 뿐이지 모든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중국집에서 팔보채를 먹지만 우리 아이는 자장면을 먹습니다. 돈이 많고 적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장면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혹 세상의 나라는 국민을 실망시키고 버릴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내가 어미가 젖먹이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를 사랑한다. 그들은 혹 자식을 버릴지라도 나는 너희를 버리지 않겠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모두 다 하나님의 훌륭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까?
교회를 다니고 예배에 참석하면 다 하나님의 좋은 백성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의무와 책임을 다 하면 좋은 백성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 노릇을 잘 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칭찬 받고 싶어 하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로부터도 사랑받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합니다. 이왕 신앙생활 하는 것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칭찬받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칭찬받는 종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는 종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이 되는 것인데 그런 백성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오늘은 그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먼저 하나님께 유익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말로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하나님께 유익한 것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확실하게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의 모습과 그렇지 않은 종의 모습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들이 많이 나옵니다.

잠10:26) 게으른 종 무익한 종으로는 주인의 눈에 연기 같은 존재 이의 초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몇 해 전 중국 연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연변에 있는 과학기술대학을 통해 북한에 수수쌀을 넣어주기 위해 간 것입니다. 일을 다 마치고 함께 간 교인들과 유명한 냉면집에서 냉면을 먹기 위해 냉면을 주문했는데 그만 저는 그 냉면을 먹지 못했습니다. 식탁에 있던 식초를 냉면에 넣었는데 그것이 식초가 아니라 빙초산이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시던지 그만 다시 냉면을 주문해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의 초 같다는 것은 괴로운 것을 말합니다.

눈의 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작불을 때는데 연기가 자꾸만 내게로 옵니다. 눈이 쓰립니다. 눈을 뜰 수 없습니다. 괴롭습니다. 무익한 종은 이렇듯 하나님께 괴로움을 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유익한 종에 대해서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잠25:13) 유익한 종 충성된 종으로는 추수 군에게 얼음 생수와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가슴을 시원케 해 드리는 존재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먼저 해 드리는 존재 이는 하나님의 칭찬을 들어 마땅한 존재인데 그 비결 즉 무엇을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고 유익하게 생각하는 지 그것이 성경에 나옵니다.


사무일하 24장에 보면 다윗이 그 부하 요압 장군에게 군대의 수를 계수하라 명령합니다. 요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는데 왜 군대를 계수하라 하시는가 하고 왕께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강하게 다시 명령을 하였고 결국 요압은 왕의 명령에 따라 군대를 계수하였습니다. 삼하24장9절에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는 80만 유다에는 50만 합계 130 만 명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갓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전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7년간 이스라엘에 기근이 오는 것을 선택하든지 다윗이 3달 동안 원수들에게 도망 다니는 벌을 받던지 3일간 전염병이 도는 벌을 받든지 이 셋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 때 다윗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는 아주 유명한 말을 합니다.

삼하24:14) 내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여기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손은 하나님의 기준을 말하는 것이고 사람의 손은 세상의 기준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은 칼을 빼는 담대한 용사가 나라를 살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생각을 하는 다윗에게 진노하신 것입니다. 나라는 그들이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간혹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방회에서 만난 어느 목사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동경교회는 재정적으로 든든한 사람이 많아 걱정이 없겠군. 우리 교회도 동경교회 같이 그런 교인 몇 명만 있으면 참 좋겠는데...」
그 말을 듣고 제가 속으로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교회가 그 모양이지!」
「교회가 교인을 축복해야지 교인이 교회를 축복하면 어떡합니까?」
「교인이 교회 덕을 봐야지 교회가 교인 덕을 보면 어떡합니까?」


어떤 목사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 십일조 100만원 하는 사람 100명만 주십시오.」
그 얘기를 듣고는 함께 목회하였던 김동호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 과부의 두 엽전도 좋으니 정직한 십일조 하는 교인 100명을 주십시오.」
그런데 저는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과부의 두 엽전도 좋습니다. 정직한 십일조 헌금하는 제직을 주십시오.」

십일조는 단순히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지고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십일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이 십일조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단순히 헌금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누가 살립니까?
동경교회는 이제 아이들까지 매 주일 700명 정도의 신도가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교인이 많아지면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 것일까요?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이 많으면 교회가 성장하는 것일까요? 칼을 뽑을 수 있는 용맹스런 군사가 많으면 교회가 든든히 서 갈까요?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유익한 종이 살립니다. 유익한 종은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유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는 그 마음 그 믿음을 갖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평가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종을 찾고 계시는 것이고 그런 종에게 유익한 종이라는 칭찬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익한 종이 되면 하나님의 완전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해져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2. 무익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달마인형에 눈을 그려 넣는 것이 있습니다. 달마 인형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에도 멋진 신앙인으로서의 완성이 있습니다. 달마 인형에 눈을 그려 넣듯이 마지막 하나를 했을 때 우리의 신앙이 완성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아닙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충성이 없어도 하나님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즉 나의 충성이 하나님께 혜택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말씀 하나로도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눅3:8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소리치는 세례요한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아 큰 소리 치지 마라. 하나님은 이 돌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많은 것을 드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함께 일 할 충직한 일꾼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일을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 앞에 세울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누가 그 일을 맡을 것입니까? 충성된 종입니다. 충직하고도 믿을만한 백성이라야 합니다.


지난 1월에 우리는 제직임명을 하고 각 부서의 봉사자 임명을 하고 또 제직 수련회를 하였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치 경주하는 자동차가 경주를 하기 위해 출발 대에 서 있는 것을 연상하게 되었습니다. 조직을 가다듬는 것은 자동차를 정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경주를 하기 위해서는 경주할 자동차를 잘 정비하여 중간에 고장이나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제직 수련회를 통해 모든 교인들이 새롭게 마음을 먹는 것은 연료를 공급받는 것과도 같습니다. 경주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연료가 있어야 마지막 골인 지점까지 아무 염려 없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정비와 연료주입이 끝나고 출발선에서 1년이라고 하는 경주를 위해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의 완성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면 되는 것입니까? 언제든지 칼을 빼 들 용기가 있으면 되는 것입니까? 십일조 헌금을 많이 내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성경을 통해 그 완성의 조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종의 완성은 바로 「무익한 종」으로의 고백입니다.

코끼리가 체중계에 올라갔는데 그만 몸무게가 무거워 체중계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개미 한 마리가 코끼리의 귀에 들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끼리야 너하고 나하고 같이 이 체중계에 올라가니까 체중계가 이렇게 고장이 나고 말았구나.」
우리가 일을 열심히 하고는 다 내가 했다고 여기는 것은 마치 개미가 코끼리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워 주시는 것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일 년을 시작합니다. 여러분 일 년 동안 하나님의 유익한 종이 되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에 빠져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그런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일을 다 한 후에 꼭 하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일을 다 한 후에 하나님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는 고백을 할 때 그 때에서야 정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완성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올 한 해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비랍니다.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 고백을 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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