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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2일 주일] 신앙생활의 유혹들


신앙생활의 유혹들

계13:11-18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예수를 믿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고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요 또 이 땅을 살아가면서도 주님과 함께 동행 하여 천국과도 같은 풍요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삶의 자세는 항상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천국의 소망을 갖고 종말론(終末論) 적인 자세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시기를 하나님밖에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4:36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른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미미한 깨달음이나 개인의 어떤 영적 느낌들을 하나님의 계시라 믿어 재림의 때를 말 해 온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여파는 우매한 사람들을 미혹케 하고 두려움에 빠뜨려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종교에 몰입하게 만들고 결국은 교인으로 하여금 일상적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큰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 한 개인이나 교회 하나의 생각이 비성서적으로 잘못된다고 해서 뭐 나쁠 것이 있겠습니까 만은 그것이 한 개인의 신앙생활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교인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기에 거기에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재림과 관계해서 나타나는 모든 신학적 신앙적 문제는 대체로 요한계시록을 그 텍스트로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책 자체가 묵시록(黙示錄)이라서 그 내용이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간접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신학적 배경이 얕은 사람이 해석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춰진 뜻을 하나하나 들춰내며 교인들을 가르치게 되면 교인들은 우선 그 뜻의 진위를 생각해보기도 전에 말씀의 기이함에 사로잡혀 그 말씀을 그대로 좇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 말씀을 늘 가까이 두어야 하지만 그 말씀으로 인해 삶의 많은 부분이 멍들게 되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한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많은 이단과 사이비 신앙들이 그래서 이 요한계시록의 잘못된 해석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떠십니까? 이런 예수님의 재림의 이야기는 나와는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이비 이단 종교들은 나의 신앙에 침투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잘 하고 있어서 그런 유혹은 절대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어느 정도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갖고 있는지 말입니다.

지금부터 정도에 따라서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잘못된 가르침에 제일 심하게 빠져 있는 경우입니다.

지금부터 꽤 오래 전 일입니다. 한국에 있는 다미선교회라는 교회에서는 1992년 10월 28일 밤 12시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하여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 학생들은 모두 학교를 자퇴하고 직장인들은 회사를 그만 다녔으며 집을 팔고 모든 재산을 다 교회에 바치고는 예배당과 기도원에 모여 재림하실 예수님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그 교회 안에 있어서 예배를 하여야만 휴거(들림 받는 것)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당시 외신기자들도 그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었고 제가 기억하기에 일본의 NHK에서도 생중계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른바 시한부종말론(時限附終末論)을 신봉하는 교회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휴거된다고 믿어 기도원이나 교회에 모여 예수님을 기다렸던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그 결과는 해프닝으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집 버리고 직장 날리고 인생 망치는 결과가 수많은 사람에게서 나타났었습니다. 잘못된 신앙의 무서운 결과입니다.

그런데 그 신앙의 배후에는 요한계시록이 있습니다. 다미 선교회의 교주 이장림은 원래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출판사인 <생명의 말씀사>의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10년간 생명의 말씀사에 근무하다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경고의 나팔>등의 책을 출판해 물의를 빚기도 했었습니다. 다미선교회의 「다미」는 다가올 미래라는 뜻의 준말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는 펄시 꼴레 목사의 <내가 본 천국>이라는 책의 영향을 받아 시한부 종말론을 신봉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본 천국>이란 책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꼴레 목사가 6일 동안의 천국기행을 하면서 인간의 역사 6천년이 끝이 나면 세상의 종말이 오고 그 뒤는 하나님의 천년왕국이 시작된다고 하는 주장을 쓴 책인데 그 것을 믿게 된 그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오는 날을 계시 받았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천년왕국 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약간 심한 경우입니다.

컴퓨터가 보급이 되면서 저희 집도 1990년 결혼과 함께 AT컴퓨터를 한 대 구입했습니다. 마침 조카가 첫 돌을 맞이해서 컴퓨터로 축하그림을 그려서 조카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첫 돌이라 친지 분들이 꽤 모였었는데 모인 친지 분들 중 한 분이 컴퓨터의 그림이 사탄의 그림이라고 해서 반가와 하지 않은 것입니다. 당시 저는 전도사였었는데 참 난감했었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 보니 컴퓨터 그림뿐만 아니라 상품의 유통에 필요한 바코드도 사탄의 표시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 많은 교회가 컴퓨터와 바코드를 사탄의 표시라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교회가 가르치는 배후에도 바로 요한계시록이 있었던 것입니다. 계13:17 에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하니....」 라는 말씀 때문에 바코드가 사탄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당시에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적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한국의 많은 교회에서 유럽연합(EU)의 우두머리가 적그리스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계13:1에는 「적그리스도는 뿔이 열」이라고 했는데 이는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가 10개국이 되면 그 우두머리가 기독교를 탄압하고 세계의 종말이 온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유럽연합은 원래 유럽경제공동체(EEC/1957년 설립)라는 모임으로 출범했는데 회원 나라는 6개국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다가 1993년 11월에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유럽연합으로 바뀌면서 12개국이 등록을 하게 됩니다.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가 12개국이 되니까 유럽연합의 우두머리가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해 왔던 교회들은 2개국이 곧 탈퇴할 것이라는 옹색한 변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는 2004년 현재 제가 알고 있기로 25개국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의 탄압도 없고 주님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아주 경미한 경우입니다만 그러나 이 경우는 대부분 모두가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 가정을 해 보겠습니다. 혹 지금 휴대 전화를 신청했는데 090-666-6666 번호가 나왔다고 한다면 여러분 어떻겠습니까? 그 전화번호를 그대로 쓰실 수 있으십니까? 자동차를 한 대 샀는데 번호가 666이라면 그 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타고 다닐 수가 있으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미 여러분도 이 요한 계시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분이 나빠 번호를 바꾸시려 할 것입니다.

왜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우리는 666에 대한 것을 이해하는 데는 사실 성경 요한계시록 보다는 <오멘>이라는 영화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배우 그래고리 팩이 주연한 이 공포영화가 나온 것은 1976년입니다. 벌써 30년 전 영화입니다. 6월 6일 6시 로마 갓 태어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쏜 대사는 같은 시각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데미안을 아무도 모르게 데려와 친자식처럼 키웁니다. 그런데 데미안의 주위 사람들이 죽기 시작합니다. 유모가 죽고 부인이 죽고 또 데미안이 인류를 파멸하러 이 땅에 온 악마의 이들이라는 사실을 대사에게 알려 준 신부도 죽습니다. 대사는 데미안의 머리카락 밑에 악마의 표시인 666이라는 숫자를 발견하고는 데미안을 죽이려 했지만 결국 자신이 죽고 맙니다. 장례식 날 데미안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던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이 영화를 만든 리차드 도너 라는 감독은 이 영화로 인해 유명해지고 또 돈도 많이 벌었을 런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얄팍한 신학적 지식과 무지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지 모릅니다. 문화의 영향은 그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계13:18의 말씀을 <오멘>이라는 영화로 풀면서 666은 악마의 숫자가 돼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요한계시록의 바른 해석은 무엇입니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로 나열된 이 수수께끼 같은 내용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설교라는 짧고 한정된 시간에 요한계시록에 대해 다 말씀드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요한계시록 중에서도 가장 우리를 많이 혼란케 하고 사이비 이단 신앙을 가장 많이 만들어 온 13장 11-17절 부분 즉 오늘의 본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기록할 당시는 로마의 핍박이 매우 심해 사람의 이름이나 상황들을 사실적으로 밝힐 수가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상황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우회적으로 기술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기독교를 박해했던 힘 있는 자들의 이름이나 사건들은 정확히 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기술했다가는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처음으로 심하게 박해했던 당시 로마의 황제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네로였습니다. 네로는 로마의 5대 황제(54-68년)로 54년 어머니가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독살하고 근위병의 추대를 받아 왕의 자리에 올려 놓았는데 그 때가 불과 16세였습니다. 치세의 초기 약 5년 동안은 근위장관 브루투스 철학자이며 그의 스승인 세네카의 후원으로 해방노예의 중용 감세 원로원 존중 매관매직의 폐단을 시정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기도 했지만 그러나 점차 잔인·포악한 성격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의붓동생 브리타니쿠스 어머니 비(妃) 옥타비아를 차례로 살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64년에는 로마시 대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교도에게 전가시켜 대학살을 감행한 것은 매우 유명한 기독교 박해입니다. 결국 68년 갈리아에서 반란이 일어나 이것이 각지로 퍼지자 히스파니아(에스파냐)의 총독 갈바가 로마시로 진군하였을 때 그를 미워한 원로원 일반 민중뿐만 아니라 그의 근위군까지 이들에게 합세함으로써 네로는 로마시를 탈출 급기야 칼에 찔려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로써 네로의 그 폭정은 마감을 하게 됩니다.

네로가 죽고 나서는 한동안 로마에 종전과 같은 대대적인 박해가 어느 정도 수그러졌습니다만 그러나 그도 잠시 10여년이 지난 도미시안 황제 때 (81-96)의 박해는 네로 때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사람들은 도미시안 황제를 제2의 네로라고 부르게 됩니다. 네로가 다시 살아났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13장 1절의 첫 짐승은 네로를 말하는 것이고 11절에 두 번째 짐승은 도미시안을 말합니다. 네로는 칼에 맞아 죽었는데 이제 그 상처가 다 나아서 더욱 기독교를 핍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미시안이 기독교를 핍박하기 위해 만든 것 중 대표적인 것은 황제 숭배를 소아시아 지역까지 확대한 것인데 황제의 신전에 들어가 경배하는 자에 한해서 생필품을 살 수 있는 표를 나눠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황제에게 절하지 않을 경우 먹을 것을 살 수 없도록 원천적인 핍박을 한 것입니다. 요한이 밧모라는 섬에 유배되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때가 바로 이 때인 것입니다.

요한은 어떻게든 그 핍박자를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네로가 다시 태어났다고 여기는 바로 그 도미시안 황제가 적그리스도인데 요한은 그를 이 13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이렇습니다. 옛 헬라어는 아라비아 어가 없어 숫자를 표기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헬라어 알파벳으로 숫자의 표기를 같이 쓰고 있는데 그것은 옛날의 글자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입니다. 그 666이라는 것은 「네로」라는 단어를 썼을 때 그 알파벳의 숫자의 의미를 더하게 되면 666이 되는 것입니다. 즉 666은 네로를 말하는 것이고 도미시안 황제는 바로 네로의 환생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666은 숫자가 아닙니다. 666은 네로 황제와 도미시안 황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상품에 붙어 있는 바코드는 악마의 표가 아닙니다. 그냥 유통표시일 뿐입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는 유럽연합의 우두머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모든 세력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말씀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견고하지 않으면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견고한 신앙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그것은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 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세 번 시험 하면서 시편의 말씀으로 시험합니다. 유혹은 말씀으로 올 수 있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말씀의 이해와 지식으로 우리의 신앙과 삶이 망가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정확한 해석으로 견고한 신앙을 쌓고 복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그 말씀의 유혹을 역시 같은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잘못된 해석으로 오는 유혹을 바른 해석의 말씀으로 물리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아는 것이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 우리는 견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39:8 /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또 가로되 나의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시119:105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얽어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 어떤 불편을 주는 것도 행동의 제약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항상 자유함을 주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참 평안을 주십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미치는 유익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서 오히려 사탄을 두려워하고 죄를 무서워하고 영적 싸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예수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부담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와 율법의 부담 속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롬6:6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요8:31-32 /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많은 유혹 속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성경에 대해 거짓 가르침이 난무하는 오늘의 모습 속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 교회를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부담이 되지 않게 하시고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고 담대함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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