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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20일 주일] 믿음으로 뿌리는 씨


믿음으로 뿌리는 씨

시126:1-6




저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도시에는 흙과 들이 없기 때문에 자연히 저는 어려서부터 콘크리트 바닥에서 뛰어 놀며 성장을 했습니다. 농촌의 아이들이 코스모스 꽃을 보며 학교를 다닐 때 저는 골목에 세워져 있는 전봇대의 개수를 세며 학교를 갔습니다. 농촌의 아이들이 넓은 들판을 뛰어 다니는 동안 저는 골목골목을 숨으며 숨바꼭질을 했고 겨울에 농촌의 아이들이 얼음위에서 썰매를 타며 노는 동안 저는 아스팔트 위에서 빨래판에 초를 바르고는 그것을 타고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도시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당연히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농사의 경험이 없다는 것이 저는 큰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땅에 한 인간으로 태어나 농사를 지어 보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면 그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소중한 생명에 대하여 자연과 창조주 앞에서 땅을 일구고 사는 것은 다른 어떤 일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처가의 온 식구들이 한 곳에 모여서 여름휴가를 함께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농촌의 들을 걷고 있을 때 처가 식구들이 이것을 땅콩 이것은 고사리 이것은 깨..... 서로 얘기하며 지나갔었는데 저는 하나도 모르는 것들이라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것을 매일 먹고 사는 사람이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기적으로는 이미 늦었고 또 교회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전직을 할 수는 없겠지만 될 수 있으면 흙과 친해져서 거기에 많은 것들을 심어보고 열매를 얻는 기쁨을 경험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그런 이유로 해서 대학을 다닐 때와 청년부 지도 목사를 할 때에는 될 수 있으면 농촌봉사를 많이 했었습니다.

제가 농사의 경험은 없다 하더라도 농사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상식적인 선에서의 농사에 대하여 그리고 그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에 대해서는 조금은 안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으로 생각할 때 「농사」 라고 하면 두 가지의 특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봄에 땅에 뿌리는 씨는 절대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농부는 가장 좋은 씨앗(열매)은 절대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가장 좋은 씨앗이나 열매는 먹지 않고 갖고 있다가 봄이 되면 밭에 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농부는 꼭 이 두 가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농부가 좋은 열매를 먹지 않고 봄에 땅에 뿌리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것을 먹지 않는 농부에게 「왜 그것을 먹지 않느냐?」 묻지 않습니다. 봄에 땅에 그 씨앗을 뿌리는 농부에게 「왜 그 씨앗을 땅에 버리느냐?」 고 묻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씨를 뿌리는 농부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농부는 소망을 갖고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그 열매를 거둔다는 의미에서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서에서 그런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디모데에게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받는 것>이라(딤후2:7)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의 본문인 시편 126편도 우리가 잘 알듯이 씨를 뿌리는 농부가 등장합니다.

126:5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126:6 /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농부가 가장 좋은 씨앗으로 봄에 밭에 뿌리는 것은 한 가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농부의 뿌리는 씨앗은 결코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아무 것도 모르고 보면 땅에 버리는 것 같지만 그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기다리며 소망 중에 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그 열매를 거두는 것은 인정하겠는데 왜 울면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거둔다는 말입니까?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릴 때 꼭 울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농사짓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오래 참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 아픔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울며 씨를 뿌린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성경의 말씀은 단순한 삶의 지혜를 가르치기 위해 우리에게 쓰여 진 것이 아닙니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편의 한 가지 사실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편126편의 첫 부분에는 이 시편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농부를 생각하고 이 노래를 불렀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예배하는 것이 꼭 농부의 농사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앗을 뿌리는 자는 기쁨의 단을 거둔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드리는 것 노력을 드리는 것 물질을 드리는 것 마음을 드리는 것.....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손해라고 생각하고는 쓰고 남은 것을 드리기도 하고 인색함으로 아까운 마음으로 드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절대로 눈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때 우리가 생각할 것은 농부의 마음입니다.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씨앗을 먹지 않습니다. 그 씨앗의 가장 좋은 것은 절대로 먹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할 때 그 때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하여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옥합을 깬 것은 향유가 아니라 마리아의 눈물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 흘리신 그 피는 바로 하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릴 때 그 때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그 마음을 가지려고 이 시편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그들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그 세상적인 생각을 바로 잡기 위해서 성전에 오를 때 이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시게 하면 뿌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기도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많은 분들께서 그렇게 기도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순서는 반대입니다. 「뿌려라 그러면 거두게 할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땅은 제일 정직하다」고 말하면서 농사를 짓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은 믿으면서 그 땅을 만드신 하나님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씨앗을 남기지도 못하고 혹 그 씨앗을 뿌리는 것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제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목사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성격이나 성장기를 아는 사람이면 제가 목사가 된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목사가 된 것에 대해서 저의 자격에 대해서는 이해는 가지 않지만 이렇게 여러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이해를 하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기 위해 애쓰며 컸다는 것 하나였습니다.
저는 지금껏 헌금을 구겨진 둔으로 드린 적이 없습니다. 일본은 돈들이 다 좋은 종이로 만들어져서 대체로 모두 새 돈같이 여겨지지만 한국은 돈이 빨리 접히고 낡게 됩니다. 항상 돈을 새 돈으로 바꿔 헌금을 준비하는데 사정상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저는 토요일 저녁에 돈은 다리미로 다렸습니다. 하나님께 구겨진 돈으로 헌금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돈의 액수라는 것은 새 돈이나 헌 돈이나 같은 가치를 갖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같은 값이면 새 돈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순순한 제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고등부 교회에서 회장을 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때이고 시간을 아껴서 공부해야 하는 때라는 것을 제가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회장직을 사양하지 않았습니다.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했다고 자부합니다. 가을 겨울에 중고등부 회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몇 주를 밤을 새워 회지를 만들었습니다. 그 때 학교의 성적은 좀 떨어졌지만 저는 그것이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회지를 다 만들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것을 읽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기뻤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시간의 10분의 1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려운 때 주일을 지키는 것은 물론 평일에도 기도와 말씀 보는 시간 교회에서 봉사하는 시간도 정해놓고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훈련이 되다보니 나중에는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어렵지 않게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이렇게 목회를 하고 있는 것과 그것도 교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목회를 하는 것에 대하여 매우 만족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루 밥 세 끼를 꼬박꼬박 먹으며 사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이 즐거운 일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면서 하루 밥 세 끼를 잘 먹고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어릴 때부터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애를 썼기 때문입니다.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마다 항상 눈물이 있었고 손해가 있었고 불이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 기쁨의 단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믿고 있습니다.

꼭 좋은 것을 드리지 않아도 우리는 눈물로 하나님께 나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옵니다. 오늘 이 주님의 날에 울 수밖에 없는 사연을 갖고 하나님께 아뢰기 위하여 이 성전의 계단을 오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고자 여기에 나온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성경은 말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둘 것이라 합니다. 울며 시를 뿌리는 자는 정영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올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나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주께 나오는 사람은 바로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기쁨의 단을 얻게 해 주시겠다 말씀 하는데 그 기쁨의 단은 무엇입니까? 울며 씨를 뿌리는 자가 거두는 그 기쁨의 단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4절에 보면
126: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기쁨의 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4절의 두 단어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는 <포로>라는 말이고 또 하나는 <남방>이라는 말입니다.

포로는 얽매여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편 126편을 쓰고 있는 당시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벗어난 직후입니다. 그러나 포로에서 이제 막 벗어났다는 것은 아직도 포로기의 그 비참한 기억을 갖고 있다는 말도 됩니다. 포로기의 힘든 상황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포로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몸은 해방을 얻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자유하지 못한 포로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무엇인가 우리를 얽매이고 있는 그것을 풀어야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인데 그것을 푸는 것이 기쁨의 단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포로에서 벗어나야 생명을 얻는 것인데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것은 진정 무엇입니까?

또 하나 <남방>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남방>이라 표현하고 있지만 성경의 원문이나 일본어 성경에는 <네겝>이라는 지명을 쓰고 있습니다. <네겝>은 어디인지 아십니까? <네겝>은 팔레스틴 남부의 건조 지역으로 비가 오면 생명력이 넘치지만 그 비가 그치고 나면 또다시 바로 죽은 땅으로 돌아가는 그런 지역입니다. 그래서 <네겝>은 건조하여 죽은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죽은 땅에 비가 내려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진정한 포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고 바로 그것이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자 여러분은 지금 자유 하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마음이 정말 편안하십니까? 걱정거리가 없고 항상 기쁜 나날이 계속 되십니까? 우리 중에 그런 분은 아마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왜야 하면 지금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의 상황 때문에 자유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인관관계 때문에 자유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성격 때문에 자유하지 못하고 어떤 분들은 자신의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아픈 경험 때문에 희망을 갖지 못하는 분도 있고 가족 때문에 매일 가슴아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늘 황폐한 죽은 땅과도 같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기쁨으로 거두는 단이라는 것은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모든 것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자유를 주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얽매이지 마십시오. 지금 혹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메마른 심령에 생명의 비를 내리시는 것이 바로 기쁨의 단인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괴롭게 하고 나를 얽매고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진정 자유하게 되는 것이 바로 기쁨의 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로 메말라 있던 내 삶에 새 생명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기쁨의 단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그 기쁨의 단을 거두며 사는 것 그것은 가장 복된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 복된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오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간절함으로 주 앞에 나아와 그 가장 귀한 마음을 주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 그 마음과 믿음을 심는 것입니다. 신실한 마음으로 가장 귀한 것을 주께 드리기 위해 울며 주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기쁨의 단을 거두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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