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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3일 주일] 아멘 아멘 할찌니라



아멘 아멘 할찌니라

신27:15-26




우리는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고 이왕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보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동경교회에 모였습니다. 바른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그것에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하고 또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 변질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2000년이나 되는 오랜 시간 속에 처음의 그 말씀의 의미가 많이 바뀌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미의 그 말씀의 본질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시대는 달라지고 환경은 변했지만 그리고 언어의 의미도 많이 바뀌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그 본질은 변화되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대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변질되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늘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알 수 있도록 항상 귀를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많이 변질되어 이해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바른 마음을 알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많은 요소들이 변질되어가고 있지만 그 대부분 변질의 원인은 「너무 지나친 신앙」에서 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형태가 어느 정도는 행위로 보여 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만 신앙을 평가하기 때문에 대부분 지나친 행위를 강요하거나 실천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목회자를 신격화 하는 것도 지나친 신앙에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신의 대변인으로서의 목회자의 역할은 설교시간으로만 해도 족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신앙인들은 설교 시간외에 평상시에도 목회자를 신격화 하는 경우가 있고 그것이 또 좋은 신앙인라고 목사님들은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목회자도 설교시간 외에는 여러분들과 똑같은 예배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강단 위에 의자가 없는 것입니다. 예배자나 목사나 다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신령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지나친 신앙 때문에 바뀐 것은 신앙생활의 언어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교회의 언어는 많이 그리고 빨리 변해 왔습니다. 제가 어려서 쓰던 교회의 용어가 지금 많이 바뀐 것을 보면 정말 언어는 빨리 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 중 <은혜>라는 말과 <아멘> 이라는 말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 뜻과 쓰이는 용도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설교자에 의해 변질된 예입니다. 은혜는 하나님만이 우리들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설교자들이 가로채고 있습니다. 마치 설교자들이 교인들에게 은혜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아라」 「복 받아라」 하면서 하나님의 역할을 지신들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아멘>이라는 말은 설교를 듣는 회중에 의해 변질된 예인데 오늘은 이 <아멘>의 말의 뜻과 용도에 대해 살펴보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 합니다.



오늘 이 설교를 준비하게 된 것은 몇 주 전 우리교회에서 있었던 예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 오신 어느 목사님께서 설교를 듣는 우리 교인들에게 <아멘>을 무척 많이 강요하셨는데 그 때 우리 교회의 교인들은 <아멘>이라는 소리를 참 못했습니다. <아멘>을 강요하시는 그 목사님을 뵈면서 그리고 그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아멘>을 하는 우리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멘>의 바른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설교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지난번의 예배 때문만은 아닙니다. 꽤 오래 전에 한사랑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을 때 세계 한인 목회자대회가 동경 大久保도리에 있는 동경중앙교회에서 열렸었습니다. 그 때 한사랑교회의 성가대가 개회예배의 찬양을 맡았었는데 한국에서 오신 설교담당 목사님께서 지나칠 정도로 <아멘>을 강요하였습니다. 회중이 <아멘>을 안 하니까 가까이 있는 성가대원들에게 <아멘>을 강요했는데 성가대도 <아멘>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일본에 사는 것들은 믿음도 없다」는 둥
「아멘을 못하는 족속들만 모였다」는 둥
심한 표현을 써 가며 설교를 하였습니다.

뒤에서 안내를 맡고 있던 저는 우리 교인들에게 심한 말을 하는 목사님께 너무 화가 나서 그냥 예배당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은 얼마 되지 않아 성가대원 몇 명이 가운을 입을 채 교회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고 밖으로 나온 우리들은 서로 놀라며 웃음을 참지 못했었습니다. 그 목사에 그 교이들이었습니다.



성경에 <아멘>이라는 말은 많이 나옵니다. <아멘>이란 말의 원래의 뜻은 「그렇게 되기를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라는 뜻으로 대부분이 성경을 기록한 기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에 감동을 받아 성경에 기록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들이 감동을 받아 <아멘!>이라고 기록을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설교자들 같이 하나님이 우리 사람들에게 <아멘>을 강요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로서 성경 전체에 두 번 나오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것은 민수기 5:16-22 과 오늘 함께 본 신명기27:15-26입니다.

민5:16-22
16) 제사장은 그 여인으로 가까이 오게 하여 여호와 앞에 세우고
17)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넣고
18)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그 머리를 풀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을 그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19) 여인에게 맹세시켜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네 남편을 두고 실행하여 사람과 동침하여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쓴 물의 해독을 면하리라
20) 그러나 네가 네 남편을 두고 실행하여 더럽혀서 네 남편 아닌 사람과 동침하였으면
21) (제사장이 그 여인으로 저주의 맹세를 하게 하고 그 여인에게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고 네 배로 부어서 너로 네 백성 중에 저주거리 맹세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22)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 가서 네 배로 붓게하고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신27:15-26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
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7)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8)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0) 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1) 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2) 그 자매 곧 그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과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3) 장모와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4) 그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5) 무죄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렇듯 성경에는 두 군데에서 <아멘>의 강요가 나오게 되는데 이 말씀에는 공통된 특징이 두 가지 나옵니다. 하나는 저주의 부분 특별히 징벌을 할 때<아멘>을 강요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징벌의 원인은 인관관계 즉 사회생활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책임 있게 하지 못할 경우 벌을 주겠는데 그것을 받아들이겠는가?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아멘>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뜻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책임 있는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경우 무서운 징벌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네가 믿는냐? 믿으면 아멘 하거라!」



우리가 주로 쓰는 <아멘>이라는 말의 용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언제 이 말을 쓰도록 설교자들로부터 강요받고 있습니까? 그것은 주로 교회에서 설교시간에 복과 관계될 때 쓰입니다. 복 받는 일에 은혜 받는 일에 상급 받는 일에 <아멘>이라는 말이 강요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반대입니다. 복 받을 때 은혜 받을 때 <아멘>이라는 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징벌을 받을 때 <아멘>이라는 말을 강요했던 것입니다.
「잘못하면 벌 받는데 벌을 달게 받겠느냐? 그러면 <아멘>하라!」 는 의미입니다.

자 여러분 이제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아멘>을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아멘>이 얼마나 힘든 말인지 알고 하시는 것입니까?
<아멘>을 한 번 하면 얼마나 많은 책임이 주어지는지 아십니까?
때로는 그 말에 생명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인 책임을 가볍게 생각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다는 아니지만 신앙 따로 사회적 책임 따로 그렇게 사는 신앙인들이 참 많습니다. 한국교회의 교인들이 사회로부터 지탄 받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약속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리고서는 교회에 와서는 <아멘>이라는 소리를 크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멘>은 그 때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멘>은 우리의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의 사회생활 속에서 강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 있는 사회생활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함부로 <아멘>을 하면 안 됩니다.
이 <아멘>이라는 말에는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고 때로는 그 책임을 지기 위해 생명을 걸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아멘>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눈물을 흘린 뒤에 할 수 있는 말인 것입니다.


목사가 안수를 받습니다. 장로님과 집사님들이 안수를 받습니다. 여러분 그 안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에서 자리나 지위가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그런 행위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거는 의식입니다. 이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행동들이 이제는 벌을 받는 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전에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행했던 잘못들이 이제는 징벌을 받아야 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 안수의 뜻이 이럴진대 여러분 안수를 받으시겠습니까? 그러기에 안수는 받지 않기 위해 도망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잡히면 더 높은 기준의 생활이 요구되어지기 때문에 그것은 죽는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안수의 의미와 <아멘>의 의미는 같습니다.
그래서 아멘을 잘 못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축복에 아멘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멘은 더 깊이 묵상하고 헌신한 후에 해야 하는 말인 것입니다.

그 옛날 한사랑교회 교인들이 아멘을 하지 못한다고 욕을 먹었을 때
또 몇 주 전 다른 교회 목사임으로부터 아멘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저는 그런 <아멘>을 잘 못하는 교인들이 참 좋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멘을 잘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멘의 뜻도 모르는 가운데 함부로 <아멘>을 하지 않아서 좋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아멘은 언제 쓰입니까?
신앙의 요소들이 많이 변질되었기 때문에 거의 이런 본래의 의미로 우리는 <아멘>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 있어서 제일 많이 쓰이는 의미로는 대답의 요소로 많이 쓰입니다. 설교자가 무엇을 물었을 때 <예>라는 의미로 교회에서 <에멘>을 씁니다. 주일학교 출석을 부를 때도 <아멘>을 쓰는 교회를 모았습니다.
또 설교를 잘 듣고 있는지 물을 때 <아멘>을 강요합니다.
이 부분은 설교자들이 많이 유도를 합니다. 그 유도의 방법도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믿습니까?」 「아멘!」 하던 것이
「믿으시는 분은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변하더니
요즘에는 「아멘하시는 분들만 천국 갈 줄 믿습니다!」 라는 표현까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너무 멀리 와 있습니다.



<아멘> 에 있어서 제일 좋지 않은 것은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아멘>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좋지 않은 것은 무턱대고 <아멘>을 하는 것이고
그 다음 비교적 좋은 것은 <아멘>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일 좋은 것은 <아멘>의 의미를 알고 <아멘>을 크게 하는 것입니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아파한 후에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아멘>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 삶에 책임을 지겠노라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럼 없이 살겠노라고
만약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할 경우에는 큰 징벌을 받겠노라고 맹세하며 <아멘>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와 사회 앞에서 같아야 합니다. 교인들을 대할 때와 교회 밖의 사람들을 대할 때 같아야 합니다. 목사를 대할 때와 가족을 대할 때가 같아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더 높은 윤리 의식을 적용하며 그것을 어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잡히기 싫어 오랜 시간 도망 다니다가도 한 번 하나님께 잡힌 후에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과 말에는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그런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멘>을 함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강요를 해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멘>의 그 깊은 의미를 바로 알고 많은 눈물을 흘린 뒤에 여러분들이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아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때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깊은 의미를 알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강요하십니다.

「네가 책임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느냐? 그렇게 못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만들 때 교회를 욕되게 할 때 책망을 받을 수 있겠느냐?」

「받을 각오가 되어 있으면 아멘 아멘 할찌니라!」



<기도>

하나님
우리의 신앙생활을 항상 지켜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입술의 고백과 손발의 행동이 다른 우리들입니다.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의 모습이 다른 우리들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깨우쳐 주셔서
책임을 다 하는 신앙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 있게 <아멘>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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