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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3일 주일] 재미있는 세상 재미없는 교회



재미있는 세상 재미없는 교회

엡1:3-10




한국 경기도의 포천에 가 보면 할렐루야 기도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불치의 병을 많이 고친다고 소문이 난 기도원인데 그곳에서 나오는 할렐루야 생수로도 유명합니다. 이단 시비도 많이 있고 또 병 고치는 방법에도 많은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몇 해 전만해도 늘 700-800명 정도는 항상 그 기도원에서 숙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한 번 집회를 하면 항상 2000-3000명의 사람들이 모이곤 합니다. 기도원의 규모로 볼 때 무엇보다 그렇게 큰 기도원을 움직여 나가려면 꽤 많은 사람들의 봉사가 필요합니다.

그 곳에는 약 100명이 넘는 상근 직원들이 있는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그들에게는 월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월급이 없는 것 뿐 아니라 오히려 돈을 내고 봉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원의 설명은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기도원에서 봉사하기 위해 오히려 기쁨으로 돈을 갖고 와서 봉사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93년도 봄 서울 여의도 증권가 한 복판에 있는 <한신증권>이라는 회사 앞에서 일천 여명의 사람들이 연좌시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인 사람들의 모습은 다른 곳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시위에 사용한 피켓이나 문구도 사뭇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도 달랐습니다. 그들은 피켓에 성경구절을 써 넣었고 그들이 불렀던 노래는 바로 찬송가였습니다. 한마디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바로 할렐루야 기도원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원 측이 설명하는 사연은 할렐루야 기도원에서 많은 헌금을 한신증권사에 예치해 놓았는데 회사가 잘 관리를 못하여 그 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전국에 있던 일천 여명의 신도들이 모여서 약 한 달간 증권사 앞에서 시위를 했던 것입니다. 여의도에서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그 옆에 있는 여의도제일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그 광경을 한 달간 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증권사나 할렐루야 기도원의 잘잘못이 아닙니다. 기도원 측의 그들의 지나친 행동을 꼬집으려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려 하는 것은 제가 놀랐던 것인데 어떻게 그들이 한 달 동안 그 곳에서 천막을 쳐 놓고 시위를 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헌신적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힘든 일을 기쁨으로 할 수 있도록 하였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절대 아무런 의미 없이 봉사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크건 작건 자신이 선택하여 움직일 때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치가 높은 것일수록 가치가 적은 쪽을 버리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눅10:38-42 에 보면 마리아와 마르다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초청해 식사 대접을 합니다. 마르다는 음식 준비를 하고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본문의 대한 해석은 신중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말씀 듣는 것이 봉사를 하는 것 보다 귀한 것이라고 해석을 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것은 옳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복음의 전파를 소중히 생각하면서 하신 말씀임을 기억하면서 해석을 하여야 합니다.

어쨌든 오늘은 무엇이 더 좋고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오늘 말 하려고 하는 것은 말씀을 듣던지 봉사를 하던지 두 사람이 기쁨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그 두 자매를 그토록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였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과거가 예수님과 매우 특별한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그 두 자매에게는 나사로라고 하는 오빠가 있었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인 남자가 죽었습니다. 집안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병으로 죽은 후에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일어나라」 하고 말씀하심으로 인해 오빠가 살아났던 것입니다. 그 사건은 그 두 자매에게 있어서는 큰 기쁨이요 놀라운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매에게 있어서는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만나 변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축복을 얻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자들도 다 버린 그 예수님을 십자가 앞에까지 따라갔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까지 함께 좇아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위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에 비해서 헌신적으로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나름대로 아주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병 고침을 받아 새 사람이 되었거나 추한 죄를 용서 받아 새 삶을 살거나 크나큰 진리를 깨닫고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결을 얻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삶이 완전히 바뀐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그들은 모두 은혜를 입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주위에 무슨 재미가 있었겠습니까?
사실 예수님은 늘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지 않았습니까?
「누구든지 자기의 생명을 얻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잃으면 얻으리라」
「싸움과 싸움이 일어날 것이요 기근과 재앙이 있으리니 그 때에 내가 오리라」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만 하였습니다.
또 제자들의 질문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답만 하셨습니다.
「주님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을 다 먹이려면 300데나리온이 필요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님은 화끈한 리더십이 있어서 따르는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준 것도 아닙니다.
「우리 주님 너무 멋있어!」
「우리 주님과 함께 다니는 것이 너무 좋아!」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이런 모습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을 죽을 때까지 따랐던 자들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무엇인가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말합니다. 교회가 성장을 하려면 먼저 목사가 괜찮아야 한다고. 설교도 잘해야 하고 능력도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확한 답은 아닙니다.

예수를 좇아 밥을 굶어가며 말씀 들은 사람이 오천 명이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좇은 때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 사람의 가르침은 사람의 가르침이 아닌데?」
「그 사람의 가르침은 다른 서기관들과는 다른데?」

획기적인 말씀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 말씀 때문에 끝까지 예수님을 지켜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사랑 교회에서 목회를 했을 때입니다. 부임해서 첫 예배를 드릴 때 36명이었던 교인이 슬금슬금 늘기 시작하더니 80명이 되었을 때입니다. 한국에서 김동호 목사님께서 일본에 오셨을 때 자랑을 했습니다.
「목사님 교인이 80명이 되었습니다.」
그 때 김동호 목사님께서는 제게 칭찬은 해 주시지 않고 이런 말을 해 주셨습니다.
「속지마 오목사 좋아서 오는 사람들이야. 하나님 좋아서 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 돼!」

저는 지금도 그 말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목회자를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주 앞에 나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은혜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다시는 사람처럼 살지 못할 나를 가려주시고 고쳐주시고 기억하지 않으심으로 새 사람을 만들어 주신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이곳에서 다 들춰내신다면 누가 이곳에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아는 어느 남자 집사님께서 오래도록 교회에 나오질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구역장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사연이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의 이문동 골목을 심방하는 도 중 하루는 길에서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분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집사님이었습니다. 서로 갑자기 만나게 되어 무척 놀랐습니다. 저도 놀라고 집사님도 놀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목사에게 부부싸움을 하다가 들킨 이 남자 집사님께서는 너무나 창피하다고 그 다음부터 교회를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남들 다 하는 부부싸움 하는 것만 들켜도 교회에 나오기 힘이 듭니다. 그런데 더욱이 추하고 더러운 과거가 있다는 것 어느 한 교인만 알아도 우리는 교회에 나오기 힘들어지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들어내신다면 누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겠으며 누가 이 강단에서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은혜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곳에 나올 수 없는 죄인인데 하나님께서 감춰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히 이곳에서 얼굴을 들고 예배할 수 없는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감히 설교할 수없는 사람이고 기도할 수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은혜를 더 바라십니까? 어떤 축복을 더 기다리고 계십니까? 이미 우리는 충분한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은혜는 그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다시 인간처럼 살게 되었는데 왜 삶이 기쁘지 않겠습니까?
다시 인간처럼 살게 되었는데 무엇이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다시 인간같이 살게 되었는데 왜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교회 생활이 힘들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은 이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은혜가 없기 때문에 다른 것에서 재미를 찾으려 합니다. 교회의 프로그램에서 교회의 행사에서 교인들의 모습에서 봉사에서......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보다 재미없는 곳입니다. 여러분 골프를 가시겠습니까? 예배를 오시겠습니까? 고스톱을 하시겠습니까? 예배를 드리시겠습니까? 재미로 따지면 골프가 재미있는 것이고 고스톱이 재미있는 것입니다. 골프는 18홀을 돌아도 다리가 아프질 않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에 가는 길은 왜 이렇게 험난합니까? 지하철 계단도 많고 예배당의 계단도 높습니다. 고스톱은 밤새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설교시간 30분은 왜 그렇게 깁니까? 교회는 확실히 재미가 없는 곳입니다.

부동산 투기를 업으로 삼는 여자 교인이 있었습니다. 소위 「복부인」입니다. 날만 새면 땅과 아파트를 보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주일 아침만은 어김없이 꼬박꼬박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좋은 땅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주일 아침에 예배를 드려야 재수가 있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습니다. 따라서 주일 낮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봉사활동이나 저녁예배는 아랑곳없이 곧장 부동산 매물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녀가 제일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주일에 하루 종일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저녁예배까지 참석하는 사람을 보면서 시간을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 여인도 집사가 되었고 또 여전도회 임원도 되었습니다. 마침 여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리는 저녁 그 여 집사님이 성경봉독 순서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 날도 주일 낮 예배가 끝나자마자 하루 종일 아파트를 보러 다니다가 저녁예배 시간이 임박해서야 허겁지겁 예배당에 도착하였습니다. 곧 성경봉독 시간이 되었습니다. 단상의 마이크 앞에 선 여 집사님의 입에서
「요한복음 14장 6절을 찾으시겠습니다.」 라는 말이 엉뚱하게 이렇게 튀어 나왔습니다.
「요한복음 14동 6호를 찾으시겠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을 14동 6호로 읽는 사람은 주님을 바르게 좇기 위해 구별된 삶을 추구하는 참 신앙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좋아서 하루 종일 봉사하고 또 예배 때마다 예배당에 나아와 예배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은혜를 입으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가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세상의 그 어떤 재미도 예배와 비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예배당에 나오는 발걸음을 막지 못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하루 종일 봉사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휴일을 다 반납하고 교회에 나아와 궂은일을 하는 것을 그저 착한 사람쯤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옛날에는 비교적 큰돈인 십일조를 내는 사람들을 정신 나간 사람쯤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옛날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일들이 은혜를 입고 나니 이해가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장님이 주차봉사를 하는 것이고 국회의원이 주방봉사를 하는 것이고 회장님이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사회의 직분을 의식하는 것은 아직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회사로 심방을 가면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상석에 앉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나 목사지 회사에서는 목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것도 구분 못하고 여러분들의 회사에서도 목사노릇을 하다면 저는 덜 된 사람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교회에 오시면 사회의 직분을 생각하셔서는 안 됩니다. 사회의 직분을 생각한다면 덜 된 사람이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다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인데 사장이 어디 있고 회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저 은혜로 살아난 감격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자녀일 뿐입니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롬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여러분 원래 교회는 재미가 없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세상보다 더 나은 재미를 원하시면 교회에서 찾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감격과 감동이 있는 설교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말씀을 찾으려면 다른 교회로 가시거나 인터넷을 찾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적과 방언과 큰 소리로 속 시원히 기도하고 싶으시면 제가 그런 교회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은혜를 체험하면 은혜를 깨달으면 이 전에는 죽을 수밖에 없었고 사람노릇 하지 못하던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사람이 되었음을 느끼면 그 때에 교회생활이 재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예배에 감격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생활이 재미있으십니까? 봉사에 신이 나십니까? 예배에 감격이 있으십니까? 헌금할 때 기쁨이 있으십니까?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아직도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과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사람이 된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많은 교인이 말합니다. 동경교회는 프로그램이 좋은 것 같다고. 매 번 프로그램이 기대가 된다고. 교회학교가 좋다고 합니다. 다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좋은 교회가 되는 이유는 아닙니다. 저는 우리 동경교회가 재미있는 교회가 되기를 워합니다. 그러나 그 재미라는 것이 프로그램이나 행사 때문에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은혜를 입어 내가 죄인 인 것을 깨닫고 다시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그 재미가 있는 교회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그럴 때 만에 참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

세상보다 교회가 재미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틀렸습니다.
세상보다 교회는 더 재미있고 그래서 더 오래 있고 싶은 곳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요
내가 다시 살아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이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재미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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