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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9일 주일] 예배가 기다려지는 자



예배가 기다려지는 자

요4:5-26




지난주에 이어서 심방을 다니면서 느끼는 점들을 기초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먼 구역을 심방을 하면서 먼 곳에서 매 주 교회를 찾아 나와 예배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계심을 알고 새삼 놀랐습니다.
그런 집을 심방할 때 어떤 분들은 저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목사님께서 이렇게 먼 곳까지 오십니까?」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야 이렇게 한 번 오지만 집사님은 이 먼 거리를 매 주 오시는군요. 참 대단하십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감동하시는 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방을 갔을 때 어는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분은 믿음이 있는 분은 아니고 그저 아내를 따라서 예배에 가끔 출석하는 그런 교인이었습니다. 늘 주일이 되면 예배에 참석하는 문제로 아내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믿음이 없는 분이 생각하기에는 교회까지 가는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일요일에 좀 푹 쉬고 싶으신 마음이 있겠지요.

「목사님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은 때도 교회에 나가야 합니까?」
「설교가 잘 귀에 들어오지 않고 또 기분이 좋지 않아도 교회에는 꼭 나가야 한다는 것은 위선 아닙니까?」

논리가 맞고 일리가 있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식욕이 없을 지라도 음식은 때에 맞춰 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건강비결의 제 1조입니다. 입맛이 좋다고 해서 많이 먹어도 안 되지만 입맛이 없다고 해서 끼니를 걸러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제 때에 먹는 적당한 양의 식사가 제일 좋은 건강의 비결인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항상 입맛이 좋기만 하겠습니까? 또 음식을 만들 때에도 어떻게 항상 새롭고 좋은 음식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사람에게는 입맛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입맛을 잃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은 이미 병들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아무 때에든지 어떤 음식이든지 맛있게 먹기 마련입니다. 입맛이 없다고 음식을 거르면 그 사람은 정말로 중병에 걸리게 됩니다. 입맛에 관계없이 차려놓은 상에 관계없이 끼니를 거르지 말고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경희대학교 교수님들과 성경공부를 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국악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이 한 분 같이 공부를 하셨는데 제가 그 분을 뵐 때마다 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분은 성경이 알고 싶어서 저와 함께 성경을 공부하는데 저는 국악에 대해서 그렇게 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분께 이런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국악에 대해 잘 몰라서.....」
그 때 그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라디오나 TV에서 국악 방송이 나오면 목사님게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죄송합니다. 끄거나 다른 프로로 돌릴 때가 많습니다.」
「죄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모두들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마시고 싫어도 자꾸 들어 보세요. 조금씩 좋아질 것입니다.」

사람이 싫다고 자꾸 만나지 않으면 더 싫어집니다. 만나야 친해지고 만나야 좋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옵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뵙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싫어졌다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어딘가 병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만나는 것을 꺼려하고 주저하게 된다면 정말로 깊이 병들게 됩니다.

사실 예배는 우리 사람의 감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갚아야 하는 무거운 <빚>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우리의 기분과는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하는 무거운 의무를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러분 자녀가 부모를 대하는 것이 기분으로 되는 것입니까? 한국에서는 젊은 청년들이 군대엘 갑니다. 모두 가야 합니다. 여러분 젊은 청년들이 군대에 가는 것을 기분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까? 기분에 내키면 가고 내키지 않으면 안 가고 그럴 수 있는 것입니까?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기분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간혹 기분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철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기분과 감정을 벗어나 행동하는 것이 위선이라 얘기하고 기분대로 행동하며 사는 것이 정직하고 진실한 것인 양 말을 하지만 그것은 오해이고 착각입니다. 어린 아이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는 기분대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의무라고 합니다. 의무는 우리의 기분과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분과 감정으로 의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가 기분과 감정을 이끄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기분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에 뭔가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면 또 그 예배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예배를 자주 빠지게 되고 그러다가 아주 예배하는 생활이 우리의 삶 속에서 없어진다면 마침내 우리는 완전히 큰 수렁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사람처럼 헤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영적 건강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예배를 위하여 목회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설교준비일 것입니다. 저만해도 설교에 자신이 없는 목사인지라 설교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아 준비합니다. 설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시간을 쪼개서 예배당에 나오시는 분들 매 주일 멀리서 오시는 분들에게 좋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줘야 한다는 그 생각 때문에 열심히 준비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설교가 제 마음만큼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얼마나 화가 나는지 모릅니다. 그날은 뭐를 해도 잘 되질 않습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걱정이 쌓이게 됩니다. 다음 주에 교인들이 적게 오면 어떡하나....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많이 힘들어 하면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설교를 잘 못했다고 마음상해 하는 것은 예배의 본질을 잘 모르는 것 이예요. 하나님은 오늘 필요한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셨어요. 당신은 그 의무를 다 했으니 자유하세요.」

자존심은 상하는 말이지만 맞는 말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입맛에 맞출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희 가정이 꽤 많이 힘들었을 때입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위기를 맞이했을 때 저는 저희 아내가 전도사로 봉사하던 교회에 가서 수요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봉사하던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담임목사님의 설교가 좋다는 평가를 했던 교회인 반면 제 아내가 봉사하고 있던 교회는 설교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아내와 함께 예배를 드린 저는 목사님의 말씀에 큰 힘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날 목사님의 말씀은 정말 능력이 있었고 제 인생의 큰 결단을 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고 나오는데 눈치를 보니 그날 저녁 저와 아내만 은혜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웠을 때 하나님께서는 목사님을 통해 제게 말씀으로 큰 위로를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설교자입니까? 예배자입니까? 답은 둘 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예배자의 자세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좋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설교자와 예배자가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예배자의 의무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예배자는 마음가짐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마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예배자의 윤리에 대하여 말합니다. 예배에 나오기 위한 우리의 준비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깨끗한 옷을 갖춰 입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성스럽게 헌금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배에 나아오기 위해서는 남에게 원망들을 일들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원망하는 일도 없애야 하고 남에게 원망들을 일도 없애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책임을 나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말을 했건 간에 부부싸움을 하면서 내가 어떤 말을 했건 간에 적어도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는 <모든 책임이 내게 있습니다>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불행한 것도 내 책임이요 남을 불행하게 한 것도 내 책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임종을 앞 둔 남편이 아내를 물러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합니다.
「평생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소! 행복하게 해 주지 못했구려. 나 만나 고생이 많았소. 다른 사람 만났으면 행복 했을 텐데...」
그 때 아내가 말합니다.
「아니예요. 당신이 오히려 나 때문에 고생했지요.」
이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진실입니다. 그런 말을 주고받아야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는 것이고 아내도 남편을 편히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우리의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히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자기의 마음은 정리도 못하고 「어떻게 설교가 그 모양인가? 애들은 왜 이렇게 울어? 예배당은 왜 이렇게 더워?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 예배는 내게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책임이 내게 있음을 인식할 때 비로소 나는 부족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겸손히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은 무엇입니까? 문자적인 해석은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성령의 도우심과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진정한 예배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좀 더 넓게 해석하면 기쁨으로 기다리고 준비하며 믿음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심방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약 두 시간이 걸려 예배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이 예배에 임하는 마음은 아마 다른 분들과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큰 감격과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또 많은 걱정으로 인해 큰 기도 제목을 갖고 예배당에 나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한 주 내내 풀리지 않은 문제를 갖고 예배당에 나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안타까운 기도의 제목을 갖고 나오시는 그 분들도 예배에 임하는 자세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말씀은 한 여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내용이지만 본래의 이 본문의 의도는 예배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자들이 갖춰야 할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깨끗한 마음 시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생수로 우리에게 다사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생수가 필요하십니까? 여러분 생수가 무엇입니까? 생수의 그 의미는 시73:16-17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73:16-17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해가 안 가는 일들이 있습니다. 풀기 힘든 문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주의 자녀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질 않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문제가 없으십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에게는 그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라는 것은 그가 풀리지 않는 문제를 갖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다섯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도 기쁜 일도 아닙니다. 처음부터 계획을 갖고 남편을 다섯을 두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어디에서 풀어야 합니까? 아무리 물을 길러 먹어도 그녀의 삶의 갈증은 그 물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얼 마셔야 그 삶의 갈증이 없어지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전의 문지방에서 생수가 터져 나와 내가 그 생수를 마시는 것 뿐 아니라 그 은혜의 강에서 헤엄을 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이 땅의 모든 문제는 해결 될 것이고 우리의 모든 갈증은 해소될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예배에 참여하실 때 어떤 마음을 갖고 예배당에 오십니까?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예배를 거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럴 때 더 주님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준비된 마음으로 기다리는 마음으로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갖고 성전의 계단을 오를 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만나 주실 것이고 여러분들의 삶의 갈증을 생수로 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마음 아팠던 것들이 해결되고 답답했던 것들은 깨닫게 되어 마음의 참 평안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은혜라 말합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그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삶의 어려움에서 오는 모든 갈증이 시원하게 풀릴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는 바로 이 성전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평생의 삶을 통해 예배하는 자들이 얻는 그 성전의 복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시73:16-17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할 때
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게 하시고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에게
주님의 생수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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