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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3일 주일] 창조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창1:1-5


저는 아려서 책을 참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문예반활동을 했었는데 그 때 문예반 활동을 한 것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까지 계속 할 정도로 책을 앍고 또 글을 쓰는 것을 참 좋아 했었습니다.
가끔 뭔가 조사를 할 때 취미가 뭐냐고 묻는 난이 있으면 저는 자신 있게 늘 「독서」라고 썼습니다. 어느 날 뭔가 그런 종류의 조사를 하는 일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취미 때문에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었습니다. 특별한 취미가 없으면 「독서」라고 쓰리고. 저는 그 말이 참 싫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볼 때 취미가 없는 것 같이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을 다닐 때 책을 많이 읽은 편입니다. 그런데 책을 좋아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책 읽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대게의 책은 그 내용을 꼼꼼히 다 읽는 편이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못할 때는 요령껏 읽기도 합니다.
그것은 머리말과 차례를 보면 대충 책의 내용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책의 머리말은 그 책을 쓰게 된 이유와 그 요약된 내용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의 머리말을 꼭 읽고 또 좋아합니다.

성경도 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묶은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머리말이 있습니다.
왜 이 책을 썼으며 무슨 내용들이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는 머리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머리말>이라는 타이틀은 없습니다.
그저 머리말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것이 바로 창세기 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는 옛날 얘기라고 합니다.
천지 창조에 관한 오래 된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옛날에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차조하신 모습을 설명하는 책이 창세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것은 창세기의 올바른 이해가 아닙니다.
창세기는 성경의 머리말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에도 우리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말해주는 것이지
그냥 옛날의 창조에 관한 얘기만을 하는 책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모든 말씀의 대상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와 전혀 무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오늘 나도 창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아담은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해 주셨던 것 같이 오늘 나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창조의 전 모습이 나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다고 나옵니다.

혼돈이란 말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히브리 원문도 있고 또 그리스 원문도 있습니다. 그 중 그리스 어 원문에는 카오스(chaos) 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일본은 세탁에 있어서 대체로 세제에 많은 연구를 하는 반면 한국은 세탁기의 세탁방식을 많이 연구하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 한국의 모 가전업체에서 카오스 이론을 이용한 세탁기가 나왔었습니다. 세탁기의 세탁통이 회전을 하는데 있어서 일정한 방식을 갖고 일정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리저리 뒤죽박죽으로 돌아가는 세탁기였습니다. 세탁력이 아주 좋아 많이 팔린 그런 세탁기였습니다.

여러분 카오스(chaos)란 무슨 말입니까?

카오스라는 단어는 복잡한 것 엉망진창인 것 예측이 불가능 한 것 정리가 되지 않은 뒤죽박죽인 것 등을 말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무엇인가 풀리지 않고 엉망이 되어 버린 그런 상황 캄캄하고 답답한 상황 도무지 앞으로의 예측이 되지 않는 답답함을 말할 때 이 카오스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 이 땅의 상황을 카오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 뒤죽박죽인 상황 온통 혼란스러운 상황 그리고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 이런 상황의 모습이 창조 이전의 모습이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카오스의 상황에 손을 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혼돈의 상황을 새롭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창조의 모습을 성경은 코스모스(cosmos)라고 말합니다. 이 코스모스는 카오스의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즉 질서정연한 것을 말하고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예측이 가능한 상태를 말할 때 이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래서 코스모스는 우주를 말할 때도 쓰입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가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카오스와 같은 상황에서 코스모스를 만드셨습니다.
혼돈가운데 있던 세계를 질서의 세계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얘기는 옛날의 창조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해 쓴 책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방법을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바로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 아침 발간된 조간신문과도 같이 생생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책인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의 이 본문의 말씀도 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언뜻 보면 나와는 관계없는 말씀인 것 같지만 아닙니다. 이 말씀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중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고 싶어 하는 그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옛날에 하나님이 이 천지를 창조했던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오늘 나를 새롭게 창조해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혼돈 속이었던 세계를 질서의 세계로 창조해 주신 것 같이 오늘 혼돈 속에 살아가는 나를 하나님은 깨끗한 질서의 세계로 창조해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카오스와 같은 상황이 있습니다. 어쩌면 더 많은지 모릅니다. 가정을 봐도 자녀를 봐도 직장을 봐도 인간관계를 봐도 많은 면에 있어서 카오스의 상황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그 상황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카오스와 같은 상황을 하나님께서 코스모스로 만들어 주신다는 약속이 바로 창세기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의 모든 상황을 코스모스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것이 창조입니다. 창조는 그 예날 일어났던 일들이 아닙니다. 오늘 내게도 일어나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창조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창조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바꾸실 때 무슨 도구를 사용하셨는데 오늘 말씀을 보면 그것이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카오스의 상황을 말씀으로 코스모스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한복음 1장에 나타나는 것과 같이 예수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의 삶은 카오스와 같은 혼탁한 생활에서 코스모스와 같은 질서의 세계로 바뀐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능력인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그 말씀을 로고스(logos)라고 말합니다. 역시 그리스 어입니다. 그 로고스가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는데 그러면 이렇게 공식이 만들어 집니다.

카오스에 로고스가 들어가면 코스모스가 된다.
카오스 로고스 코스모스.(chaos-logos-cosmos)
이 원리를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또 하나의 삶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첫 날이 지나게 되는데 성경은 이렇게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5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여러분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루가 되기 위해서는 아침에서 시작 해 저녁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 성경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어서 하루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왜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의 시간개념에서 나온 것이고 유대인들의 시간개념은 곧 하나님의 시간 개념인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의 세상의 사람들은 옛날부터 동창에서 해가 뜨면 하루가 시작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서쪽으로 해가 지면 하루가 저물었다고 여겼습니다. 즉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하루의 개념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간 개념이 우리와는 좀 다릅니다. 그들은 하루의 해가 서쪽으로 지면 하루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루가 다음날 해가 질 때 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이 하루의 시작이고 밝은 낮은 하루의 끝 개념입니다. 우리와는 반대의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유대인들의 시간개념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여기에는 아주 깊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저희 집은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전에는 아침에 예배를 드렸고 요즘같이 학교를 다닐 때는 아침 시간이 매우 바빠서 밤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드리는 예배와 밤에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뭔가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내용인데 우리 아이들이 아침에 기도할 때에는 뭔가 하루의 희망을 주로 기도했었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잘 놀게 해 주세요.」
「하나님 엄마 말씀 잘 듣게 해 주세요.」
「하나님 오늘 아빠가 열심히 일하게 해 주세요....」

그런데 밤에 드리는 기도는 주로 반성과 후회의 내용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친구랑 싸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나님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부모님 말씀 잘 듣지 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주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 아침은 무엇이고 또 밤은 무엇입니까?
아침은 희망이고 밤은 반성입니다.
아침은 소망이고 밤은 후회입니다.


사람은 예부터 인생을 하루에 비유했습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아침에 비유했고 죽는 것을 어두운 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 모든 일에서 은퇴할 때 그 때를 우리는 인생의 황혼기라 말합니다. 해가 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녁과 밤은 더욱 쓸쓸합니다.

사람은 아침과 같은 희망을 갖고 출생합니다. 유년기와 소년기 청년기를 보냅니다. 그러다가 아무런 기력도 없이 인생의 황혼기를 만나고 또 일생을 마감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인생의 길이라 여겨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개념을 말 해 줍니다. 그것은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이 하루의 개념이 아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것이 하루라 말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희망을 갖고 출발했다가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라 말하지만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손길로 창조된 주의 자녀들은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즉 인생의 절망 속에 오늘 내가 있다 할지라도 꼭 희망의 아침을 만나고서 끝을 맺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이 힘들고 오늘이 괴롭다 하더라도 또 문제가 많아 카오스와 같은 나날이 이어진다 해도 아닙니다. 그것으로 우리의 인생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금 해가 뜨는 아침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복음을 들려주십니다. 그것은 카오스 혼돈 속에 있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로 새롭게 창조해 주신다는 것이고 그 창조의 손길로 창조된 주의 자녀들은 밤의 절망에서 아침의 희망으로 달려가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옛날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을 갖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것으로 우리의 인생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주 안에서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갖고 사는 우리들을
소망의 삶으로 꼭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로 코스모스와 같은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후 기도>

하나님
그 옛날 이 땅을 창조해 주신 하나님
오늘 우리를 창조하여 주시옵소서.
어둡고 답답하고 예측이 불가능하고 엉망인 우리의 인생에
하나미의 능력의 손을 대시어
우리를 코스모스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어두움을 지나고 있지만
우리에게 밝은 아침이 오는 것을 소망하며
인생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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