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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27일 주일] 우리 교회의 부활


우리 교회의 부활

마28:1-10




오늘은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부활의 새벽입니다. 부활의 기쁨과 소망이 여러분들의 가정에 임하시기를 바라고 죽음과 같이 느껴졌던 많은 어려움들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능력도 함께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을 비롯해 그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갖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절망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로는 예수님의 죽음은 좌절이요 무능이었을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누가복음을 보면 그들의 절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모두 다 뿔뿔이 흩어지고 마리아와 마르다 이 힘없고 순박한 두 여인만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수라도 뿌리기 위해 안식 후 첫날 즉 예수가 죽은 지 3일째 되던 날 새벽에 무덤 주위를 서성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여인들에게 중요한 말 한마디를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가서 갈릴리로 가라고 하시오 ! 거기서 나를 볼 것이라고!

그러나 이 말은 부활 후 여인들에게 처음 나타나셔서 한 말은 아닙니다. 이미 며칠 전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제자들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리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마26:31-32)

이렇듯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겠다고 하신 말씀은 부활 후에 처음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 둔 고뇌와 번민의 시간에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보자!

왜 그 중요한 때에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너희는 왜 절망하느냐?」 「왜 우느냐?」 「흩어지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저 한 마디 「갈릴리로 가라!」 하시고는 유유히 사라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갈릴리란 무엇입니까?

일본에는 지진이 많기 때문에 지진이 나면 가족이 만나는 장소를 미리 약속합니다. 저희 가족도 만나는 장소가 있습니다. 우리는 新宿御苑이 만나는 장소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우리는 교회에서 만나자 하였습니다.
갈릴리는 그렇게 단순히 흩어진 자들의 만남을 위한 약속의 장소를 말하는 것입니까? 뭔가 큰일을 성취하기 위한 사나이들의 집합 장소입니까?
갈릴리란 어떤 곳입니까?



1. 갈릴리는 은혜의 땅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갈릴리란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가 서로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해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제자들을 처음으로 부르신 곳입니다. 예수께서 처음으로 제자를 부르셨던 제자들에게는 소명의 땅이었습니다.
세상의 제일 미련하고 연약한 자들을 불러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든 은혜의 땅이었던 것입니다.
물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오천 명을 먹이시고 또 죽은 자를 살리신 공생애 대부분의 이적과 기사가 제자들의 보는 데서 행해졌던 능력의 땅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를 잃고 실의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시 갈릴리로 가서 만나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옛날의 어부로 돌아가자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의 살던 방식으로 다시 살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은혜와 능력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잃어버려 절망과 무능 속에 사는 제자들에게 처음과 같이 다시 예수를 만나 그리스도의 능력을 소유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의 현 주소는 어떠합니까? 갈릴리를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부르심에 응답도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도 능력도 없는 무능하고도 건조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절망과 좌절만이 있게 된 실황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

감동과 감격 능력이 없는 건조한 신앙생활을 하는 자. 그래서 늘 좌절과 절망으로 슬퍼하는 자들에게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갈릴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물에 빠질 것 같은 어려움이 있는가? 갈릴리에서 물위를 걷는 나의 모습을 너희가 보지 못하였느냐?
풍랑으로 인한 두려움이 있느냐?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느냐?
병으로 인한 고통이 있느냐? 수많은 병자를 고치신 갈릴리의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느냐?

어쩌면 우리가 불안해하고 우리가 괴로워하고 우리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우리에게 닥친 세상의 문제가 너무 무겁고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 주셨던 갈릴리의 예수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나약한 우리에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만나리라!

여러분들에게는 갈릴리가 있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의미를 함께 간직한 그 갈릴리가 있으십니까?


제 나이 서른셋에 결혼식 주례를 처음 섰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첫 결혼식이 두 쌍의 합동결혼식이었고 또 신랑 신부 4명 모두 일본의 유학생들이라 일본인 하객들도 많이 오는 결혼식이어서 꽤 긴장을 하면서 준비를 했었습니다. 특히 일본어로 통역이 되는 주례사는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준비를 했었는데 그러기 위해 주례사 책을 한 권 참고로 보기 위해 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그 책에는 시대별로 주례사에 잘 쓰는 말들을 소개해 주고 있었는데 옛날엔 「검은머리 파뿌리」가 제일 많이 들어갔는데 근래에는 그런 촌스런 표현은 쓰지 않고 「본심(결혼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제일 많이 쓴다고 합니다. 결혼생활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칠 때 힘들고 어려운 일들로 인해 괴로울 때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돕고 감싸고 살기로 했던 그 초심만 있으면 힘든 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겠지요. 어찌 결혼에만 적용되는 말이겠습니까? 삶의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왜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가? 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질 않는가? 무엇이 문제입니까?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갈릴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이 사라진지 오래고 그래서 삶이 좌절과 절망 속에 건조해졌다면 예배를 드려도 감격이 없다면 더 지체하지 말고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2. 갈릴리는 사망의 그늘이 진 버림받은 땅입니다.

갈릴리는 예수와 그 제자들에게 있어서 자기들의 개인적인 추억만이 담겨있는 곳은 결코 아닙니다. 갈릴리가 개인적인 의미로 다가올 때 은혜의 장소라고 한다면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 지역으로 기원 전 734년부터 강대국에 의해 점령당해 온 지역입니다. 앗수르에 의해 합병되어 많은 이방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였고 그 후 800년 동안 갈릴리는 바벨론과 페르시아 이집트 시리아가 차례로 점령하였으며 그동안 여러 다양한 민족들이 이주해 와서 이 지역에 살았던 것입니다. 기원전 700년경에 나타난 이사야의 예언에 「이방의 갈릴리」 혹은 「이방인들의 갈릴리」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갈릴리는 잡다한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사9:1-2)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이 갈릴리 지역에는 순수한 유대혈통의 사람들이 적을 수밖에 없었고 종교적인 형편도 이방의 우상이 성행하여 예루살렘의 성전에 참여하는 것조차 소홀히 했을 정도입니다. 이사야의 표현대로 이 갈릴리 지역은 「사망의 그늘진 땅」 이며 여기의 사는 주민들은 「흑암에 행하던 거민」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히 이스라엘의 통치자로부터 관심 밖의 지역이 되었고 삶의 질과 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기에 자연히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이 유대 땅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대인에게 있어서 갈릴리란 어떤 특정한 공간적인 지역의 명칭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북쪽 국경지대에 있는 인종적 혼합으로 인한 천박한 땅을 지칭하는 말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부활의 새벽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척박한 땅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 예수를 만날 수 있다 하시면서 말입니다.

갈릴리는 고통과 신음이 있는 땅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로 먼저 갔고 또 그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갈릴리로 향해 갔다면 오늘날 예수의 제자들의 공동체라고 하는 교회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바로 고통과 신음이 있는 버려진 땅 갈릴리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출발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관심과 시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부자나 가난한 자를 구분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은 부자를 위한 것도 가난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닌 바로 생명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부자를 위한 교회도 반대로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도 다 교회의 바른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자의 고민과 가난한 자의 고민이 함께 공존한다면 교회는 가난한 자의 고민에 먼저 손을 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강도의 걱정이라 한다면 부자에게는 고민이라도 가난한 자에게는 고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자에게는 잠 못 이루는 걱정거리가 가난한 자에게는 자녀들이 죽어가는 생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동경교회가 갈릴리로 향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동경교회의 교우들이 부활의 예수를 모두 만나기 위해 갈릴리로 달려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땅의 모든 교회가 갈릴리로 향하여 다시 생명을 얻어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는 갈릴리로 향하여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갈릴리로 가지 않고는 우리 안에 부활하신 그 분을 간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경교회의 목회자가 먼저 갈릴리로 가겠습니다. 처음 하나님께 헌신했을 때의 그 마음의 다짐을 잊지 않겠습니다. 세상의 명예를 좇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세상적인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교회의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길 것이며 아직은 잘 못하지만 더 낮고 더 가난한 자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정치적인 욕망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고 평생 복음에 미친 자 되어 복음을 위해서만 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그 첫 마음을 잃지 않고 목회를 하겠습니다.

교회도 교인들도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교회가 순수하다는 것은 아직 그 갈릴리를 잃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교회가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은 많이 변질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갈릴리의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꽤 유명한 교회로 한국교회를 이끄는 누구나 다 아는 존경받는 교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이해 드렸다고 하는 간절한 기도가 새삼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주님!
여러 교회들 가운데 또 하나의 교회를 보태지 말게 하옵소서
종교적 허세만 가득하고 정작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불임의 교회를 또 하나 세우지 말게 하소서
사람을 위한 직함만 줄줄이 만들고
정작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교회를 만들지 말게 하소서
내가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명쾌한 자기 인식 없이
행사에 바쁜 사교클럽으로 전락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왕국을 전략적으로 이 땅에 구축하는 야전벙커가 되게하시고
행정에 분주한 동사무소가 되지 말게 하소서.


오늘 이 부활의 새벽에 저는 교회의 부활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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